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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제 18세, 다시 시작하면 돼” 한강 투신하려는 고3 구한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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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거북이 잡는 꿈 꾸다 깨 새벽 산책

동호대교 난간 매달린 사람 발견

수능 망쳤다며 우는 수험생 설득

“새로운 삶 살겠다” 감사 전화 받아

조선일보

일러스트=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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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욱(43)씨는 경남 통영에서 누수 탐지사로 일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지난 22일 오전 4시, 서울 현장 출장 중 성동구 옥수동 부모님 댁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는 과거 한강변에서 거북이를 잡던 어린 시절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깼다. 김씨는 “이상하게 그날 따라 동호대교로 산책을 가고 싶더라”고 했다.

겨울 새벽 동호대교엔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가로등이 산책로를 어슴푸레하게 밝히고 있었다. 4시 30분쯤, 김씨는 전방 수십m에 웅크린 검은 물체를 발견했다. 처음엔 쓰레기봉투처럼 보였다. 갑자기 그 물체가 일어나 철제 난간을 넘더니 매달렸다. 김씨는 그제야 투신하는 사람임을 깨닫고 서둘러 다가가 “뭐하는 거냐”고 두 손을 잡아 끌어올렸다.

키 160㎝대 앳된 얼굴의 소년. A(18)군이었다. 고3 수험생인 A군은 김씨의 얼굴을 보더니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김씨가 “힘든 일 있느냐”고 묻자 A군은 눈물을 닦았다. 지난 14일 수능 성적이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아 낙심했다고 했다. “수시로 인(in) 서울 대학에 합격도 못 했는데, 수능도 망쳤어요. 부모님이 ‘너한테 투자한 학원비가 아깝다’며 엄청 혼냈어요.” A군은 “원하는 대학도 못 가고, 부모님한테도 죄송해서 그만 살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묵묵히 소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방의 한 도시에 산다는 A군은 “물에 떨어지면 안 아프게 죽는다길래 검색을 해서 고속버스를 타고 터미널에서 동호대교로 왔다”고 했다. 김씨는 “날씨도 추운데 지금 물에 들어가면 춥고 잘못 떨어지면 죽지도 않고 아프기만 하다”며 달랬다. “목욕탕 물에 떨어져도 아프거든? 여기서 이러지 말고 한번 목욕탕 가서 시험해봐”라고 농담을 건네자 그제야 A군의 표정에 웃음기가 돌기 시작했다.

김씨는 “고작 18살이고, 인생에서 한 번 꺾여본 것뿐인데 다시 시작하면 된다”며 A군을 설득해 인근 옥수파출소에 인계했다. A군은 무사히 귀가해 김씨에게 “새로운 삶을 살겠다. 감사하다”고 전화했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지난 27일 김씨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장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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