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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세상 읽기]민주주의와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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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정치적 선택의 결과다.” 세계불평등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 우리는 불평등과 빈곤에 관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고 있을까? 손상된 민주주의는 이러한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은 소득불평등과 빈곤문제 해결이 요원한 나라다.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이 문제에서만큼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허우적거리고 있다. 소득불평등도와 전체인구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상위권이며 특히 노인빈곤율은 최고 수준이다. 노인빈곤율은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에 따르면 38.1%에 달하는데 2021년보다 오히려 더 높아진 수치다. 그저 기다리면 좋아질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더욱이 고령화는 소득불평등과 빈곤을 심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극심한 불평등과 빈곤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노동정책, 조세정책, 그리고 복지정책 등을 통해 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그게 바로 국가의 일, 특히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핵심적인 일이다. 복지국가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예를 들면 나라살림연구소 자료에서는 핀란드의 시장소득은 한국보다 더 불평등하지만 최종적인 소득불평등은 한국은 물론 다른 대다수 나라보다 낮다고 한다. 핀란드의 시장소득과 가처분소득의 지니계수 차이가 0.239에 달한다. 반면 한국은 같은 수치가 0.065에 불과하다. 불평등한 자본주의의 대명사인 미국보다 낮은 수치다. 한국은 시장 불평등을 국가가 제대로 개선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다. 또한 유럽 여러 나라들은 사회정책을 통해 빈곤율을 20%가량 떨어뜨리고 있다. 높은 수준의 불평등과 빈곤은 그 자체로 문제지만, 나아가 경제 활력을 갉아먹고 우리 사회를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든다.

노동, 조세, 복지정책의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 코로나19라는 예외적인 국면을 빼면 윤석열 정부 들어 비정규직 비율이 다른 어느 때보다 높아졌고, 노동자의 임금 협상력을 좌우하는 노조조직률은 낮아졌다. 집권 직후의 법인세 인하부터 단행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세정책은 부동산 부자와 기업에 유리하게 운영되었다. 이미 세수부족 문제로 건전재정을 외칠 명분도 없다. 복지정책을 보면 약자복지를 외치지만 노인빈곤이 악화되는 가운데 여전히 비수급빈곤층 규모도 상당하다. 그나마 공약이었던 기초연금 인상도 미루고 있다. 또한 미래 노후보장에 대해 정부는 핵심 노인빈곤 예방책이자 재분배장치인 국민연금 강화보다는 소득재분배 기능도 없는 데다 상층 일부에게만 노후보장 기능을 하는 사연금 활성화에 더 기대려 한다. 오히려 정부가 내놓은 국민연금개혁안에는 장기적으로 물가연동 조정을 통해 국민연금을 삭감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것이 과연 우리 시대의 불평등과 빈곤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정책일까?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사회정책은 문제 해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정부가 노동, 교육, 의료, 연금개혁 등을 말해도 기대가 생기지 않는다.

이는 시민의 정치적인 선택의 결과지만, 시민의 선호는 계속 바뀌고 있다. 정부와 정당은 시민의 변화하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는 다양한 장치를 갖추고 있다.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할 때 그것이 원활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복지국가의 정치적인 기반은 바로 민주주의이다.

그런데 시민과 국가의 연결고리가 약화되고 시민이 물러난 자리에 로비력이 있는 거대자본이 밀고 들어오면 시민의 의사를 반영한 사회정책의 방향 전환은 불가능해진다. 민주주의 정치의 기본을 무시하고 엉뚱한 힘에 의해 대표자를 뽑는 것 역시 복지국가 발전을 저해한다. 시민이 있을 자리에서 시민이 사라진 비정상적인 민주주의에서 제대로 정책 전환을 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민주주의 회복과 불평등 해소, 복지국가 발전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경향신문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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