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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나홀로 김장 마치고 돌아서니… “아뿔싸! 간마늘 안넣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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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부부가 둘 다 놀고 먹고 씁니다]

김장할 때 동무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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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날은 1년에 한번 우리 집에서 고기 냄새가 나는 날이다. 수육과 김장 겉절이로 차린 작년 김장 파티상. /윤혜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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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년에 딱 한 번 고기(육류) 음식을 한다. 메뉴는 돼지고기 수육이다. 올해도 했다. 삼겹살 부위로 두 근을 사서 삶았다(지방이 적당히 붙은 삼겹살이 수육에 제격이다). 수육에 술이 없으면 곤란하니 증류주도 샀다. 그리고 친구를 불렀다. 둘이 앉아 혼자 수육을 먹을 남편을 상상하니 좀 애처로웠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한 후 집에서 육류 음식을 하지 않는 내가 1년에 딱 한 번 고기 음식을 하는 날, 그날은 바로 김장 날이다.

결혼도 늦었지만 제대로 음식을 하기 시작한 것도 늦었다. 최고난도인 김치 담그기는 더 늦었다. 나는 마흔여섯 살에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고 마흔아홉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스스로 김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쉰다섯 살이 된 올해는 절인 배추를 사지 않고 밭에서 금방 뽑은 배추로 절이기부터 시작, 그야말로 김장의 전 과정을 스스로 했다. 절인 배추를 사지 않은 것은 내가 사는 보령 대보주택 이웃 어른들께서 텃밭에서 키운 배추를 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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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준비로 무릎을 맞대고 앉은 보령시 대보주택의 주민들. /윤혜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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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중순 이후 내가 사는 보령의 공동주택 마당은 김장 준비로 분주했다. 대부분 할머니인 주민들은 주택 마당 텃밭에 배추, 무, 대파, 쪽파, 갓 등 김장에 필요한 채소를 공동으로 키우고 이 채소를 서로 나눠 김장을 담근다고 하셨다. 어느 날 아침, 고급 비타민 한 통을 들고 나가 파를 다듬는 어른들 틈에 끼어 앉아 김장 얘기를 들었다. 마음이 맞는 대여섯 집이 함께 순서를 정해 차례로 김장을 한다고 하셨다. 두레 전통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이 순서에 끼지 못했다. 이사 온 지 겨우 5개월에 농사도 짓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오며 가며 인사를 드렸더니 103호 어른께서 농사지은 배추를 선뜻 나눠 주셨다.

나는 매년 9월 중순 이후 그해의 햇고춧가루를 구입하며 김장 준비를 시작한다. 그다음은 절인 배추 예약이다. 해남 배추가 최고라고 하지만 나는 그보다 포기는 작지만 단단하고 단 지리산 배추를 10월 하순쯤에 예약한다. 새우젓과 액젓은 인천의 오래된 젓갈 집에서 구매한다. 나머지 부재료는 김장 전날 동네 시장에서 산다. 재료 준비가 시작될 즈음 김장 동무를 모은다. 내가 김장에 필요한 모든 식재료를 준비해 두면 김장 날 친구 두세 명이 우리 집으로 와서 같이 김장을 했다. 내 김장 동무들은 ‘덕분에 평생 처음 김장을 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김장에 필요한 식재료는 배추와 무를 포함해 스무 가지가 넘는데 남아도 안 되고 부족해도 안 된다. 그 일만 잘해도 김장의 반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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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날엔 남편이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 한다. 특히 쪽파를 매우 잘 다듬는다. /윤혜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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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하는 모든 노동에서 평균 이하 점수를 받는 남편도 김장 날은 무척 바쁘다. 적지 않은 쪽파를 다듬는 일부터, 김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온갖 잔심부름을 해야 한다. 무거운 재료를 옮기고 김치를 담그는 사람들 손 역할을 제법 한다. 김치 양념이 묻은 손으로 뭔가를 하려면 반드시 남의 도움이 절실해지기 마련이다. 다행히 남편이 달려와 내려온 옷소매 올려주기부터 커피를 비롯한 온갖 필요한 것을 다 갖다 바친다. 김장 당일에는 적어도 백 번 정도 ‘여보’를 외치는 것 같다.

김장 날 피날레는 역시 ‘김장 파티’다. 메뉴는 돼지고기 수육과 김장 김치 겉절이, 싱싱한 굴과 잘 절인 배추, 그리고 좋은 술이다. 바로 이 파티를 위해 고기를 먹지 않는 내가 1년에 단 하루 수육을 삶아 남편과 친구를 대접한다. 올해는 보령으로 이사를 와서 김장 동무도 없이 혼자 김장을 했다. 힘들었지만 곱게 그 양념 옷을 입은 김치를 한 곳에 쌓아 놓고 보니 뿌듯했다. 뿌듯함도 잠시, 장하다 칭찬하며 싱크대를 쳐다보았는데 아뿔싸! 곱게 간 마늘이 싱크대에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깜빡 하고 마늘을 넣지 않은 것이다. 친구들이 옆에 있었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김장의 완성은 ‘혼자의 뿌듯함’보다 ‘같이의 분주함과 떠들썩함’이라는 것을 깨달은, 보령에서 겪은 쓸쓸한 김장 홀로서기였다.

[윤혜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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