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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세기 로마에 포르켈루스(Porcellus)라는 사람이 살았다. 싸움 잘하는 장군도, 말 잘하는 정치가도, 노래 잘하는 가수도, 멋진 근육의 검투사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로마 역사의 한 귀퉁이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사연인즉 이렇다. 그는 문법 학교의 교사였다. 까칠하고 꼬장꼬장한 라틴어 ‘훈장’이었다. 특히 사람들이 라틴어 문법에 어긋나는 말을 하거나 어떤 단어나 문장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자신의 이익이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거나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말과 언어를 자의적으로 사용하거나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목숨까지 내놓고 맞섰다.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의 말이다.
“포르켈루스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연설에서도 잘못을 찾아내어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아테이우스 카피토가 ‘황제의 말은 라틴어 문법에 맞는 표현이고, 설령 잘못된 말이라 할지라도, 황제가 말하는 그 순간부터 올바른 라틴어가 될 것’이라고 옹호하자, 포르켈루스는 ‘카피토의 말은 헛소리입니다. 황제께서는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할 수는 있지만, 단어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실 수는 없습니다’라고 응수했다.”(<로마의 문법학자들> 24장)
황제라 할지라도 “단어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실 수 없다”고 한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권력자라 하더라도 단어의 사용권과 해석권을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말(verbum)이나 사건(factum)에 대한 해석’이 특정 집단의 독점물도, 황제의 전유물도 아니라는 것이다. 참고로, 포르켈루스의 원래 직업은 권투선수였다. 일개 주먹꾼이었던 그가 감히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맞섰던 것은, 단지 그가 라틴어를 사랑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단어의 시민권(civitas verbi)은 황제(Caesar)가 아니라 국민(Populus)의 것’이라고 보는 당시 문법학자들의 언어관도 한몫 크게 거들었다. 문법학자 바로(Varro)에 따르면, 언어의 주인은 국민이고, 말의 사용권과 해석권은 시민의 공유물이었다. ‘국어사전’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어의 시민권도 특정 집단의 독점물이나 권력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과 시민의 공유물이므로.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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