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그린 그림 앞에서 웃고 있는 김정자씨. 화폭 속 인물은 BTS의 지민. 김정자씨는 ‘아미’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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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 신월동 김정자씨 ‘활자의 삶’
왼손으로 시 필사하고, 사투리 수집해 출판도
“글은 내게 흘러가는 시간을 묶어두는 일”
그 집은 여수 신월동 비탈길에 있다. 남해를 마당 삼은 바람따지다. 여수 말로 바람이 바로 닿는 곳. 그 집 안은 살림보다 공책과 서적이 가득하다. 많이 버린 것이긴 하다. 근래 더 는 게 있다면 한 청년의 사진 정도다. 침실 책상엔 2010년 단종된 구형 검은색 노트북이 놓여 있다. 1938년 6월 여수 돌산읍에서 9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김정자씨가 30여년 살아온 데다. 해서 그 집 안 책장에 꽂혀 있는 공책도, 책도, 그 속에 ‘활자’가 붙든 세월도 30년, 50년이 넘는다.
쉰 권이 넘는 ‘가계부’는 사실 일기장으로 쓰여 왔다. 집 두채 값 곗돈을 날린 뒤부터는 수지 맞출 일이 없어 일상을 기록했다. 1967년 일이다. 다른 ‘다이어리’엔 1968년부터 티브이(TV)에서 들은 건강·요리 정보로, ‘1990년’이 표기된 다른 공책엔 읽은 책 제목들로 빼곡하다. “여수에 책 대여점이 생겼는디 빌려 갖고 와서 보믄 한두 권은 꼭 읽은 거더라고요. 그때부터 적은 게 몇백권 되는가 봅니다.”
김정자씨가 원고지에 글을 쓰고 있다. 김씨는 30여년 모은 ‘전라남도 여수·돌산지역 사투리’를 비매품으로 자비 출간했다 개정판을 준비 중이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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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엔 1977년 제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부터 올해 수상작품집까지 결락 없다. 1970년 창간되어 “세상에 눈을 뜨게 해줬다”는 시사월간지 ‘다리’나 권당 3천원 하던 때의 박경리 소설 ‘토지’가 오래전 치고, 이달 구입한 유시민의 정치비평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 가장 최근 치다.
지난날의 일기예보만 기록해 둔 노트는, ‘도대체’가 궁금하긴 해도, 살필 틈이 없다. 평생의 오른손 글씨 대신 10년 전부터 왼손 필사로 채워온 노트를 따라 읽기 바쁘다. 시인 정희성의, 김초혜의 시가 반복 정서되어 있고, 천상병의 시 ‘귀천’은 셀 수도 없다. ‘독립 선언문’도 왼손 필사되어 있다.
김정자씨 집 책장에 꽂혀 있는 이상문학상 수상집. 1977년 1회부터 올해 47회까지 빼곡하다. 제29회 수상작 작가 한강의 단편 ‘몽고반점’이 보인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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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씨가 지난 30여년 동안 노트에 수집 기록(왼쪽)해 비매품으로 자비 출간한 ‘전라남도 여수·돌산지역 사투리’(2022년)의 표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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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돌리면 색 바랜 노트 묶음이 또 보이고, 들추면 김정자씨가 50대부터 수집했다는 여수·돌산 사투리가 물결처럼 이어진다. 앞바다 물비늘이 베란다로 비치던 11일 오전부터 기자는 그런 집에 있었다.
―아니, 이 글들이 다 뭡니까?
“이러니 제가 기록병이 들었단 말을 어떻게 안 허겄습니까? 종일 뭘 쓰는 게 병이에요.”
김정자씨가 웃었다. 급기야 2022년 5월, 30년 모은 ‘전라남도 여수·돌산지역 사투리’를 비매품으로 자비 출간했다. 바야흐로 개정판을 준비 중인데, 이번엔 출판사가 끼었다. 시판되리란 것이다. 여든여섯 생애 첫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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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책으로까지 내신 겁니까?
“나가 더 늙으면 잊어먹겄다, 안 쓰고 그러니까, 그래 갖고 적기 시작했는디, 나중에 우리 선후배들 고향 친구들 모임 때 ‘요 말 말고 느그 아는 사투리를 불러봐라’ 빠트린 걸 추가할라고 갖고 갔는디, 서로 ‘못 들은 말이다’ 그래요. 아, 기가 맥힙니다. 그래갖고 이걸 적기만 해두면 안 되겄다, 이제 참말로 열심히 수집을 해갖고 책을 엮어야 되겄다고 했지요.”
거실은 자신이 그린 그림과 수공예품으로 둘려 있다. 한 청년의 사진만 유독 반들댄다. 정체는 다름 아닌 비티에스(BTS)의 지민. 맞다, 김정자씨는 ‘아미’다. 4년여 전부터 팬이 됐다. “무턱대고 좋아하면 안 돼” 관련 책도 사 읽었다. 노랫말과 멤버들에 대한 감상으로 채워진 노트 네 권은 가히 함께 흥얼대는 여느 소녀 팬을 연상시킬 뿐이다. “저거에 (써) 올려야 내 것이 되지요. 허락도 안 받고 손자 하나를 더 얻었습니다.” 아흔 앞둔 김정자씨는 그 흔한 혈압약, 당뇨약도 먹지 않는다. 말 그대로 살고 살리는 활(活), 활자(活字)의 병고로만 충분하기 때문인가.
아버지가 삼촌을 일본 유학 보낼 만큼 김정자씨 친가는 유복했다. 여수여고까지 졸업한 그에게 삶이 표정을 바꾼 건 1960년 한겨울 결혼 때부터다. 부모형제 반대를 무릅쓰고 ‘시집간’ 남편네는 넉넉지 못했다. 그리 딸을 아끼던 부모는 결혼식에 불참했다. 시부모는 “며느리 자식이라기보다 일할 사람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교사인 남편은 결혼 50일 만에 입대했다. 딸 둘 아들 하나를 데리고 서른넷 시댁으로 들어가며 전면화한 시집살이는 예순이 가까워서야 끝났다. 치매 걸린 시어머니 대소변 수발까지 든 뒤였다. 남편은 일찍 출근해 밤늦게 취해 들어왔다. 한달 두세번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밤이고 새벽이고 김정자씨 홀로 연탄불 갈면서 30촉 백열등 아래 보던 게 책이다. “뭐든 읽을 땐 마음이 편했으니까요.” 남편의 겉돌기도 시집살이 보기가 괴로워서였을까. 어느 초저녁 많은 행인 앞에서 “결혼 잘못했지?” “시집 잘못 왔지?” 어르면서 아내를 업고 오동도 다리를 건넜다. 그가 지난 8월 먼저 눈을 감았다. 저 혼자 ‘삼도천’을 건넜다.
몇년 전부터 남편과 “죽어 어딜 갈지 모르지만 이 집이 천당이다 허고 삽시다” 해왔던, 하여 아침마다 각방에서 서로 깨 나오면 꼭 포옹했던, 64년의 반려자가 없다. 일생 여수에서 산 김정자씨는, 30년도 더 된 그 ‘낯선’ 집 안에서, 울었다.
다시금 글을, 책을 물으면 허리가 꼿꼿해진다. 말이 쏟아진다.
‘아미’ 김정자씨가 현재까지 노트 네 권에 걸쳐 BTS의 노랫말과 지민 등에 대한 감상을 적어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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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책은 언제 나오나요?
“그것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요. 나가 언제 아파 드러누울지 모르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집을 짓는데 모래 우에다 지었구나 그래서 기증을 헐라고 마음먹은 겁니다. 인자 책을 내 100년, 200년 보관을 허기 위해서 오로지 그 마음입니다. 그래서 나가 돈이 천만원이 들든지 얼매가 들든지 꼭 이걸 나 생전에….”
개정판에 낱말 300개와 관용어 등을 추가했고 동분서주해 추천사도 앉혔다.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뭘 내놓을 것도 없는 시골 노인네”는 말했다. “격을 좀 갖추면 받아주겠죠. 누가 그 책을 사보겄어요?” “다른 엄마들같이 놀러나 다니고 그르지 엄마가 또 이런 걸 허느냐고, (예순 앞둔) 딸도 반대를 했어요. 근데 저는 이걸 꼭 해야, 이걸 책을 못 내면 죽을 때 눈을 못 감겄더라고요. 그러니 나는 눈물이 나죠.”
이 절박함은 희귀하여 전해질 수 없으리라. 김정자씨만 또 안경을 벗고 끔벅였다. 비매품 책도 나눠주자니 1·2쇄 800부가 됐다. 제작 인쇄에만 1천만원 가까이 들었다. 동향인이든, 작가든 책을 찾으면 비탈길 오가며 직접 부쳤다. 출간보다 더 고역이었다.
서울의 한 출판사와 추진 중인 개정판도 마찬가지다. “걸음 걸을 수 있을 때 기증도 다 마치고 제가 그래야 돼요.”
직접 교육청에서 41개 여수 중고교 명단을 떼왔다. 돌산초, 돌산농협엔 더 보낼 참이다. 글로 죽어가는 말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무슨 사투리가 그렇게 좋으신데요?
“많지요. 산은 보면 꼭대기란 것이 없어요. 봉우리 일대가 ‘산몰랑’입니다. 어디로 가면서 애기가 ‘다 왔냐 다 왔냐’ 그러믄 ‘아직도 아직도 멀었다’가 ‘당아당아 멀었다’고, 자주자주 때때로 챙겨서 애기한테 먹이는 걸 ‘쏘삼빌이 믹이라’ 그래요. 해가 기울면 해가 설풋헌 때인디, 애기들도 할머니하고 있고 좋아서 달랑달랑하다가 해가 설풋허먼 엄마한테 가고 싶습니다.”
―이런 말이 왜 좋으세요?
“아니 참말로 좋습니다. 얼렁얼렁도 빨리빨리같이 재촉하는 말인데 부드럽고 말에가 포용성이 안 있습니까.”
김정자씨는 예명이 있다. ‘모라니’다. 고2 수업 때 만든 자수천에 이름을 새기려니 ‘정자’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버지한테 불평하니 지어준 이름이 한자 ‘목단’(牧丹), 우리말 ‘모란’이다. 그걸 색실로 한땀 한땀 새길 때 김정자씨는 ‘모란’이 되기로 했던 것 같다. “저는 모라니와 이름을 함께 씁니다.”
―모라니 김정자님께 글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우리 친구들이랑 나이 든 사람들 전부 세월이 흘러가브러서 없습니다. 근데 저는 제 시간을 붙잡아놓은 거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묶어놓습니다. 기억 안 나는 거 많겠죠. 그래도 기록을 보면 다 있습니다. 깜짝 놀랍니다. 묶어놨던 시간에 다시 나가 들어가는 거예요. 얼마나 반갑다고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 시간이 없잖아요. 저는 글로 묶어놨어요.”
김영랑의 시(1934)대로라면 모란이 피어야 봄이고, 모란이 지면 한 해가 다 간다.
―알려주신 ‘해가 설풋허먼’은 말하자면 잘 놀던 아이도 엄마 품이 그리운 시간이군요?
“그럼요, 그럼 또 눈물 날라 그러죠.”
―죽음도 가끔 생각하십니까?
“가만히 생각하면 다 태어나면서부터 발걸음이 무덤으로 가는 거예요. 저는 좋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운 보고 싶은 분들이 모두가 계시는 데로 간다고 생각을 하는디 어찌 안 좋겄습니까?”
독서목록 노트엔 죽음 관련 서적에만 붉게 밑줄이 가 있다. 모라니 김정자씨는 이제 회고록 쓰기에 들어섰다. 여순사건 때 사경에 몰렸던 부친의 사연, 인심을 잃지 않아 목숨을 부지한 일, 6·25 전쟁 때 실종된 큰오빠를 빌미 삼은 공안당국에 고통받은 일, 그러나 가족이 또 견디었던 현대사의 질곡, 그럼에도 나이 들어 본인은 ‘효순 미선이 사건’ 시위, 박근혜 탄핵 집회까지 상경해 참석한 까닭이 보태질 것이다. 무엇보다 여고생 때 아버지가 사준 레인 부츠에 붉은색 줄무늬 코트를 입었던 시절을 한 글자 한 글자 원고에 새겨 붙들 것이다. “대학노트 100권은 잡아야 할 것 같다.” “일테면 100살까지나 치매가 안 걸려야 결실을 볼 수 있을 건디 회고록까지 욕심내고 그래갖고 일이 바쁘다.”
다 괜찮아 보인다. 당아당아 멀다. 바람따지, 그 집을 나온 오후에도 앞바다 물비늘이 여전했다. 모라니 김정자씨는 요즘말 ‘텍스트 힙’을 들어본 적 없다.
여수/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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