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규 민간LNG산업협회 부회장
미국 대통령이 오바마에서 트럼프로 바뀌던 시기에 워싱턴에서 상무관으로 현장에 있다보니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트럼프가 익숙한 느낌이다. 버지니아 근교에 위치한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장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서도 즐겨찾던 장소 중 하나였다. 전반 마무리 가까운 홀로 기억한다. 현지 지인의 초대로 함께한 ‘그린 미팅’에서 페어웨이 한가운데 잔디가 눈에 띄게 부족한 곳을 발견하고 연유를 물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 홀에서 티샷을 할 때 한가운데 서 있는 큰 나무가 항상 그의 타구 방향을 가로막아 그 나무를 베어버린 자리라는 것이다. 함께 웃으면서 역시 트럼프 방식이라고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 유학을 마친 후 익숙한 직장생활에서 벗어나고자 야간 대학원 강의를 맡은 적이 있다. 통상법과 통상정책 그리고 통상협상 등이 주요 강의 과목이었다. 통상협상 과목 첫 강의는 항상 다음 문장으로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Everything is Negotiable.” (모든 것은 협상가능하다.)
현지에서 트럼프 정부 무역대표부(USTR)와의 통상협의를 진행할 때, 제일 불편한 점은 대미교역 흑자를 어떻게 이해시키고 솔루션을 어떤 방식으로 합의할 것인가였다. 당시 한국은 상품교역에서 200억 달러 가까이 흑자를 기록했지만, 서비스 교역 분야의 적자를 감안하면 충분히 설득 가능한 규모였다. 특히 당시 대미투자 규모나 질에 비추어 상품교역 적자는 미국이 한국과의 ‘경제 주판’을 튕길 때 그리 문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입장과 논리는 트럼프 방식하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결국 미국의 상품 대 상품 교역균형 주장에 양국 간 에너지 파트너십을 연계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의 ‘트럼프 방식(Trump way)’에 익숙해질 무렵 트럼프 골프장의 베어진 나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침 그날 트럼프 대통령 일행도 라운딩 중임을 확인한 것은 클럽하우스에서였다. 우천으로 중간에 라운딩을 멈추고 클럽하우스로 향할 때 시큐리티 체킹에 의아했는데 서너 테이블 옆좌석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볼 수 있었다. 비가 와서 다들 라운딩을 취소하고 차 한 잔 하는 자리였다. 옆에서 살펴본 트럼프 대통령은 종업원과 인사도 나누고 클럽 멤버들과 가벼운 대화를 즐기는 게 영락없는 비즈니스맨 느낌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눠준 두둑한 팁에 종업원도 좋아하고 클럽을 퇴장할 때 주위의 박수도 받으면서 인사하는 모습이 여느 편한 비즈니스 파트너다운 인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부 경험은 대통령으로 지낸 지난 임기가 전부이다. 아마도 그에게는 사업상 만난 뉴욕 맨해튼의 시 관계자, 뉴저지 카지노 사업을 펼칠 때의 인허가 당국, 그리고 트럼프 호텔이나 와인 등 새로운 비즈니스를 도모할 때 상대한 공무원들을 통하여 이해하고 느꼈을 정부 이미지가 그를 지배할 것으로 여겨진다.
내가 아는 트럼프 대통령은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전형적인 비즈니스맨으로 비춰진다. 워싱턴의 로비스트나 트럼프 호텔에서 마주쳤던 트럼프 사람들은 대부분 트럼프의 비즈니스 감각을 인정한다. 아마 트럼프 대통령한테도 정부 내지 국가의 일이라는 것을 정부에 몸담고 체득했다기보다는 정부를 상대하면서 터득한 비즈니스 스타일로 바라본다는 게 더 와닿을 것이다.
골프장 한가운데 서 있는 나무를 피하기보다 제거하는 방식으로 라운딩을 즐기는 모습이 마치 비즈니스 목표에 맞춰 직진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뉴욕의 복잡한 부동산 규제에 부딪혀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해나가면서 인허가 공무원과 시정부를 상대로 오랫동안 익힌 다양한 노하우가 트럼프가 자랑하는 책 ‘The Art of Deal(거래의 기술)’에 잘 드러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에서는 모든 것이 협상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정부 내지 국가의 일도 본인이 추진했던 비즈니스와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때로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다양하고 이질적이거나 극단적인 트럼프식 요구와 주장도 비즈니스 세계에서 충분히 던져볼 수 있는 협상카드의 일환으로 제시된 것처럼 이해되는 면이 적지 않다.
비즈니스 세계에서처럼 미국과의 정부 차원의 협의나 국가적 어젠다도 좀 더 진솔한 논의와 다각적인 타협 및 이해관계의 교환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비즈니스 감각에 더 적합할 수 있다. 국가 간의 관계, 정부 간의 협의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비즈니스 스타일로 접근하고 풀어나가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렇게 ‘트럼프 방식’을 우리가 이해하고 적응하다 보면, 오히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더 나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유연하고 협상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의 국가적인 이해와 국제적인 포지셔닝에 더 좋은 파트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처럼 우리 정부도 비즈니스 감각과 스타일을 장착하고 트럼프 방식을 어떻게 찾아 나가야 하는지, 우리의 국익에 비추어 면밀히 살펴보는 게 우리의 몫일 것이다. 우리가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발휘하여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와 주장 밑바닥에 담겨진 협상 가능한 여지와 유연성을 찾아내어야 한다.
내가 강의했던 협상과목 마지막 날에 학생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있다. “Anything is a Bargaining Chip in Negotiations.” (협상에서는 무엇이든 주고받을 카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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