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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것은 그림책인가, 아닌가?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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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언리미티드 에디션 제공 ⓒ임효진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2024 서울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UE)16’에 다녀왔다. 3일간 2만3천여 명의 인파가 모여들었는데, 서울국제도서전 등에 익숙한 필자에게, 관람객들의 분위기나 작품 등이 사뭇 달랐다.



UE16은 창작자 225팀의 다양한 실험을 확인하는 장이었다. 창작의 고립성은 독자들의 반응을 통해 극복된다. ‘그림책의 물성’ 역시 눈에 띄었다. 종이, 인쇄 제본 방식, 책 꼴, 책장의 조작 방식 등 많은 영역에서 민감하게 다뤄지고 있었다. 한 예로 블루프린트, 리소 프린트, 헥사프린트, 실크스크린, 판화 등 인쇄 방식만으로도 작품들은 차별성을 드러냈다. 이러한 낯선 출판 용어들을 관람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러닝 온’(RUNNNNING ON, 김현주 작)의 경우 수작업 판화 버전은 12만원이고 인쇄 기계로 찍은 버전은 4만원으로 가격에 차등을 두었다. 인쇄 기법의 차이와 함께 당연한 듯 받아들인 대량 생산 시스템을 의식하게 한다.



기존의 틀을 깨는 책 꼴도 시도된다. ‘프레임’(공프레스)은 정육면체의 프레임 안에 책의 내지가 들어가 있는데, 이것은 여성과 사회인으로서 느끼는 보이지 않은 틀을 상징한다. ‘펼치면 버섯’(솜프레스)은 사각 용기 안의 여러 장의 버섯 정보 그림 카드로 이루어져 있다. 관람객들은 표준화된 대량 시스템에 의해 생산된 것이 아닌, 손맛이 느껴지는 개성에 열정적으로 대응한다. 북페어의 또 다른 축이다. 이러한 창작자와 관람객의 만남을 ‘취향으로 소통하기’라 부르고 싶다.



작가들은 자신의 내밀한 취향을 드러낸다. 여행수첩 콘셉트로 실제 여행지에서 수집한 티켓, 광고지, 카페의 냅킨까지 드로잉에 활용해 ‘본보아주’(Bon Voyage, 깸깸이)를 만든다. ‘우, 운’(소만)에서는 구름의 생명 주기인 20여 분 동안 변하는 구름 색상을 트레이싱지에 담았고, ‘내 고양이 박먼지-고양이와 함께 자란 어른 사람의 31개월 그림일기’(박정은)는 긴 제목의 책을 통해 사소한 일상을 보여준다. 관람객들은 이 취향과 연대하게 된다.



틀을 깨고, 제작 과정마다 작가가 섬세하게 선택하고, 그를 통해 주제, 소재, 형식을 무한히 확장하고 있는 아트북들을 보면서 “어떤 것이 그림책이고 어떤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아니, 어쩌면 그림책이냐 아니냐를 구분 짓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책은 이미 전 연령을 향해, 다른 예술 장르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무섭게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담은 일련의 연속된 것을 편집하고 묶은 모든 것’이 그림책의 미래라고 말한다면 너무 나아간 것인가?



우리 그림책은 작은 시장, 출판 시장의 퇴조 등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 그 출구에 대한 고민이 깊다. 출판 선진국을 참조하던 시기를 지나, 스스로 나아갈 바를 모색하고 개척해야 할 만큼 그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이번 북페어는 이러한 고민에 대한 해결의 단초를 여러 방향에서 볼 수 있었다. “열린 창작과 확고한 취향을 좇은 이들은 한데 모여 영감을 주고받으며 문화를 만들어갑니다”(UE16 인스타그램)라는 주최 쪽의 말처럼 이러한 창작환경에서 나온 그림책이라면 그 해법은 멀지 않다.



그림책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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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리미티드 에디션 제공 ⓒ임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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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프레스의 ‘프레임’. 공프레스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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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프레스의 ‘펼치면 버섯’. 사각 용기 안의 여러 장의 버섯 정보 그림 카드로 이루어져 있다. 솜프레스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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