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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미술의 세계

고문·탄압과 공존하던…차라리 건전가요를 부활하라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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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 대한민국’이 실린 앨범.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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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가요라는 장르가 있었다. 장르라는 표현이 적합한지 모르겠으나 프로파간다 포스터도 미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으니 억지스러운 표현은 아닐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국민가요가 해방 뒤 공보처가 중심이 되어 명맥을 이어오다가 무려 대통령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가 등장하니, 그 유명한 ‘새마을 노래’이다. 이 노래를 안다면, 아뿔싸 피할 수 없는 아재 인증. 오늘의 큐시트 첫 곡이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



초기 악보에는 박정희 작사 홍연택(국립교향악단 지휘자) 작곡이라고 적혀 있는데 1973년부터는 박정희 작사 작곡으로 표기된다. 이에 관해 딸 박근영씨가 직접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아버지가 직접 노래를 불러 녹음한 뒤 음대 출신인 자신에게 악보를 붙이라고 시켰으며 홍연택씨는 감수를 봐줬다는 후일담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 노래는 내 어린 시절 배경음악이기도 하다. 태어나 자란 곳이 북한 무장 공비 침투 지역이었던 울진이었기 때문일까? 정말이지 하루도 이 노래를 안 듣고 지나갈 수 없었다. 학교에서, 거리에서, 시장에서, 심지어 매일 골목골목 쓰레기를 수거하는 트럭도 이 노래 아니면 군가를 틀어놓고 다녔다.



한겨레

건전가요 엘피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새마을 노래’ 외에 ‘나의 조국’이라는 노래도 직접 만든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이쪽 방면에 재능이 없었던 전두환 정권에서는 건전가요를 가장 건전하지 않은 방식으로 강요했다. 앨범 마지막에 반드시 건전가요 한 곡을 싣게 한 것이다. 이용의 ‘서울’이나 윤시내의 ‘공부합시다’처럼 사랑받았던 노래도 있었으나 예외적인 경우고, 대부분 건전가요는 암울한 시대의 낙인이었다.



건전가요를 부른 가수들이 군부정권에 부역했다고 여겨선 안 된다. 건전가요를 넣지 않고는 아예 앨범을 발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수들은 그나마 덜 노골적인 건전가요를 선호했는데 그중 하나가 ‘어허야 둥기둥기’로 아이유가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에 싣기도 했다. 이 노래는 꽤 들을 만하다.



그렇다면 건전가요가 어떤 가수의 최고 히트곡이 된 사례도 있을까? 있다. 조영남의 ‘화개장터’를 떠올리는 분들이 계실 듯한데 오답이다. ‘화개장터’는 건전가요 의무 제도가 사라진 이후에 나온 노래이며 오히려 조영남이 건전가요 같다는 이유로 꺼렸다고 한다. 정답은 80년대 건전가요 중 가장 대표적인 노래이자 정수라의 최고 히트곡 ‘아! 대한민국’이다. 이 노래는 앨범 재킷 앞에도 떡하니 제목이 적혀 있는 타이틀인데 당시 가요 순위 프로그램 ‘가요 톱텐’에서 무려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오늘의 큐시트 두 번째 곡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중략) 아아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그 시절 우리나라는 희망찬 노랫말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까 이런 노래로 국민을 세뇌하려 했겠지. 노랫말처럼 승승장구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고문과 탄압, 심지어 학살로 희생된 사람들도 부지기수. 자신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나라를 지키겠다고 민주화 운동에 몸을 던진 분들을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그런데 수십년이 흐른 지금, 건전가요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케이팝이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요즘 오히려 우리나라를 떠나는 물결이 거세다. 황희 의원실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8월 말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 사람이 1만9607명. 미국 국무부가 밝힌 투자이민 숫자만 해도 2022년에 비해 지난해에만 2배로 폭증했다. 높은 상속세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의 목소리도 크다. 이공계 석박사들의 해외 취업이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가 이런 실태를 보여준다.



사람만이 아니다. 기업도 돈도 대한민국을 떠나고 있다. 기관은 물론 개미들도 국장을 버리고 해외주식으로 달려가다 보니 얼마 전 (11월7일)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유 금액이 사상 처음으로 1천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140조원을 넘겼다. 이런 자본유출 흐름은 더 거세지고 있다. 이러면 소는…… 아니 삼성전자는 누가 키우나?



바야흐로 탈한국의 시대다. 정부는 이런 사태를 손 놓고 보고만 있다. 의대생이 학교를 떠나고 전공의가 병원을 떠날 때도 ‘돌아올 것으로 확신한다’며 희망 회로만 돌리던 이들이니 뭘 더 바라겠나. 뭐 다 떠나진 않겠지. 떠나는 사람보다 그냥 있는 사람들이 더 많긴 하겠지.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면 오랜만에 건전가요를 부활시키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국악에 관심이 많다는 영부인께서 직접 노래해도 좋겠다. 제목은 ‘사주팔자 대한민국’. 동해에선 유전이 뻥뻥 터지고 국민 정신건강도 정부에서 챙겨드리니, 우리나라가 잘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며 왠지 자진모리장단이 어울릴 것 같다. 기자회견을 보니 대통령께서는 프리스타일 랩을 잘하실 것 같은데, 이런 가사는 어떠실지?



오늘의 큐시트 마지막 곡은 어쩌다 보니 자작곡이 되었다. ‘건전가요인가요’.



코스피는 떡상 4대 개혁 완성
아이들은 행복하고 어른들은 사랑하네
외쳐 한국 이곳은 천국
유 머스트 컴백홈



한겨레

이재익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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