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30 (토)

추운 겨울 시작됐는데… 식어가는 ‘온정’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점점 줄어가는 연탄 후원

연탄은행, 매년 달동네 연탄 나눔 봉사

서울에만 2023년 연탄사용 1827가구

2024년 전국 후원 규모는 전년 절반 ‘뚝’

경영환경 악화에 기업 지원 감소 영향

그나마 배달봉사 덕에 연탄 단가 낮춰

가구당 한 달에 200장은 필요한데…

저소득 고령층 힘겨운 겨울나기 우려

“고마워서 눈물이 나려고 하네.”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주민 A씨가 집 창고를 가득 채운 연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연탄 전달 봉사자들을 위해 시원한 물을 마련한 그는 “다 드시지도 못하고 바쁘게 가셨다”며 1.5ℓ 페트병 두 개를 가리켰다. 병 옆의 컵에는 봉사자가 마시고 남긴 물이 눈에 띄었다. A씨 집 창고에는 이날 연탄 200장이 쌓였다.

세계일보

사회복지법인 밥상공동체 연탄은행과 금융감독원 등 금융권 합동으로 지난 21일 연탄 나눔 봉사가 진행된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서 봉사자들이 연탄을 전달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매달 연탄 200장은 있어야… 후원은 점점 감소

사회복지법인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연탄은행)과 금융감독원 등 금융권 합동으로 진행된 이날 연탄 나눔 봉사로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개미마을 스무 가구에 연탄 4000장과 전기장판 일종인 ‘탄소매트’ 등이 전달됐다. 물품은 봉사 참여 총 11개 금융 기관의 후원으로 마련됐다.

이곳에서는 총 70가구가 연탄을 때며, 연탄은행은 아직 연탄을 받지 못한 집에도 순차 전달할 예정이다. 가구당 주어진 200장으로는 한 달가량을 버틸 수 있다.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8개월 치가 필요해서 한 집에 넉넉잡아 1600장은 있어야 한다.

온기를 전하는 뜻깊은 날이지만, 현장에서 만난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못했다. 필요한 곳은 많은데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연탄 후원 영향이 크다.

연탄은행의 ‘2023년 전국 연탄사용가구조사’에 따르면 개미마을을 포함해 서울에서만 총 1827가구가 연탄을 쓴다. 격년으로 이뤄진 조사에서 전국 연탄사용가구는 2021년 8만1721가구에서 지난해 7만4167가구로 줄었지만, 서울은 같은 기간 1773가구에서 50여가구 증가했다. 연탄은행은 저소득 고령층 증가 등 영향으로 본다.

연탄은행을 통한 전국 후원은 점점 줄어 2021년 520만장에서 이듬해 402만장으로 감소한 후 비슷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특히 연탄은행 접수 기준 지난 9월부터 이달 15일까지 전국 후원은 총 25만4000장으로 전년 동기 45만장의 절반 수준인데, 서울 연탄사용가구 중 기초생활수급 620가구(지난해 기준)에 8개월 치 연탄을 후원하기에도 벅차다.

후원 의사를 밝힌 기업과 단체가 아직 있는 점을 고려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연탄은행은 본다. 경영 환경 악화 탓에 이전보다 후원을 줄인 기업도 적잖다고 한다.

세계일보

사회복지법인 밥상공동체 연탄은행과 금융감독원 등 금융권 합동으로 지난 21일 연탄 나눔 봉사가 진행된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의 한 가정집에 연탄집게가 놓여 있다. 김동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연탄 한 장에 900원… 구입 위해 책까지 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탄은행은 배송비를 아끼고 그 돈으로 연탄 한 장이라도 더 마련하고자 노력한다. 다행히 연탄 나르기에 동참하는 여러 봉사자의 도움 덕분에 1100~1500원인 시중가보다 싼 900원으로 연탄 한 장 가격을 책정한다. 이마저도 지난해 850원에서 50원 올랐다.

연탄사용 한 가구가 매달 200장을 쓴다고 가정하면 월 18만원이 연료비로 들어간다. 개미마을 연탄사용가구 한 달 소득(35만원 내외) 절반 수준이어서 ‘연료비로 돈을 저렇게 많이 쓰는데 왜 연탄을 지원하냐’는 이야기까지 듣는다는 게 허 대표 전언이다.

연탄 때는 이들은 에너지 구입비가 월 소득 10%를 넘는 ‘에너지 빈곤층’이라고 허 대표는 강조했다. 그러면서 “연료비로 그렇게 돈을 많이 쓰는데 그게 무슨 가난한 사람이냐는 비판도 있다”고 씁쓸해했다.

허 대표는 20여년 봉사 이야기가 담긴 책 ‘밥과 연탄으로 만든 강’을 올해 9월 냈다. 책 판매 수익은 취약계층을 위해 쓰인다. 책 한 권에 1만8000원이니 연탄 스무 장 가격이다. 그는 “제작비를 제외한 판매 수익금을 연탄 구입에 쓰기로 출판사와 이야기가 돼서 책을 낼 수 있었다”고 출간을 도와준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봉사에 참여한 금융감독원과 생명보험협회, 서민금융진흥원, 손해보험협회, 신용회복위원회, 여신금융협회, 전국은행연합회, 저축은행중앙회,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그리고 코스닥협회는 기관당 1000만~2000만원씩 총 1억3000만원을 후원했다. 임직원 180여명이 연탄을 날랐다.

김병칠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금융권이 함께 실천한 작은 나눔을 통해 소외된 이웃들이 따뜻한 관심과 온정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재현 서민금융진흥원장은 “오늘의 땀방울은 도움이 필요한 분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봉사에 참여한 전국은행연합회의 신지웅·오정환 대리는 “오늘의 연탄이 겨울나기에 도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