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6 (화)

이슈 오늘의 외교 소식

사도광산 추도식 파행 후 한·일 외교장관 회담…'항의'보단 '협력'에 방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2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피우지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본 외상과 약식 회담을 했다. 조 장관은 이 자리에서 사도광산 추도식 파행과 관련한 항의보다는 향후 관계 관리와 협력에 방점을 찍었다. 다만 과거사 문제에 있어 일본에게 또 '뒤통수'를 맞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적절한 후속 대응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일보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의 참석을 위해 이탈리아로 출국하는 모습. 외교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협력 모멘텀 지속에 공감"



외교부는 이날 조 장관과 이와야 외상의 회담 소식을 알리며 "양 장관은 지난 24일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불거진 문제가 양국 관계 발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고 이제까지 가꿔온 양국 협력의 긍정적 모멘텀을 이어 나가자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조 장관이 이와야 외상에게 추도식 파행과 관련해 유감의 뜻을 표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정부는 이번 사태가 한·일 관계 전반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입장이다. 강인선 외교부 2차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추도식 문제가 한·일 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개별 사안으로 관리되도록 일본 측과 긴밀히 소통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는 정부가 여전히 사도광산과 관련한 여론의 반발과 논란의 본질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으로도 이어진다. 이번 사태는 일본이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 양국 합의의 정신을 어긴 것이 발단인데, 이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따져묻기 보다는 향후 협력에만 무게를 두는 것처럼 보일 여지가 있어서다.

게다가 이번 약식회담은 애초에 약속을 깬 일본이 아닌 한국의 요구로 이뤄진 모양새다. 앞서 외교부 당국자는 "어떤 형태로든지 (조 장관이) 현장에서 (이와야 외상을) 볼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추도식 파행 사태 직후 마련된 고위급 회담에서 사도광산 문제의 '총책임자'격인 외교장관이 분명한 항의를 하기보다는 '앞으로도 일본과 잘 해보기로 했다'는 취지의 메시지만 대외에 공개한 데 대한 아쉬움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자칫 일본이 향후 역사 문제에 더 성의를 보여야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우기보다 이번 사태 또한 한국의 민감한 반응에 기인한 일회성 논란이었다는 잘못된 교훈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외교부는 이날 약식 회담 소식도 별도 보도자료가 아닌 응대용 '언론 대응 지침'(PG·press guidance)으로 알렸다.

중앙일보

사도광산 조선인 희생자 유족들이 지난 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열린 추도식을 마친 뒤 갱도를 찾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불참 자체가 강한 유감"



정부는 추도식 불참 자체가 "강한 유감의 표명"이라는 입장이다. 강 차관은 이날 "(지난 24일) 일본이 주최한 추도식에 우리 측이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한 건 당초 한·일 간 합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추도식을 일본이 개최한 것에 대해 우리 정부가 강하게 항의한 것이고, 그 자체로 강한 유감을 표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전날 외교부 당국자는 주한 일본 대사관을 '접촉'해 "추도식 관련 한·일 협의 과정에서 일본이 보여준 태도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한다. 다만 자국 주재 타국 고위급 외교관을 외교부 청사로 '초치'(招致)해 항의하는 방식은 아니었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그간 정부는 일본의 역사 도발에 주한 일본 대사관 고위급 관계자를 초치해 대면 항의해왔는데, 이보다 수위가 낮은 형식이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앞서 외교부는 추도식 전날인 23일에도 일본에 전격 불참을 통보하면서도 항의와 유감을 표명했다고 한다. 일본 측은 추도식 직전에야 추도사를 공유해 왔는데, 정부가 요구했던 한국인 노동자 동원의 강제성 인정이나 사과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정부가 불참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강인선 외교부 2차관이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에 참석한 모습.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유네스코 공동 조치 촉구해야



현재 정부가 할 수 있는 후속 대응으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차원의 공동 조치를 촉구하는 것이 꼽힌다. 지난 7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일본은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사도광산 '현장에' 반영하라"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권고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따르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일본이 등재 직전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마련한 전시관 어디에도 '강제'라는 표현은 없었다. 추도사도 식순에서 아예 제외한 채 강제 노동에 대한 언급이 빠진 '인사말'로 대체했다.

중앙일보

지난 24일 오후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서쪽에 있는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모식'에서 한국 정부 대표자와 관계자들의 자리가 비어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앞서 일본은 2015년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 때도 강제노역 역사를 충분히 알리겠다고 약속한 뒤 이를 지키지 않는 꼼수를 거듭했다. 이에 유네스코는 2021년 일본의 역사 왜곡 등 약속 미이행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는 결정문을 이례적으로 채택했다.

일본의 거듭된 '약속 파기'에 대해 한국이 국제사회 차원에서 관심을 환기하고 정식 문제 제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그래서 나온다. 이와 관련,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유네스코 차원의 대응 유도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일각에선 대일 항의의 표시로 박철희 주일 한국 대사의 소환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이는 가장 수위가 높은 외교적 항의의 조치에 해당, 이번 사태가 '2차전'으로 번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유족에 사과 없이 "다행이다"



추도식 파행 국면에서 정부가 유족을 대하는 태도도 아쉬움을 남긴다는 지적이다. 강 차관은 이날 "외교부가 자체적으로 개최한 추도식을 통해 유족분들께서 그래도 가족을 기억하고 추도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일본이 했던) 약속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추도식이 개최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해명했다.

중앙일보

박철희 주일 한국 대사와 사도광산 유족이 지난 25일 오전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소재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 제4상애료에서 열린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만 당초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의 유족 9명은 일본의 진정성이 담긴 추도식을 기대하고 사도섬으로 향했지만, 일본의 사과는 받지 못한 채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별도 추도식에만 참석하고 현장을 둘러본 뒤 돌아왔다. 유족은 물론, 이번 사태로 대일 외교에 우려를 갖게 된 국민을 향해서도 정부의 적절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