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을 거부하는 전국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주최로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김건희 특검 수용, 국정농단 규명! 윤석열을 거부한다 시민행진’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휴대전화 불빛을 비추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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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운 | 이슈팀 기자
“대통령은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고, 비선 실세에게 국정을 넘겨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하였다. 대통령은 현재의 국기 문란 사태와 앞으로 밝혀질 진상에 대해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하며, 대한민국 국민이 그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다.”(2016년 10월26일, 이화여대 시국선언문)
8년 전 11월, 대학교 새내기이던 나는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 광화문 거리로 향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 대신, 그의 친밀한 지인 하나가 나랏일에 손을 대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진 때였다.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풍물패와 함께 거리를 행진하고, 촛불을 들고 걷다 청와대 바로 앞에서 경찰에 가로막혔던 기억이 생생하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순간, 등굣길 버스 안에서 휴대전화로 생중계를 지켜보다 주먹을 불끈 쥐면서도, 알 수 없는 슬픔에 휩싸였던 순간을 기억한다.
“우리 국민은 … 대통령의 공약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다. 국민적 의사를 전적으로 묵살한 4·13 폭거는 시대적 대세인 민주화를 거스르려는 음모요, 국가 권력의 주인인 국민을 향한 도전장이 아닐 수 없다. 국내외의 조롱과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며,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사태를 스스로 잉태하는 것임을 경고해둔다.”(1987년 6월10일, 6·10 국민대회 선언문)
37년 전 6월, 서울 명동 거리에는 나의 아버지가 있었다. 직선제 개헌을 향한 열망을 단칼에 무시한 대통령의 ‘4·13 호헌조치’는 대학생들의 피를 들끓게 했다. 최루탄과 ‘지랄탄’에 눈물 콧물을 쏟고, 숱한 경찰 연행을 거쳐 마침내 ‘6·29 선언’이 발표되던 날을 아버지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폐허 속에 부끄럽게 머물지 않고, 인간다움을 삶에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무관심하며,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무지와 무책임으로 제멋대로 돌진하는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2024년 11월13일, 경희대·경희사이버대 교수·연구자 시국선언문)
그리고 올해 11월, 막 기자 생활 2년차에 접어든 나는 훗날 어떤 이름이 붙을지 모를 대통령 부부의 각종 의혹 취재에 뛰어들었다. 취재 결과 대통령 부인이 국정에 개입한 정황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민간인 1명이 대통령 부부를 등에 업고 국회의원 후보 공천과 각종 국가사업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심상치 않다. 8년 전, 그리고 37년 전과 비슷한 분위기다. 대학교수·학생들의 시국선언문이 속속 발표되고, 다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국민의 문제 제기에도 꿈쩍 않고 ‘동문서답’하며, 심지어 이를 ‘거부’해 버리는 정권의 모습마저 판박이다.
언제까지 국민이 직접 거리로 나서 정치를 바로잡아야 하는가. ‘거리의 정치’로 세상을 바꿔온 역사는 분명 자랑스럽지만, 이것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2024년, 이 의혹의 끝이 어디일지 알 수 없으나, 부디 또다시 거리에 나선 국민에 의해 끌려 나오는 ‘불운한 대통령’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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