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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소년의 배려… 내 마음이 한 뼘쯤 넓어졌다[고수리의 관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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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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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가던 길이 평소와 달랐다. 초록불이 점멸하는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황망해졌다.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난 지하철 계단에서 아득해졌다. 낯선 두려움을 맞닥뜨렸다. 내 다리로 무사히 지날 수 있을까.

동아일보

고수리 에세이스트


갑작스러운 무릎 부상을 당했다. 깁스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걷거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 통증이 심했다. 병원에 들렀다가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4차선 도로 위 횡단보도에 서자 숨이 턱 막혔다.

신호등이 바뀌고 길을 건넜다. 인파가 성큼성큼 나를 스쳐 지나가고 누군가는 재빨리 앞질러 뛰어갔다. 초록불은 금세 점멸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신호에 불안하고 초조해져서 아픔을 참으며 걸음을 옮기려 애썼다. 빨간불로 바뀌고 자동차 경적에 쫓기듯 겨우 길을 건넜을 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집은 택시로도 버스로도 가기에 애매한 거리였다. 전철 타고 한 정거장, 천천히 가보자고 역사에 들어섰는데, 하필이면 에스컬레이터가 수리 중이었다. 해당 입구에는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난간을 잡고 가파른 내리막 계단을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평소 같으면 털레털레 가볍게 뛰어 내려가던 계단이었는데,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윽 소리가 났다. 40여 개의 계단을 한참 동안 내려갔다. 전철에서 쏟아져 나온 인파가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처럼 난간을 잡고 내려가는 노인들이 보였다. 초조하고 아프고 답답해서, 자주 멈춰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라면 10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가 아픈 다리로는 구만리였다.

마침내 아파트에 도착했다. 공동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초등학생 이웃이 엘리베이터를 잡고 나를 기다려주었다. 개구쟁이로 유명한 목소리 우렁찬 남자애였다. 놀이터에 소리치며 달려와 태권도 시범을 보여주던 꼬마가 벌써 열 살이 되었다. 그 애가 할아버지랑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른 채 나를 기다려주었다. 못 본 새에 키도 훌쩍 커선 말없이 기다려주는 모습이 의젓하게 자랐구나 싶어서 기특했다.

남자애와 할아버지께 “감사해요”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묵묵부답. 그때, 남자애가 할아버지 팔을 잡더니 수어로 이야기했다. 그제야 나를 보며 인사하는 두 사람. 불현듯 다리가 불편했던 아이의 할머니도 떠올랐다. 걸음이 불편한 나를 묵묵히 기다려주던 남자애의 배려는 자신을 돌봐주던 어른들에게 보고 배운 것이었으리라.

매일 오가던 길이 평소와 달라서 힘든 하루였다. 그래서 다행인 하루였다. 다리가 불편하지 않았다면,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면 나는, 위험한데 좀 기다렸다 건너지 타인의 사정도 모르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 불편한 걸음으로 걷는 등을 성큼성큼 앞질러 달려가는 사람, 계단 난간을 붙잡고 내려가는 어깨를 부딪치고 뛰어가는 사람, 이웃을 보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는 일, 배려는 마음의 넓이를 보여준다던데. 늦게나마 겪고 보고 배운 배려로, 그래도 한 뼘쯤은 내 마음도 넓어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떤 울림이 뭉클하게 마음에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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