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한국은행(이하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마이크를 조정하고 있다. 2024.11.28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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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한국은행이 지난달 이어 2회 연속(백투백) ‘깜짝 인하’를 결정했다. 백투백으로 ‘돈 풀기’에 나선 것은 15년 9개월 만이다. 1%대 저성장 문턱에 진입한 한국 경제에 트럼프의 ‘고관세 공포 ’까지 엄습하고 있어서다.
이날 한국은행(이하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지난달 3년 2개월 만에 금리 인하로 경로를 튼 데 이어 연속으로 금리를 인하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10월~2009년 2월까지 6회 연속) 이후 처음이다. 한국과 미국(연 4.5~4.75%)과의 금리 격차는 다시 1.75%포인트로 벌어졌다.
김영옥 기자 |
이달 통화정책의 난도는 높았다. 한국은행은 1400원대 고환율(원화 약세) 압박에 금융안정(동결)을 결정할지, 아니면 경제 동력인 수출 둔화와 얼어붙는 내수에 ‘경기부양(인하)’을 할지 갈림길에 섰기 때문이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 이날 금통위원 6명 중 4명은 금리 인하 의견을, 나머지는 ‘동결’을 택했다. 그동안 ‘동결’에 무게를 뒀던 시장이 ‘깜짝 인하’로 평가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뚜렷한 데이터(지표)가 한은이 두 달 연속 돈을 풀기로 결정한 단초가 됐을 것으로 본다. 한은은 이날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8월 예상치) 2.4%에서 2.2%로 낮췄다. 특히 내년엔 2.1%에서 1.9%로 내렸다. 1.9%는 한은이 추정하는 잠재성장률(2%)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로, 한국의 저성장 진입을 예고한다. 나아가 2026년 성장률 전망치를 1.8%로 제시했다. 경쟁 심화에 따른 수출 증가세 둔화를 구조적 요인으로 전제하고 수년 간의 1%대 성장 고착화 우려를 던진 것이다.
1980년 이후 성장률이 2% 미만을 기록한 해는 2차 오일쇼크가 터진 1980년(-1.6%), 외환위기인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0.8%),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기간인 2020년(-0.7%)과 2023년(1.4%) 다섯번 뿐이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만큼 기준금리를 추가로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며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낸 이유를 설명했다.
김영옥 기자 |
몸집을 키우는 ‘트럼프 포비아(공포증)’도 국내 경제를 압박한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이 확정되면서 국내 수출 기업은 고관세 폭탄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미약한 내수 회복세를 메워온 수출 둔화 폭은 더 커질 수 있다. iM증권에 따르면 이달 국내 수출 증가율(블룸버그 예상치)은 전년 동월 대비 2.8%로, 9월(7.1%)과 10월(4.6%)보다 빠르게 둔화되고 있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가 관세 폭탄을 현실화하면 내년 초 (수출증가율이) 역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은도 트럼프발 불확실성이 경기 하강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봤다. 특히 내년 성장률이 기존 전망보다 0.2%포인트 더 내린 1.7%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미국의 무역장벽으로 글로벌 무역 갈등이 격화될 경우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적 노력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될 경우 내년 성장률이 2.1%로 오를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함께 제시했다.
통화정책의 우선순위인 ‘물가 안정’ 측면에선 금리 인하 여건은 마련됐다. 9월(1.9%)부터 1%대로 내렸고, 10월엔 1.3%로 2021년 1월(0.9%) 이후 가장 낮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망치)은 각각 2.3%, 1.9%로 지난 8월 예상치(2.5%, 2.1%)를 하회할 전망이다.
반면 금리인하 결정으로 ‘1400원대 고환율(원화 약세)’ 부담은 커졌다. ‘트럼프 트레이드’에 미국 달러가 질주할 때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상대적으로 원화가치는 더 떨어질 수 있어서다. 화폐가치가 하락하면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외국인의 자금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
한은이 ‘깜짝’ 인하를 단행한 28일 원화가치는 주간 외환시장에서 종가기준(오후 3시 30분) 전날보다 달러당 1.4원 소폭 오른(환율은 하락) 1395.6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1달러당 1391원에 개장한 원화값은 금리 인하 발표 소식 직후엔 1396원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는 고환율 우려보다 ‘1%대 저성장’ 탈출이 더 시급한 과제라며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국내 채권시장에선 여전히 아시아ㆍ유럽계 외국인 보유 비중이 높고, 달러 약세를 선호하는 트럼프 당선인 특성상 원화가치가 (1달러당) 1400원 중반대까지 밀려나긴 어렵다”며 “한국의 경제 상황과 물가를 고려해 추가로 금리를 더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도 금리 인하 추가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 총재는 "6명 중 3명은 앞으로 3개월 내 연 3%보다 낮은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한은이 내년 1분기와 2분기에도 또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골드만삭스는 한은이 내년 2.25%까지 기준 금리를 낮출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다만 한은의 통화정책만으로는 경기하강을 막기엔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면 경제성장률을 0.07%포인트 높일 수 있다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물가가 하락하고, 성장률이 떨어진 상황에선 금리 인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경제 성장세가 더 둔화하기 전에 정부는 보다 공격적인 부양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0.25%포인트)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대부분 빚을 갚지, 투자나 소비로 이어지긴 쉽지 않다”며 “통화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보니 정부가 나서서 국내 기업 경쟁력을 키우는 등 한국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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