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10월9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러셀 바우트 당시 예산관리실 실장을 지켜보고 있다.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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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는?
파파고는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어로 앵무새라는 뜻입니다. 예리한 통찰과 풍부한 역사적 사례로 무장한 정의길 선임기자가 에스페란토어로 지저귀는 여러분의 앵무새가 되어 국제뉴스의 행간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백악관 예산관리실(OMB) 실장에 러셀 바우트(48) 전 예산관리실 실장을 재임명했다 (…) 바우트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말기인 2019년 1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예산관리실장을 지냈다. 트럼프 당선인은 바우트를 “모든 정부 기관에서 미국 우선주의 의제를 시행하는 데 도움을 줄 공격적인 비용 절감자이자 규제 완화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그는 또 바우트가 연방 정부 내 기득권 세력을 의미하는 ‘딥 스테이트’(Deep State)를 해체하고 무기화된 정부를 종식하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는 전문가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11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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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딥 스테이트? 트럼프가 대통령에 재직할 때나, 이번 대선 때도 줄곧 딥 스테이트를 말했는데, 도대체 그게 뭐야?
A. 딥 스테이트를 그대로 번역하면 ’국가의 심부(深部)’ 정도가 되겠지. 국가 내 깊숙이 자리 잡고는 실제로 국가를 좌지우지한다는 세력을 일컫는 말이야. 딥 스테이트의 어원은 1990년대 마약단 등과 결탁해 나라를 조종하던 튀르키예 군부 등 공안기구 세력에서 유래됐어. 튀르키예어인 ‘데린 데블레트’를 그대로 영어로 번역했지.
딥 스테이트 담론은 세계를 조종하는 숨어있는 세력이 있다는 오래된 음모론의 연장선에 있어. 서방에서는 유대인 집단이 세계 지배를 획책한다고 주장한 ‘시온 장로 의정서’라는 문건이 20세기 초에 나왔는데, 이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영향을 줬어. 현대 음모론의 원조인 ‘시온 장로 의정서’는 그 이후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는데, 핵심은 세계를 지배하는 은밀한 세력이 있다는 거야.
미국에서 딥 스테이트 담론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미국 백인 민족주의 세력들이 연방정부를 조종하는 숨겨진 세력이 있다는 음모론을 주장하면서, 이 용어를 썼지.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미 대선에 출마하면서, “워싱턴 하수구를 청소하겠다”며 딥 스테이트를 거론하기 시작해, 유명해졌어.
Q. 그런데, 트럼프는 왜 딥 스테이트를 입에 달고 다니는 거야?
A. 모든 정치인은 나라를 새롭게 하겠다는 개혁을 내세우잖아. 트럼프의 딥 스테이트 담론도 같은 차원이기는 한데, 미국 체제가 특정 세력에 복무한다는 백인 민족주의 세력 등 지지층의 불만과 과격한 주장을 차용한 거지. 특히, 기존의 다른 대통령들과는 달리 워싱턴 정가 주류 출신이 아닌 트럼프는 재직 중에 자신을 당선시키기 위한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 등으로 특별검사 수사를 받고, 탄핵소추까지 당한 경험도 있어. 트럼프는 이를 자신을 제거하려는 딥 스테이트들의 음모라고 주장하고, 지지층들도 철석같이 믿으며 딥 스테이트 담론이 커진 거지.
트럼프는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한 특검의 수사가 자신을 조이던 2018년 5월23일 트위터에서 “범죄적인 딥 스테이트 주변에서 돌아가는 일들을 보라. 그들은 러시아와의 가짜 공모를 추적하고, 사기를 친다. 이 나라가 전에 볼 수 없던 큰 스파이 스캔들로 귀결되고 있다”고 주장했어. 당시 온라인 공간에서는 ‘큐(Q)’ 혹은 ‘큐어넌(QAnon·큐와 익명을 뜻하는 ‘어나니머스’의 합성어)’이라는 익명의 인물이 활동했어. 그는 트럼프와 지지자들을 노리는 음모를 꾸미는 ‘국제 관료 집단’인 딥 스테이트를 폭로하는 정부 내 인물로 자처하며 트럼프 지지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어.
2021년 1월6일 미국 워싱턴 연방의사당에서 트럼프의 대선 패배가 조작됐다는 지지층의 폭동, 기억나지? 트럼프를 제거하려는 딥 스테이트 음모론이 큰 배경이지. 트럼프는 이 의사당 점거 폭동으로 다시 수사 당국의 수사를 받고 처벌 위기에 처했으나, 이를 오히려 지지층 결속에 이용하며 결국 대선에 승리했어. 트럼프는 이번 대선 운동을 시작한 지난해 3월25일 텍사스 와코 유세에서 “딥 스테이트가 미국을 파괴하는지, 우리가 딥 스테이트를 파괴하는지, 마지막 전투”라고 이번 대선을 규정하는 등 선거 운동 내내 “딥 스테이트를 박살내겠다”고 말하고 다녔어.
지난 2020년 12월 엔피알(NPR)/입소스 여론조사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39%, 특히 백인과 비도시 거주자 응답자의 49%가 트럼프를 해치려는 딥 스테이트가 있다고 믿고 있어. 몬머스대학의 2018년 3월 여론조사에서는 ‘국가 정책을 은밀히 혹은 직접적으로 조종하는 선출되지 않은 정부와 군의 관료 집단’이 미 연방정부에 ‘확실히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 27%, ‘그런 집단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47%였어. 미국인의 74%가 딥 스테이트 담론에 공감했다는 거지.
Q. 그런데, 중요한 것은 트럼프가 말하는 딥 스테이트라는 게 정말 있냐는 것 아닌가?
A. 딥 스테이트는 애초 음모론에서 나온 말이기는 한데,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미국이나 세계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은밀한 세력의 실체가 있기는 힘들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어떤 국가나 사회에서도 공식적인 권력에 영향을 미치는 세력이나 집단은 있었지. 중국 역사에서 환관 권력이 대표적이고, 한국에서도 전두환 정권 때 하나회라는 군부 실세들이 있었잖아. 미국에서도 군 출신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군산복합체’라는 말을 하기도 했어.
트럼프는 이 딥 스테이트를 연방정부 내에 자리 잡은 관료, 안보·정보 기구, 법원과 수사기관 내의 기성세력으로 겨냥하는 것 같아. 이들을 숙청해 워싱턴 권력의 교체를 이뤄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겠다는 정치적 의도도 있겠지.
이번 트럼프의 대선 공식 누리집에는 “딥 스테이트를 해체하고 미국민에게 권력을 돌려주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이라는 ‘어젠더(의제) 47’이 있어. 트럼프는 동영상 연설에서 “딥 스테이트를 해체하고 워싱턴의 부패에서 민주주의를 완전히 회복하는 나의 계획”이라며 “우선, 나는 즉각적으로 2020년 행정명령을 재발동해 불량한 관료들을 제거하는 대통령 권한을 회복하고, 그 권력을 아주 공격적으로 행사하겠다”고 밝혔어. 그는 △안보·정보 기구 내의 부패분자 청소 △정적들을 목표물로 삼는 사법시스템의 무기화 종식 △딥 스테이트의 사찰, 검열, 권력남용에 대한 모든 서류를 비밀해제하고 공표하는 진실 화해위원회 설립 등 10가지 딥 스테이트 해체 계획을 밝혔어.
한마디로 연방정부에서 비우호적인 기존 공무원들을 숙청하겠다는 거지.
Q. 하지만 트럼프의 지지층이나 심지어 한국의 진보 세력 내에서도 트럼프의 딥 스테이트 해체를 오랜 기득권 세력을 해체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도 있지 않나?
A. 트럼프의 의도와 상관없이 대외정책과 관련해 그런 기대를 하는 쪽이 있지. 트럼프나 지지층들은 그동안 미국 정부가 국민을 돌보지 않고, 큰돈을 써가며 해외분쟁에 개입했다고 비판적이야. 그래서 트럼프는 자신이 취임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24시간 만에 끝내겠다고 장담하고, 지지층이나 해외에서도 긍정적 평가를 받지. 트럼프는 전쟁을 지속하려는 세력을 ‘딥 스테이트 글로벌리스트’이라고 규정하고, 비난하고 있지.
사실, 워싱턴의 외교·안보 기성세력이 ‘딥 스테이트’가 됐다는 질타가 있는 것도 사실이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안보보좌관이었던 벤 로즈는 워싱턴 주류의 외교·안보 인사들을 ‘떼거리’나 ‘적폐’ 정도의 의미인 ‘블로브’(Blob)라고 질타해 큰 논란을 불렀어. 2016년 5월 ‘뉴욕 타임스 매거진’ 기사에서 로즈는 “블로브에는 유럽과 중동에서 미국의 안보 질서가 붕괴됐다고 끊임없이 칭얼거리는 힐러리 클린턴, 로버트 게이츠 및 민주·공화 양당의 이라크전 지지자들이 포함된다”고 말했어. 로즈에 따르면, “당파를 뛰어넘는 대외정책 엘리트”로 포장된 블로브는 미국의 힘을 남용해 미국을 너무 많은 난장판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지. 트럼프도 이들에 대해 “완전한 이력서를 가졌으나 실패한 정책과 계속되는 전쟁 패배의 긴 역사에 대한 책임을 제외하고는 자랑할 것이 없는 이들”이라며 자신의 ‘미국 우선주의’ 노선을 정당화하고 있어.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인사가 중앙정보국 등 미국 정보기관들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에 지명된 털시 개버드 전 하원의원이야. 민주당 출신인 개버드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미국의 전쟁 개입에 반대하다가 트럼프 진영으로 전향했지. 반전 평화주의 성향인 그는 미 정보기관의 전쟁 개입 등에 완강한 반대 입장이고, 미국이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세균실험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워싱턴의 외교안보 인사들은 당파와 상관없이 국가안보에 위해한 주장을 하는 개버드의 국가정보국장 임명을 최악이라고 경악하고 있지.
Q. 논란이 많은 트럼프의 차기 행정부 인선이 ‘딥스테이트’ 제거를 겨냥한 것이라 할 수 있겠네.
A. 미국 행정부의 ‘빅4’라는 국무·국방·재무·법무장관 지명을 보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국방·법무에는 애초 워싱턴 정가 주류와는 거기가 먼 ‘듣보잡’ 인사인 폭스뉴스 진행자 피트 헤그세스와 맷 게이츠 하원의원을 지명했는데, 게이츠는 미성년자와 성관계 의혹으로 낙마했지. 국무장관에는 기성 정치인인 마코 루비오를 지명했고, 재무장관에는 월가의 헤지펀드 소유주인 스콧 베센트를 지명했어. 특히, 베센트는 우파 진영에서 ‘세계 지배를 꿈꾸는 글로벌리스트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조지 소로스와 함께 일을 한 경력이 있어.
이런 인선을 보면, 트럼프의 딥스테이트 척결 주장과 모순되기도 하고, 제대로 관철될지 의문이기도 하네. 트럼프의 딥 스테이트 척결 주장이 워싱턴이나 국제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켜보자고.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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