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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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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소나무에 박힌 채…해병대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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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부대의 K1E1 전차가 포사격 훈련을 벌이고 있다. 사진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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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호시탐탐 도발을 걸려는 섬



해병대 연평부대는 서북도서의 대연평도와 소연평도, 우도를 지키는 부대다. 연평도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고즈넉한 어촌인 연평도의 역사엔 피와 화약 냄새가 배어 있다. 1999년 이후 북한은 서해에서 모두 다섯 번의 무력 도발을 벌였다. 제1연평해전(1999년 6월 15일), 제2연평해전(2002년 6월 29일), 대청해전(2009년 11월 10일), 천안함 피격(2010년 3월 26일), 연평도 포격전(2010년 11월 23일) 등이다.

이 중 연평도에서만 세 차례 교전이 일어났다. 북한은 이 밖에도 1999년 이후 연평도 근처 바다로 포사격하는 해상 화력도발을 아홉 번 벌였다.

이유가 뭘까. 연평도는 인천에서 74㎞ 떨어졌다. 인천에서 고속 페리로 연평도에 도착하는 데 2시간이다. 연평도에서 NLL까지는 1.5㎞ 정도다. 북한의 황해남도 옹진반도 개머리 해안까지는 12㎞ 거리다. 아군보다 적이 더 가까운 연평도다.

해병대는 북한과 가깝고, 아직도 전력이 양적으론 밀리기 때문에 북한이 언제라도 연평도를 노린 포격도발을 벌일 수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연평부대가 365일 24시간 긴장을 풀 수 없는 이유다.



14년 전 복수하자며 피탄 그대로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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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포격전 전사지 위령탑.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을 기리는 시설이다. 박영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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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공원 앞바다는 1999년 제1연평해전과 2002년 제2연평해전의 격전지였다. 그래서 평화공원 안에 제2연평해전 때 숨진 해군 6명과 연평도 포격전에서 전사한 해병대원 2명을 추모하는 시설이 들어섰다.

포7중대를 가봤다. 포7중대는 연평도 1차 포격 13분 후 바로 반격을 시작한 부대다.

당시 포7중대의 K9 자주포 6문 가운데 3문이 포문을 열었다. 1문은 이미 불발탄 문제로 고장난 상태였고, 2문은 포격에 손상을 입었다. 원점을 몰라 일단 무도(연평도서 14㎞ 거리)의 방사포 진지로 50발을 쐈다. 긴급 수리한 1문이 추가됐다.

오후 북한의 2차 포격이 이어졌고, 해병대는 맞받아쳤다. 이땐 대포병 레이더가 작동해 북한의 원점인 개머리(연평도서 17㎞ 거리)로 K9이 30발을 쐈다.

당시 80발 중 실제 피해를 줄 수 있는 지점에 떨어진 포탄은 2~3발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대해 해병대 관계자는 “탄공(포탄이 떨어져 생긴 구멍)이 45개로 보인다고 45발만 탄착한 것은 아니다. 사격 훈련 후 탄착 지점에 가보면 2~3발이 1개의 탄공에 모여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K9처럼 정밀한 사격을 하는 자주포라면 특히 더 그렇다”고 설명했다.

포상은 포격전 이후 콘크리트로 더 단단하게 보강됐지만, 당시 피격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날을 잊지 말자는 취지였다.

대연평도 도로 중간엔 조그마한 기념시설이 있다. 차에서 내려 다가가보니 소나무에 해병대 모표(모자에 붙이는 마크)가 박혀 있었다. 포격전 때 마지막 휴가를 가려다 곧바로 부대로 복귀한 뒤 전사한 서정우 하사의 모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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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부대 피격 직후 휴가 가던 발길을 돌려 부대로 복귀하다 북한군 포탄에 맞아 사망한 서정우(당시 22세)하사. 이튿날 그가 숨진 자리 부근 소나무에 깊이 박힌 해병대 모표(모자에 붙이는 마크)가 발견됐다. 해병대 사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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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가족 최초로 국가보훈부 보훈심사위원장에 임명된 해병대 고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 여사가 18일 국립대전현충원 연평도포격전 전사자묘역에 안장된 아들의 묘비를 바라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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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날 ‘내일 날씨 안 좋다던데 배 꼭 뜨길 기도한다’는 글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 서 하사의 어머니는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오늘 우리 아들이 휴가 오기로 했는데, 사망이라니. 다시 한 번 확인해 달라”고 몇 번을 얘기해 주변의 눈시울을 붉혔다.

연평부대는 서 하사의 모표를 지날 때 늘 예를 다한다.



포화 속에서 민과 군 모두가 영웅



연평도 포격전에서 포7중대는 영웅적인 활약상을 보였다. 특히 포7중대의 임준영 상병이 방탄모 외피에 불이 붙은 줄도 모르고 대응 사격에 나선 사진으로 유명했다. 그의 턱 끈과 전투복도 불길로 그을렸고, 입술 위쪽에 화상을 입었다. 임 상병의 불 탄 방탄모는 해병대 박물관에 진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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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포격 당시 임준영 상병. 당시 화염으로 철모 외피가 그을렸다. 중앙포토



당시 포7중대장이었던 해병 제2사단 제2포병연대 제8포병대대장 김정수 중령은 이렇게 회상했다.

"적의 포격에 시커먼 화염에 휩싸인 2포를 바라보고 ‘제발 살아만 있어라’고 생각했는데, 죽은 줄만 알았던 2포반장이 “2포 사격준비 끝”이라고 보고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느꼈다."

김정수 중령은 “중대원들은 위기에 당황하지 않고 임무를 완수해 연평도를 지켜냈다.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우리의 전우를 죽이고, 다치게 한 적에게 복수하기 전까지 나의 시간은 11월 23일 화요일에 계속 정지해 있을 것이다.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내 시간은 다시 흐르지 않는다. - 연평부대 장병 수기집 『우리는 승리했다』



포격전 당시 연평부대 장병들의 진짜 이야기. 그리고 연평도에 숨겨진 또 다른 영웅들의 남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평도 소나무에 박힌 채…해병대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1855

북한은 K9 3발만 맞았다? 연평도 포격전 ‘80발의 진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6435

■ 그들은 어떻게 나라를 지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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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해병대 장병이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포격 도발로 진지가 불타고 있는 가운데 K-9 자주포에 올라 대응사격을 준비하고 있다. 당시 임준영 상병은 철모가 불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K-9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사진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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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도 훈련하고 싶습니다"…尹 면전에 '빽' 요청한 해병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3988

“시민이 때리면 그냥 맞아라” 우리가 몰랐던 ‘진짜 해병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8641

‘눈엣가시’ 백령도 치려는 北…해병대는 지하요새 만들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5640

키만 한 총으로 탱크 부순다, 해병대 최초 여군 저격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3582

러시아는 기겁, 우린 들이켰다…인도 뚫은 K9 ‘라임차’ 사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4940

한국도 놀란 폴란드 변심…‘K9 대박 수출’ 막전막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1261

한국 술잔에 ‘불곰’도 뻗었다…러 비밀도시서 캐온 천궁 기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4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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