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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우석훈의 경제수다방]통상 총리, 유임을 건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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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관세맨’이라고 자칭할 정도로 관세에 진심이다. 기존 통상 질서에서 트럼프가 중국 등 특정 국가에 부가하는 관세는 ‘보복 관세’로 분류된다. 이런 일방적 조치가 어떻게 가능할까? 또 이런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인가?

크게 보면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에 즈음하여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라 불렸던 세계화의 종언이라 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의 의미는 미국의 노동자들이 20년 가까이 진행된 세계화에서 얻은 게 별로 없다고 하는 불만의 폭발이라 할 수 있다. 미국 공화당은 트럼프와 함께 과거의 고립주의 노선으로 복귀했고, 민주당은 그냥 하던 대로 하자고 했다. 선거에서 결국 고립주의가 이겼다.

최근 1934년에 만들어진 미국의 ‘상호무역협정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법은 미국 대통령에게 제3국을 경유하는 수입품에 대해 관세 부가 권한을 주었다. 이게 중요한가? 그렇다. 이 권한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무역질서를 규정하는 가트(GATT) 체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가트 위에 분쟁처리절차를 추가한 WTO가 세워졌다.

트럼프의 보복 관세는 WTO가 정상 작동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트럼프는 1기 때 정원 7명인 상소기구의 상소위원 선임을 반대했고, 2019년 WTO의 분쟁해결절차는 사실상 정지했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복원하지 않았고, 설령 무역분쟁이 생기더라도 WTO는 행정적으로 이를 처리할 방법이 없게 됐다. 현재 WTO의 중국 분담금은 11%대로 미국의 분담금 비율과 거의 같을 정도로 높아졌다. 트럼프의 미국이 파리기후변화협정과 함께 WTO를 전격 탈퇴하게 되면, 남은 국가들끼리 WTO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사실상 WTO 사망 선거를 현실로 받아들이게 될 것인가?

‘관세’에 진심인 트럼프 당선인

행정적 절차와는 별도로, WTO가 사라지면 세계무역에 관한 근본질서인 가트가 여전히 유효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1934년의 미국 상호무역협정법이 중요해진 것은, 이 법이 있는 한 미국 내에서 가트의 유효성 역시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세계무역이 WTO 정지 이후에도 2차대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고, 가트가 만들어진 1947년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가트가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방식이다. 수많은 자유무역협정(FTA)들은 WTO 체제가 아니라 가트 체제에 기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하다. 가트마저 무너진다면, 우리는 2차대전 이전의 무역제도로 돌아가게 된다. 난감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트럼프의 관세는 1971년 닉슨이 더는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줄 수 없다고 선언한 ‘달러의 금 불태환 선언’과 견줄 만하다. 이걸로 국제통화 질서인 브레튼우즈 체제가 깨졌지만, 어쨌든 세계는 그 변화를 겪어냈다. 그렇지만 지금의 트럼프 관세 충격은 불태환 충격보다 더 클 가능성이 높다. WTO 체제가 깨지면 수출보조금이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많은 국가가 시행하던 수출보조금이 그때 금지됐는데, 지금 당장이라도 누군가 수출보조금을 시행한다고 해도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은 없다. 만약 중국이 어떻게든 자금을 마련해 보복 관세에 대응하는 수출보조금을 시행한다면 곧 무역전쟁이다. 수출보조금이 다시 도입된다면, 우리의 통상 전략은 물론 산업정책 전체가 재편된다. 전 세계가 1995년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다.

우리의 통상 정책은 노무현 정부 때 가장 강했고, 박근혜 정부 때 약간 강했다. 문재인 정부 때 통상은 인기가 없었고, 윤석열 정부는 처참할 지경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통상 라인은 약해졌고, 위기대응 능력도 상실됐다. 2022년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때에는 오판 정도가 아니라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했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다. WTO 체제의 정지와 함께 보복 관세는 물론이고 수출보조금과 글로벌 밸류체인 약화 등 예상하기 어려운 급격한 변화가 생길 텐데,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통상 전문’ 한덕수가 최상의 옵션

우연히도 지금 우리의 총리는 다른 건 몰라도 통상 분야에서만큼은 전설적 인물이다. 지난 총선 이후로 사직 의사를 밝혔는데, 대통령이 대안을 찾기 어려워 아직 자리에 있다. 기왕 이런 상황이라면, 야당의 양해를 얻어 ‘통상 총리’의 역할을 당분간 하도록 하면 어떨까? 트럼프 충격을 최소화하고 어떻게든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찾아내는 것이 지금 한국 통상이 해야 하는 역할이다. 한덕수가 다른 건 몰라도, 가트 체제와 WTO 체제 그리고 다자간 협상 같은 건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이만한 통상 전문가를 당장 구하기도 쉽지 않다. 통상 총리, 현 상황에서 한국이 사용할 수 있는 최선의 옵션이다. 트럼프 충격이 어느 정도 완화될 때까지만이라도 총리를 유임시키고, 그가 통상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건의하고 싶다. WTO 체제 붕괴가 예상되는 지금, 일단 살아남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경향신문

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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