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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우크라 전쟁 격화, ‘3차 핵 시대’ 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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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핵 탑재 가능한 미사일 발사… 냉전·핵 확산 이어 핵전쟁 공포

조선일보

지난 3월 1일 러시아 국방부가 공개한 영상에서 포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장면.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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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일을 넘겨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핵무기를 실을 수 있는 중장거리 미사일이 등장하면서 확전 우려가 커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1일 국영방송 대국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군의) 미국·영국 미사일 사용에 대응해 러시아군은 최신 러시아 중거리 미사일 시스템 중 하나를 우크라이나에 시험 발사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연 이틀 서방에서 지원받은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를 처음으로 타격하자 이전엔 실전에 쓰지 않았던 고성능 무기로 반격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특히 이번에 발사된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다고 알려지면서, 국지전 방식으로 교착 상태에 빠졌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핵전쟁 위험 고조’라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지 모른다는 공포가 번지는 상황이다.

푸틴이 노골적으로 핵무기 사용 위협 수위를 높여가자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에 ‘3차 핵 시대(third nuclear age)’가 도래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과 구(舊) 소련이 각각 핵탄두 수만 기를 가지고 대치한 냉전 시대, 냉전 종식 후 북한·인도·파키스탄 등 새로운 핵 개발 국가가 잇따라 등장한 2차 핵 시대에 이어 여러 핵무장 국가들이 핵무기의 실전 사용 위협을 서슴지 않는 시대가 도래할 위험이 현실로 닥쳤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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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철원


지상전과 드론(무인기)이 주력이었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핵 미사일’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하면서 푸틴의 구두(口頭) 협박이라 여겨졌던 핵무기 사용 위협이 현실로 닥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푸틴은 21일 대국민 연설에서 “최신 러시아 중거리 미사일 시스템 중 하나를 시험했다”며 “(이번엔) 핵탄두를 장착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이 미사일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공표한 것으로 풀이됐다. 푸틴은 이 미사일 이름을 러시아어로 개암나무를 뜻하는 ‘오레시니크’라고 소개하면서 “초속 2.5∼3㎞인 마하 10(음속의 10배)으로 목표물을 공격한다. 현재 이런 무기에 대응할 수단은 없고, 전 세계에 있는 최신 방공 시스템과 미국·유럽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도 이런 미사일을 요격할 수 없다”고 했다. 사브리나 싱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러시아가 실험용으로 발사한 이 IRBM은 러시아의 RS-26 루베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모델을 바탕으로 개조한 것”이라며 “핵탄두를 실어 나르도록 개조될 수 있다”고 밝혔다.

ICBM의 사거리는 5500㎞ 이상, IRBM은 3000~5500㎞ 정도다. 두 미사일 모두 러시아가 접경국인 우크라이나에 쏘기엔 사거리가 지나치게 길다. 21일 러시아 미사일이 발사됐다고 알려진 아스트라한에서 타격 목표 지점 드미프로까지 거리는 1000㎞ 정도에 불과했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가 (사거리가 지나치게 긴) 미사일을 발사한 목적은 서방에 공포를 심는 것”이라며 “이 미사일엔 재래식 탄두만 탑재했지만, 러시아는 ‘우리가 원한다면 핵무기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전했다.

CNN은 미국과 서방 정부 당국자들을 인용, 러시아가 이번에 사용한 미사일은 영어 약자로 ‘MIRV’라는 ‘다탄두 각개 목표 재돌입체’라고 보도했다. 미·소 냉전 시대에 처음 개발된 MIRV는 탄도 미사일 하나에 여러 탄두를 실어 각기 다른 목표 지점을 공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탄도미사일을 뜻한다. 초기부터 핵탄두를 여럿 실을 목적으로 개발한 무기다. 실전에서 MIRV를 포함한 IRBM이 사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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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철원


러시아가 핵무기 실제 사용을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 진행한 데 이어, 실전에서 MIRV 미사일을 발사하자 핵무기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앞서 러시아는 지난해 11월 모든 핵실험을 금지하고 검증 체계를 강화하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을 철회했다. 또 러시아는 지난 19일 우크라이나의 핵보유국 동맹국들이 재래식 무기 공격만을 받아도 핵무기로 대응할 수 있게 핵 교리를 수정했다.

러시아의 MIRV 공격은 미국과 영국이 북한군 파병에 대응해 우크라이나에 자국산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도록 승인한 데 보복하는 차원이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19·20일 각각 미국산 에이태킴스(미 육군 전술 미사일 시스템), 영국산 스톰섀도(프랑스명 스칼프) 등 장거리 미사일을 이용해 러시아 본토를 타격했다. 푸틴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는 우리 시설에 대한 공격에 그들의 무기를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국가의 군사 시설에도 우리 무기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 공격적 행동이 확대되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 등 서방 국가를 신형 무기로 타격할 수 있다는 위협을 담은 경고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1일 푸틴의 대국민 연설 후 “전쟁의 규모와 잔인함이 명백하고 심각하게 확대됐다. (러시아의) 신형 무기 사용은 북한군 배치 이후 또 다른 확전으로, 푸틴은 전쟁을 끌고 갈 뿐 아니라 평화 회복을 원하는 국제사회에 침을 뱉고 있”고 했다. 젤렌스키는 앞서 러시아의 미사일 발사 직후 이 미사일이 ICBM이라고 하면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무기 시험장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MIRV

Multiple Independently targetable Reentry Vehicle의 약자. 한국어로는 ‘다탄두 각개목표 재돌입체’다. 로켓 하나에 실은 탄두 여러 개를 대기권 밖에서 각각 목표물에 동시에 떨어뜨려 타격하는 탄도미사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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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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