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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데스크 칼럼] 야성 버린 사모펀드, 국장 ‘지뢰밭’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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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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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매출 1조원 규모 리사이클링(자원 재활용) 전문 기업 DS단석 주가는 상장 시점인 1년 전(40만원)보다 80% 가량 폭락했다. 현재 5만원대에서 거래 중이다. 60년이나 된 이 회사에 1년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거칠게 정리하자면, 오너 일가가 자신들의 경영 승계를 위해 사모펀드(PEF) 스톤브릿지를 끌어들인 게 이유다.

오너 일가와 PEF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를 얻었다. DS단석 오너는 2021년 ‘한구재(형)→한승욱(동생)’으로 이어지는 경영 승계 구도를 만들기 위해 스톤브릿지캐피탈을 재무적투자자(FI)로 끌어들였다. 스톤브릿지가 한구재 전 회장과 그의 아들 등이 가진 DS단석 지분 61%를 인수한 뒤, 이 지분을 의결권 없는 우선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기업 승계 과정에서 백기사 역할에 나선 것이다. 이로써 형(한구재)은 800억원에 달하는 엑시트(EXIT, 출구전략)에 성공했고 동생(한승욱)은 DS단석 지분 40.64%를 확보, 대주주에 오르며 경영권을 장악했다.

PEF 스톤브릿지도 2년여만에 1500억원이 넘는 이익을 얻었다. 올해에만 3~4번의 주식 처분에 나서면서 투자 원금의 2~3배에 달하는 돈을 번 것이다.

경영 승계 구도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이들 ‘내부자’들이 번 돈의 근원은 어디일까. 결국 소액주주, 개인투자자들의 호주머니라고 볼 수밖에 없다. DS단석의 미래 가치를 철석같이 믿고 주식을 사들여 시가총액을 올려놨더니, 이를 내부자들이 홀랑 팔아 재껴 이익을 취한 것이다. 개인투자자들은 PEF가 언제 주식을 대량 처분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만히 앉아서 당한 꼴이 됐다. 한 개인투자자는 “1년전 투자한 1억원이 이젠 2000만원도 채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의 투자차익(상장차익) 쉐어 약정 관련 논란에서도 PEF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2020년 하이브 상장 당시 스틱인베스트먼트 등 3개 PEF가 막대한 투자차익을 실현하면서 이중 4000억원을 방 의장에게 지급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상장 첫날 장중 34만원까지 오르던 하이브 주가는 이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방 의장과 이익 쉐어약정을 맺은 스틱 등 PEF들이 대거 물량을 처분하면서다. 스틱은 상장 첫날 613억원어치를 현금화했고, 이스톤에쿼티파트너스도 이날 상당 지분을 매각해 큰 차익을 거뒀다.

두달 후 스틱은 660억원을, 이듬해에는 8100억원 가량을 현금화했다. 1년새 1조원에 달하는 돈을 회수한 셈이다. 이들이 하이브 주식을 내다 판 가격은 30만원 안팎이다. 그러나 하이브 주식은 현재 19만원대로 약 40% 가량 하락했다. 기업을 믿고 ‘장기 투자’를 한 개미가 있다면, 이들만 손해를 본 것이다.

물론 PEF가 우리 경제에 절대악이란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헐값에 사들인 한계기업을 정상기업으로 만드는 구조조정의 견인차 역할도 하고, 성공 가능성이 낮은 벤처·스타트업 생태계에서도 모험자본이 돼 사업 자금을 공급한다.

문제는 PEF가 모험자본으로서의 야성을 버리고, 오너 일가와 손잡고 보신주의적인 투자 행태를 보일 때 나타난다. 이럴 땐 PEF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현상)를 해소할 메기가 되기는커녕, 증시를 흙탕물로 만드는 미꾸라지가 된다.

PEF가 소액주주의 눈물에 기생하려는 행태가 커질수록 이에 대한 강력한 규제책이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

논의되고 있는 제도 중 하나는 유럽, 영국, 독일, 일본 등 대다수 선진국이 도입한 의무공개매수제도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상장사의 지배권을 확보할 정도의 주식을 취득할 때 주식의 일정 비율 이상을 공개매수로 취득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수인의 무분별한 출자를 억제하면서 경영권 이전 시, 일반 주주들도 경영권 프리미엄의 수혜를 누릴 수 있다.

일본은 전체 주식의 3분의 2 이상, 영국은 30% 이상 취득할 경우 인수인이 잔여 주주가 보유한 주식 전체를 같은 가격으로 매수하도록 한다. 미국은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없지만, 회사법에 이사회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지도록 하는 소액주주 보호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PEF의 장점은 키우고, 단점은 보완하는 정책이 시급하다. 기업 구조조정의 엔진, 성장기업의 용기 있는 투자자로서의 역할은 키우고, 내부자 정보를 이용해 이익을 편취하는 행위는 막아야 한다. PEF가 자본시장에서 언제 터질지 모를 ‘지뢰’가 된다면, “국장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시쳇말에 모든 투자자가 동조하게 될지도 모른다.

유윤정 벤처중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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