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법’ ‘민식이법’…. 학대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이의 이름을 딴 법이다. 큰 사건이 터지면 일사천리로 없는 법까지 만들지만 대부분 아동은 왜, 어떻게 사망했는지 검토하지 않은 채 사망 처리된다. 반면에 미국·영국·일본은 일찍 아동사망검토제(CDR)를 도입해 재발을 막을 예방책을 찾는다. 중앙일보는 국과수가 최근 10년간 부검으로 확인한 3048명의 아이들이 남긴 ‘다잉메시지’를 통해 어른들이 관심과 주의를 조금 더 기울였다면 막을 수 있는 죽음이 많다는 사실을 심층 취재했다.
아동학대(방임) 행위자로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사례관리를 받고 있는 윤인욱(가명·41)씨가 지난달 14일 서울 시내의 한 어린이 놀이터에 앉아 있다. 김성룡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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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8명의 다잉메시지’를 학습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아동사망검토시스템(NFS-CDRS)이 실제 아동학대 사례를 프로파일링한 결과 보고서를 중앙일보가 최초로 입수했다. 국과수는 아동학대 판단·사례관리 등을 돕기 위해 사망 사건의 ‘학대연관성 분석 의견서’는 수사기관에, 비사망 사건의 경우 ‘보육환경분석 의견서’를 지방자치단체와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제공한다.
분석 대상은 ‘부모의 방임’으로 서울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에서 사례관리를 받는 윤이서(가명·8)양 가정이다. 지난달 14일 만난 친부 윤인욱(가명·41)씨는 “치부(恥部)이지만 학대가 줄었으면 마음은 똑같다”며 결과 공개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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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엄마와 생후 100일 옷장 속 갇힌 아이
이서의 방임은 8년 전 생후 100일부터 시작됐다. 2016년 10월 당시 친모 서정화(가명·41)씨 지병인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가 악화한 게 계기였다. 서씨는 이서가 계속 운다는 이유로 옷장에 가뒀다. 이를 발견한 아버지의 신고로 이서는 시설로 분리 조치됐다. 이서가 부모 품으로 돌아오는 데 4년이 걸렸다. 방임의 원인이 된 서씨의 정신장애 치료와 주거 환경 개선이란 조건이 붙었기 때문이었다. 비정규직이던 부부가 돈을 모아 반지하 단칸방에서 방 2개 이층집으로 이사한 뒤 2020년 10월 이서를 데려올 수 있었다.
김영희 디자이너 |
하지만 3년 만인 지난해 10월 일터 동료와 갈등으로 큰 스트레스를 겪은 어머니 서씨의 병세가 악화했다. 새벽에 퇴근한 윤씨 눈에 난장판이 된 집안 한 켠에 방치된 이서가 눈에 들어왔다. 딸은 시설로 재분리 조치되고 아내는 병원에 강제 입원됐다. 윤씨의 스트레스도 폭발했다. 집을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아 한 달 동안 차에서 먹고 잤다. 윤씨는 “마포대교에서 투신을 시도하려다 이서 얼굴이 떠올라서 내려왔다”고 말했다.
일곱 살이 된 이서는 시설 생활을 완강히 거부했다. 윤씨 부부도 마지막이란 마음으로 다시 사례관리를 시작했다. 친모는 약 복용을 재개하고, 아보전의 도움을 받아 집을 깨끗이 치웠다. 법원 가정복귀 심리를 거쳐 지난 8월 이서는 집으로 돌아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아동사망검토시스템(NFS-CDRS) 기반 아동학대 프로파일링(양육환경분석 의견서) 자료를 취재진이 살펴보고 있다. 김종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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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방임)로 사례관리를 받고 있는 윤씨 가정에 대한 국과수 아동학대 프로파일 분석(양육환경분석 의견서). 김종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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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방임)로 사례관리를 받고 있는 윤씨 가정에 대한 국과수 아동학대 프로파일 분석(양육환경분석 의견서) 주요 내용. 김종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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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네 경고등 켠 아동학대 프로파일링
국과수 아동사망검토시스템(NFS-CDRS) 프로파일 분석 결과, 윤씨 가정의 경우 8개 아동사망 유형 중 6. 방임으로 인한 영아 사망과 3. 모친의 자녀살해와 위험 요인이 겹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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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입수한 22페이지 분량의 ‘보육환경분석 의견서’에 따르면, 윤씨 가정의 경우 8개 아동 사망 유형(아동고문~정신병적 살해) 중 ①방임으로 인한 영아 사망 ②모친의 자녀살해 유형과 비슷한 속성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과수는 윤씨 가정과 위험 요인이 겹치는 아동사망 사례를 각각 5개씩 명시했다. ①번 유형의 경우 생후 5개월 영아를 키우는 친모(30)가 친부와 갈등을 겪은 뒤 모텔에서 아기와 투숙한 뒤 사망한 사례가 제시됐다. ②번 유형의 경우 조현병과 우울증을 앓던 친모(34)가 아들(2)의 입과 코를 막아 질식사한 사례와 위험 요인이 겹쳤다.
국과수는 “이서의 경우 생후 3개월에 옷장에 갇히는 심각한 방임을 경험했지만 개입이 즉각적으로 이뤄져 기적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며 “특히 친부의 지지적 역할이 아이의 사망을 막은 결정적 보호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친부는 친모의 병시중과 자녀 분리의 아픔에도 가족에 대한 사랑, 책임감, 문제 해결 의지로 이를 이겨내 왔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를 읽은 아버지 윤씨는 “마음이 울컥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잘해야겠다는 경각심이 든다”고 말했다.
국과수는 지난해부터 지자체와 아동보호전문기관에 프로파일 분석 결과를 제공하고 있다. 현장 만족도도 높다. 김채영 오산시 아보전 사례관리1팀장은 “지난 6월 한 방임 사례 개입 과정에서 국과수 보육환경분석 의견서를 활용했는데 부모와 아동을 모두 보호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직감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객관적 자료가 있으니까 지자체 학대전담공무원과 협의가 수월했다”고 말했다.
국과수 아동사망검토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수 조사는 아닌 데다, 아동복지 시스템과 연계된 자료는 국과수 권한 밖에 있기 때문이다. 연구에 참여한 양경무 서울과학수사연구소장은 “법학자, 사회학자, 아동보호전문가, 공학자, 양육자 등 다양한 주체가 머리를 맞대야 더 좋은 예방책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 글 싣는 순서
1화 - 아이들의 ‘숨은 죽음’
2화 - 죽음 막는 아동학대 프로파일링
3화 - 우연한 아동 사고사는 없다
※아래 링크에서 시리즈 기사를 읽어보세요.
https://www.joongang.co.kr/series/11693
이영근·이수민·이찬규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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