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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지평선] 쿠르스크 대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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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우크라이나 유력 언론인 안드리 차플리엔코(56)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텔레그램에 쿠르스크 지역 북한군의 최초 동영상이라고 주장하며 글과 함께 3건의 영상을 게재했다. 텔레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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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공격하고 방어하는지 구분이 안 된다. 전차가 기동할 공간도 없었다. 전차 요원은 코앞의 적을 향해 포를 쏴야 했다.” 2차 세계대전 시기 소련의 쿠르스크에서 벌어진 독일과의 전차전을 기록한 한 소련 장성의 글이다. 1943년 2월 종료된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시가전이었다면, 5개월 뒤 벌어진 쿠르스크 전투는 사상 최대 기갑전으로 기록된다.

□독일은 티거, 판터 등 전차 2,700대, 소련은 T-34 등 3,300대를 동원한 거대한 살육전이었다. 참전 인원만 220만 명이다. 넓은 평원지대라는 무대가 백병전에 가까운 기갑부대 대회전의 배경이다. 스탈린그라드 참패를 만회하고 모스크바 재침공 발판을 마련하려던 히틀러의 쿠르스크 선제공격은 소련의 사전 준비와 맹렬한 저항에 꺾였다. 소련군이 미리 깔아놓은 40만 개 지뢰밭으로 독일 전차들이 돌진한 격이었다. 대손실을 입은 독일은 때마침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으로 작전 개시 12일 만에 퇴각하면서 소련과의 전쟁 주도권을 상실했다.

□ 80년 만에 쿠르스크가 전쟁 중심에 섰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땅따먹기에 혈안이 된 사이 우크라이나 정예부대가 8월 쿠르스크 침투로 허를 찔렀다. 파죽지세로 서울 면적 이상 점령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전략적 논란도 많았다. 수적 열세인 우크라이나군의 전력 분산에 따라 취약성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1만여 북한군까지 끌어들여 쿠르스크 수복을 벼르고,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 본토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장거리미사일 공격과 대인지뢰 사용을 허용하는 걸로 맞섰다.

□ 미국과 영국은 북한의 참전을 비난하며 에이태큼스와 스톰섀도 공격을 허용한 터라 북한군을 표적으로 삼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북한군의 위장술을 과소평가할 건 아니지만 서방의 최첨단 탐지 능력을 벗어나긴 쉽지 않다. 벌써 스톰섀도 공격에 의한 북한 병사 500명 사망설이 나돈다. 새로운 전쟁무기인 드론까지 가세한 쿠르스크 개활지에선 전차든 군인이든 노출 즉시 타깃이 된다. 그런데 이달 초 러시아를 방문한 북한 외무상 최선희는 “러시아가 승리할 때까지 함께 할 것”이라니 할 말이 없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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