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싫어하는 박씨 작가의 '내 여자친구는'
"불편한 지점이 독자들에게는 최고의 즐거움"
"약 50화 정도 계획, 방대한 세계관은 지양"
"美 드라마 '백조의 노래'에서 영감 얻어"
[이데일리 김가은 기자] 마냥 사랑스러웠던 여자친구가 눈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문제는 사람이라면 크게 다칠 수밖에 없는 사고임에도 너무나 멀쩡했다는 사실이다.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병간호 도중 사라진 그녀가 어느 골목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다음 날 만난 여자친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행동했지만, 이상한 점 투성이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이상한 점이 끊임없이 보였다. 내 것이 아닌 기억들도 얽히고설켜 미칠 것만 같던 와중 내 자신이 기억을 잃은 괴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상황들이 이어지던 중 부모님과 친구들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 심지어는 나 자신조차 괴물이라는 기억이 떠오른다면 어떨까.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되고 있는 스릴러 장르 작품 ‘내 여자친구는’을 연재 중인 박씨 작가를 지난 22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박씨 작가는 본래 스릴러 장르를 싫어한다고 강조했다. 대체 어떤 이유로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작품을 연재하게 된 것일까?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인 ‘내 여자친구는’(사진=네이버웹툰) |
△‘내 여자친구는’을 보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주인공 ‘채지오’를 보며 혼란스러움을 크게 느낄 것 같습니다.
사실 스릴러와 호러 같은 장르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공포를 느끼는 콘텐츠를 왜 소비하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스릴러 장르가 주는 재미를 개인적으로는 공감할 수 없더라도 관객이나 독자가 느끼는 재미를 이해는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싫어하는 요소가 다른 분들에게는 재밌고 흥미로운 요소라는 뜻이니까요.
혼란과 쌓여가는 오해, 막막함과 답답함, 통제당하고 있다는 불안감과 압박감, 평화 속에서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긴장감, 정체 모를 적의 존재 및 오류와 오답 같은 요소들이 제게는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하나씩 모이니 제 일상이 섬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마치 모든 것이 반전된 다른 세상에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내가 반전된 세상에 떨어졌다면?’, ‘그간 모든 기억이 전부 거짓이라면?’, ‘거짓을 내가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다면?’ 등의 생각이 휘몰아치자 너무 답답했습니다.
그러다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들이야말로 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최고의 즐거움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느꼈던 혼란과 불쾌감을 이야기 초반부에 녹여내 독자들이 그러한 분위기를 함께 경험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괴물이 기억까지 조작한다는 설정이 기억에 남습니다. 작품에서는 괴물이 총 2800명이라고 나오는데 한 도시 전체가 괴물이 된 걸까요.
작품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하게 말씀은 못 드리지만 2800명은 작품 내에서 채지오의 여자친구로 나오는 ‘우미호’의 핸드폰에 있는 연락처 갯수입니다. 괴물로 만들고 저장을 안 했거나, 만들어진 괴물의 연락처를 따로 관리하고 있는 괴물이 있다면 2800명이 우스워 보이네요. 스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말씀드리자면 2800명이라는 숫자는 미호가 메모장에 소지하고 있는 괴물의 수입니다.
△작품에 괴물을 쫓는 세력들도 있고, 사건을 덮는 경찰들도 있는데 세계관이 궁금합니다.
‘내 여자친구는’은 약 50화 정도를 목표로 완결을 계획하고 있어 방대한 세계관 설정은 지양했습니다. 괴물의 정체, 기원, 역사 등은 정말, 아주 정말 최소한의 설정만으로 이야기를 구상했습니다. 때문에 미호가 괴물이 되기 전에는 어떠했는지, 그 전에도 미호같은 괴물이 있었는지는 상상에 맡기고 싶습니다.
△현재로써는 미호와 지오 정도만 기억을 잃지 않는 특별한 괴물인 것 같은데요. 다른 인물 중 기억을 잃지 않고, 노예가 되지 않는 존재도 있나요.
앞으로 전개에 있어 굉장한 포인트입니다. 답변을 드리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노코멘트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더 지켜봐 주세요!
△미호가 괴물을 만들어내는 기생충을 생산하는 일종의 ‘여왕’처럼 보이는데요. 그렇다면 지오는 왜 특별한 존재가 된 건지 궁금합니다.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인공이라서 ‘모든 행운이 쏠린다’거나 ‘편의주의적으로 특별하게 설정된다’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주인공이 특별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만큼 특별함에 상응하는 고통과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오가 특별한 이유도 같습니다. 괴물이 되지 않는 특별함을 지녔지만 그에 상응한 대가로 미호의 사랑을 이겨내야 하는 고통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균형을 통해 주인공의 특별함이 단순한 축복이 아닌 무거운 선택과 희생의 이야기로 연결되기를 바랐습니다.
△‘트루먼쇼’나 ‘매트릭스’ 같은 느낌도 드는데 영감을 받으신 다른 콘텐츠나 예술 작품이 있으실까요.
영향을 받은 작품은 미국 드라마 ‘백조의 노래’입니다. 이 드라마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남주인공이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위해 자신과 똑같은 복제인간을 만들어 자신이 죽더라도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이 드라마를 보며 사랑이란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반대로도 생각해 봤습니다. 만약 제 미래의 배우자가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행동한다면 어떨까? 저는 끝이 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고민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새로운 질문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내가 사랑하지도 않는 괴물이 나를 사랑하고, 날 위해 모든 걸 해 준다면?’ 이 아이디어가 떠오르며 섬뜩한 느낌이 들었고 ‘내 여자친구는’이라는 작품이 시작됐습니다.
△만약 채지오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반대로 미호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사실 부끄럽지만, 지오와 미호와 조이령. 모두 저를 대변한 캐릭터입니다. ‘내가 만약 지오였다면, 내가 만약 미호였다면, 내가 만약 조이령이었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를 초기 설정으로 잡고 과거사를 부여했죠. 또 그에 알맞은 구체적인 욕망을 추가해서 만든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제가 등장인물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면 이보다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는 있어도 약하게 행동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뭔가 제 음습한 성격을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럽네요.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과 향후 어떤 작가로 기억에 남고 싶으신지요.
제 망상에 가치를 부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그저 감사합니다. 최근 그림에 대한 지적을 받았는데 이 자리를 빌려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노력해서 그림, 연출, 스토리 등 모든 면에서 성장하고, 독자님들께 성장형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어느 한 분야에서 당당히 제 이름을 내세울 수 있는 작가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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