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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기자의 시각] 이스라엘 가자 국경서 들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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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중요한 건 사운드다. 눈으로는 수용소 밖의 아름다운 전원주택 풍경이 보이지만, 귀로는 총소리와 비명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영화는 보여주지 않기를 택함으로써 수용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듣는 이의 귓가에 유령처럼 맴도는 소리로써.

지난 20일 방문한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국경 지대도 청각으로 먼저 인식됐다. 곳곳에 폐허가 된 집들이 과거의 일들을 속삭이듯 보여주고 있었다면, 이날만 해도 수차례 울린 이스라엘군의 발포음은 귀청이 떨어져라 외쳐댔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이다. 발포음이 들릴 때마다 화들짝 놀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길 반복했다. 진정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대부분은 이 같은 소음이 익숙한 듯 동요하지 않았다. 호들갑스레 놀란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가자지구를 약 500m 앞둔 지역에서도 포성은 멎지 않았다. 여기에 키부츠(집단농장)에서 털털 돌아가는 환풍기 소리가 더해졌다. 남들은 위험천만하다고 지레 겁부터 먹는 국경 지대에서도 삶은 이어지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일상의 소리였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가늘게 떠보아도 국경 너머의 풍경은 잘 보이지 않았다. 벽을 넘지 않는 한, 안전한 ‘여기’에 머무는 한 결코 ‘저기’를 알지 못하리란 걸 언뜻 느꼈다.

반면 눈에 보였던 건 들리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이를테면 텔아비브의 아름다운 해안선, 석양이 내려앉은 황금빛 예루살렘, 자정이 되도록 테라스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 상쾌한 하늘과 겨울로 접어드는 와중에도 오색 빛깔로 피어나는 꽃 같은 것들 말이다. 복잡하게 얽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현실을 두 눈으로 보겠단 의욕을 품고 갔다가 계속되는 청각과 시각의 불일치로 갈수록 심경이 복잡해졌다. 보지 못하는 것, 저 너머의 세계가 궁금했다.

출장 마지막 날, 이스라엘 국방부 산하 민간협조관을 만났다. 가자지구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는 그는 몇 차례 가자에 가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에게 물었다. 한국인들은 외신을 통해 전해들을 수밖에 없는 가자의 풍경은 대체 어떠냐고. 그곳에서도 삶은 이어지냐고. 사내는 얼버무렸다. “글쎄요...그들의 삶이 쉽진 않아 보이더군요.” 가자지구 내 사망자가 4만 명이 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자 그는 하마스가 운영하는 보건부의 집계를 믿을 수 없다 잘라 말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올 초 아카데미상에서 국제 장편영화 부문을 수상했다. 유대계 영국인인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그들이 그때 무엇을 했는지 보라’고 말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보라’는 것”이라고 했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간인 폭격을 비판한 것이다. 다시 그날 풍경을 떠올려 본다. 국경선 코앞에서도 끝내 보지 못했지만, 심장까지 울리던 소리로 짐작할 수 있었다. 때론 시각보다 청각이 더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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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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