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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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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미국 조선업·해군이 무너지고 있다…한국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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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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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10년간 가장 중요한 일은 함정 건조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지난 9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나온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25년간 지상군과 특수부대에 많은 투자를 했지만 지금은 해군의 시대다. 조선업을 부흥시켜야 한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미국 패권의 기둥, 해군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국 조선업이 서서히 무너지면서 배 건조와 수리 역량이 현저히 약해졌기 때문이다. 미 해군은 군함 숫자를 늘리기는커녕 유지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로벌 1위’로 조선업 굴기를 완성한 중국은 해군 함정 수에서 이미 미 해군을 앞서기 시작했다.





미·중 조선업 생산력 “232배”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해상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6월 발간된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중국의 해군 구축 분석’(Unpacking China’s Naval Buildup) 보고서는 미국 위기감의 집약체다. 소련 붕괴 이후 처음으로 해상 지배력이 도전받고 있다고 진단한 보고서는 이 추세를 되돌리기 쉽지 않다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는다. 수십년간 진행된 미국 조선업 쇠퇴에서 비롯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중국이 현재 속도로 함대를 계속 확장하고, 미국이 조선업을 재활성화하지 못한다면, (해상에서) 중국이 승리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해전의 승리는 함정 숫자가 좌우한다. 미국 해군연구소의 월간지 ‘프로시딩스’ 2023년 1월호에 실린 기고문 ‘더 큰 함대가 이긴다’(Bigger Fleets Win)를 보면, 저자는 “소수의 고품질 함대를 가진 쪽보다 더 많은 함선을 보유한 쪽이 거의 이긴다”며 “역사적으로 28개의 해전에서 25번 승리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초기 손실 후에도 신속히 대체할 예비함대가 있고, 더 많은 정찰 자산을 통해 적을 효과적으로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플랫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점도 함선 수가 많은 쪽이 갖는 장점이다. 저자는 “중국 해군 함선은 2030년까지 460척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미국 해군은 260척으로 축소될 가능성 있다”며 “대규모 함대의 부재는 장기 분쟁에서 치명적인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함선 234척을 보유한 중국은 이미 세계 최다 함선 보유국이다. 미 해군은 219척을 보유 중이며, 이마저도 전세계에 분산돼 있다.



중국 해군이 함선 수만 많은 게 아니다. 중국의 군함 중 약 70%가 2010년 이후 진수된 비교적 새 배다. 미 해군의 군함은 약 25%만이 이 시점 이후 진수됐다. 해군 작전의 핵심으로 분류되는 구축함의 경우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23척을 진수했지만 미국은 11척에 그쳤다. 구축함보다 크고, 전함보다는 작지만 강력한 무장과 장거리 항해 능력을 갖고 있는 순양함의 경우 중국은 2017년 이후 8척을 진수했지만 미국은 1척도 만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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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인 ‘월리 시라’호가 함정 정비를 위해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 입항하고 있다. 한화오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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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차이가 더 벌어진다는 데 있다. 조선업의 역량 차이 때문이다. 미 해군정보국의 ‘중국 해군 건조 추세와 미국 해군 건조 계획(2020-2030)’ 자료를 보면, 중국은 미국 최대 조선소보다 규모와 생산성이 더 큰 상업용 조선소를 수십개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유출된 미국 해군 브리핑 자료에는 미 해군정보국이 평가한 미·중 조선업 역량 차이가 그래픽으로 등장하는데, 한 국가가 1년에 건조할 수 있는 총톤수 기준으로 중국 조선소의 생산능력을 약 2325만톤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은 10만톤 이하로 평가됐다. 중국의 생산 역량이 미국의 최소 232배에 이른다는 뜻이다.





세계 1위 미국 조선업, 몰락 원흉은 미국





강력한 미국 조선업은 2차 세계대전 승리의 일등 공신이었다. 독일 해군의 잠수함 공격으로 ‘미국-유럽’ 간 대서양 보급로가 막히자 미국은 ‘리버티선’이라 알려진 화물선을 대량생산해 보급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단순하고 효율적인 설계로 빠르게 찍어내는 데 집중한 ‘대량 건조 프로젝트’였다. 짧게는 며칠 만에 배 1척이 완성되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총 2710척의 리버티선이 탄생했다. 대량생산된 리버티선은 선박 손실을 빠르게 대체하면서 대서양 보급로를 되살렸다. 리버티선이 실어 나른 막대한 물량은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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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국 조선업은 전후 서서히 몰락해갔다. 조선업을 보호하겠다며 제정한 법 때문이었다. 1920년 탄생한 존스법은 미국 내 화물 운송에 사용되는 선박은 미국에서 건조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법에 따라 미국 조선업은 외국 조선업체와 경쟁을 피한 채 안정적인 물량을 수주할 수 있게 됐다.



결과는 의도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외국과의 경쟁에서 보호받은 미국 조선업은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갔다. 해외 조선소가 만든 싸고 좋은 배 대신 미국 내 조선소가 만든 비싸고 질 나쁜 배를 써야 했다. 해상 운임이 올랐다. 운임이 오르자 해상운송 수요가 줄었다. 운송 수요가 줄자 배 주문이 감소했다. 유지 보수 일감도 줄었다. 악순환이었다. 조선업 자체가 시들어갔다.



법 제정 60여년 뒤인 1981년 발간된 미 회계감사국(GAO) 보고서는 이런 실태를 잘 보여준다. 보고서는 “미국에서 대양 항해용 선박을 건조하는 데 해외보다 약 2년이 더 걸린다”고 밝혔다. 1985년 발간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의 보고서는 “미국에서 상업용 선박을 건조하려면 비용이 2배 더 든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로 접어들자 건조 비용은 외국 조선소의 3배에 이르렀다. 현재 미국에서 건조된 유조선의 가격은 비슷한 선박의 글로벌 가격보다 약 4배, 컨테이너선은 약 5배에 이른다.



조선업이 국제경쟁력을 잃어가면서 1983년부터 2013년까지 약 300개의 조선소가 미국에서 사라졌다. 조선업 고용 인원은 1981년 18만6700명에서 2018년 기준 9만4000명으로 감소했다. 현재 대형 상업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는 미국에 4개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당시 11개의 공공 해군 조선소와 60개 이상의 민간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놀라운 해군 함정 생산 기록을 세웠던 옛 미국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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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1일 한화그룹이 미국 필리조선소 지분 100%를 1억달러(약 14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전날 맺었다고 밝혔다. 미국 필리조선소 전경. 한화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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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과 첫 통화를 했다. 화제는 조선업이었다. 트럼프 당선자는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으며, 선박 수출뿐만 아니라 엠알오(MRO, 유지·보수·정비) 분야에서도 긴밀하게 한국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얘기한 ‘협력’은 크게 두 가지를 뜻한다. ‘수리’와 ‘조선소 인수’다. 미국 번스-톨리프슨 수정법(USC 8679)은 외국 조선소에서 함정 건조를 금지한다. 안보 문제 때문이다. 이 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한국·일본 등 외국 조선소가 미 해군의 배를 만들 순 없다. 하지만 ‘수리’는 예외 조항을 통해 일부 가능하다. ①해외에 배치된 미 해군의 군함을 한국·일본 등 동맹국 조선소에서 빠르게 수리하고, ②이들 나라 기업이 미국 조선소를 인수해 미국 조선업의 생산성을 끌어올려주길 기대한다. 한국과 일본의 여러 조선업체가 이 시장에 뛰어들었거나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해양전략연구소는 ‘미 해군 부활을 위한 한국의 역할’ 보고서에서 “한국이 미국에서 미 해군 함정을 건조하고 한국에서 미군 함정을 정비하는 데 참여한다면, 한-미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미국의 전략적 계산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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