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
김태규 | 사회부장
“윤석열 대통령 퇴진하라”는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문에는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주가조작 의혹이 빠지지 않는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며 해병대에 자원한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서니, 대통령이 격노하며 이를 막아섰다 하고, 그가 통수하는 군 조직은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을 되레 구속하려 했다. 거대한 국가 폭력이며 진실을 은폐하려는 범죄다. 대통령 부인은 재미동포 목사가 건네는 명품 가방을 “이걸 왜 자꾸 사오세요”, “정말 하지 마세요”라면서도, 스스럼없이 받는다. 그리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본인 명의 6개 계좌가 동원되고 범죄수익을 공유했는데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피의자의 배우자, 윤 대통령이 발령 낸 검사들이 내린 결론이다. “망할 것들! 권력이나 쥐었다고 자리에 들면 못된 일만” 한다는 성경 구절이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연세대)에 등장한 이유다.
윤 대통령 재임 기간에 일어난 사건은 탄핵이 거론될 정도로 충격파가 워낙 크다. 그래서 고발 사주 사건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지만, ‘윤석열 검찰’이 형사사법체계를 뒤흔들며 정치에 개입하려 했다는 점에서 진상규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까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결과를 토대로 밝혀진 내용은 이렇다. 21대 총선을 코앞에 둔 2020년 4월3일과 8일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은 김웅 미래통합당 후보에게 범여권 인사인 최강욱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등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처벌해달라는 고발장을 전달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주가조작)와 장모 최은순씨(은행잔고증명서 위조), 한동훈 검사장(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이하 호칭 생략)과 관련된 허위사실을 공표해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내용이었다.
뭍밑에 숨어있던 이 사건은 김웅에게서 이 고발장을 다시 전달받은 조성은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의 폭로로 2021년 9월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김웅이 조성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한 고발장 사진에는 ‘손준성 보냄’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있었고 김웅은 조성은과 통화하며 “제가 (고발하러) 가면 ‘윤석열이 시켜 고발한 것이다’가 나오게 되는 것”이라며 대리 고발을 요청했다. 2022년 5월 공수처는 손준성을 재판에 넘겼고 올해 1월, 1심은 “검사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인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해 검찰권을 남용하는 과정에서 수반된 것이라는 측면에서 (중략) 사안이 엄중하고 죄책 또한 무겁다”며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고발 사주’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은 오리털 점퍼에서 삐져나온 깃털 하나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하다. 무엇보다 검찰이 특정인과 언론사를 겨냥해 고발장을 작성하고 제3자의 이름으로 고발을 청부한 희대의 사건을 기획하고 지시한 ‘윗선’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손준성은 이 범죄를 기획할 직접적인 동기가 없기에 범죄 실행자로 봐야 한다. 수사정보정책관이라는 자리가 검찰총장의 눈과 귀, 수족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윤석열 총장이 이를 지시했는지 의심하는 건 상식적이다. 고발장에 명예훼손의 피해자로 적시된 이가 윤석열과 김건희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고발장 속 또 다른 피해자인 한동훈은 검찰발 1차 고발장이 작성되기 전날인 2020년 4월2일, 손준성과 권순정 대검 대변인이 함께 있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60여장의 사진을 올렸다. 한동훈이 고발장을 작성한 건 아닌지 의심해야 하는 것도 상식이다. 그러나 공수처는 한동훈(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과 윤석열(대통령 당선자)을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무혐의 처분했다. ‘피고인 손준성 검사’는 좌천돼야 마땅하나 지난해 9월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진실은 함구하고 ‘안고 가라’는 회유로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고발 사주’는 전모의 대부분이 땅속에 파묻힌 사실상의 ‘암장 사건’이다.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세종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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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준성 1심 선고 뒤 더불어민주당과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은 각각 윤석열·한동훈을 추가 고발했다. “헌정사상 유례없는 국기문란 사건인 ‘고발 사주 사건’이 손준성 검사장의 단독 범행이라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사세행)며 재수사를 요구했다. 오는 12월6일엔 두차례나 연기됐던 고발 사주 사건의 항소심 선고가 나온다.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며 항명죄로 기소돼 선고를 앞둔 박정훈 대령의 최후 진술로 글을 마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못 가리고 진실을 언제까지 숨길 수 없습니다. 거짓은 절대 진실을 이기지 못합니다.”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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