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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2천명 급식 챙기다 온갖 수술...그래도 내게 ‘밥 냄새’ 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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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학교급식노동자들이 볶음 조리를 끝내고 솥을 세척하고 있다.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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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영 | 학교급식노동자



불과 두어달 전 긴 여름에 나는 이런 시구를 적었다. “조리실의 45도는 덥지 않은 신비로움과 착시다/ 불가사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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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일한 지 29년이 되었다. 첫째 아이가 네살에 시작한 일이 정년퇴직을 1년 반 정도 남겨두었으니 긴 세월을 학교급식 일을 한 셈이다. 한 노동자가 긴 세월 그 노동을 지속하면 일반적으로 경력이 쌓이고 일도 좀 편해지고 업무 부담도 줄어들고 승진도 하고 그러는데 학교급식 일은 그렇지 않다.



출근하면서부터 시작되는 식자재 운반과 세척과 조리, 반복되는 칼질이 끝나면 끓이고 데치고 볶고 튀기고 지지고 무치고…. 기계가 돌아가듯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맡은 일을 정신없이 한다. 점심시간에 맞춰 밥을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한치의 오차가 생기면 안 되는 일이 학교 급식실 일이다. 적게는 500명에서 많게는 2천명의 밥을 한다.



모든 단체급식에는 한명의 조리사가 감당해야 하는 ‘배치기준’이라는 제도가 있다. 쉽게 말하면 한 사람이 몇명의 밥을 할 수 있느냐를 기준치로 삼아서 각각의 식당 규모에 맞게 조리사를 배치하는 제도를 말한다. 일반 대학교나 공공기관의 배치기준은 70명 정도인데, 학교급식은 그 두배가 넘는 150명이다. 예를 들어 밥을 먹는 급식 인원이 1천명이면 공공기관에선 조리사 14~15명이 일하는데, 학교에선 겨우 6~7명이 일하는 것이다.



학교급식에 과중하게 책정한 배치기준으로 인해 많은 급식노동자가 강도 높은 노동에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근골격계 질환으로 어깨, 팔, 허리, 다리에 저마다 수술의 흔적을 두세개씩은 안고 일한다. 최근에는 조리 시 발생하는 ‘조리 흄’(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발암 미세입자)으로 인해 폐 질환 환자와 폐암 환자가 급증하여 문제가 되기도 했다. 나도 무릎, 손목, 팔꿈치, 손가락 수술을 하였고 몇년 전에는 음식물을 들고 나르다 넘어져 발목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또 다른 동료는 바닥에서 미끄러져 쇠붙이 솥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히면서 응급실로 실려 간 뒤 뇌출혈 진단을 받고 아직도 출근을 못 하고 있다. 절단기에 손가락이 잘리고 끓는 기름과 물에 화상을 입어 병원에 실려 간 사례도 부지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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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급식노동자가 볶음밥을 조리하고 있다. 필자 제공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말을 한다. 그까짓 밥 한끼 하는 데 뭐가 힘이 드냐고? 밥하는 데 무슨 기술이 필요하냐고? 밥하고 설거지하는 일은 주부들은 다 하는 일 아니냐고?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수시로 실시하는 위생점검과 안전한 급식을 위한 수십가지의 위생 지침을 지키면서 일해야 하므로 그냥 쉽게 밥이나 하는 일이 아님은 틀림없다. 높은 노동강도와 단시간에 조리해야 하는 급식실의 구조상 늘 직업병과 사고에 노출되어 있다. 거기에다 학생들과 학부모, 교직원들의 민원까지 감당하며 일을 한다.



힘들고 위험에 노출되는 일은 누구나 하기 싫어하고 하려고 하지 않는다. 학교급식 조리사로 취업했다가 한달도 못 버티고 그만두는 사례가 많다는 보도가 최근 자주 나오곤 한다. 10명이 하던 일을 4~5명이 하게 되는 상황에서 급식이 중단되거나 부실한 상태로 밥이 나가는 경우가 많다. 일이 힘들고 높은 노동강도와 단시간에 해야 하는 조리업무,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와 청소 등으로 같이 일하는 조리사끼리도 많이 다투고 화내고 소리 지르며 일을 한다. 적당한 휴식과 여유가 있어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보살피고 위로할 수 있을진대 급식실은 그럴 틈 없이 멈추지 않는 기계처럼 돌아갈 뿐이다. 골병들지 않고 안전하게 서로를 위하며 일할 방법은 없을까?



누군가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먹이는 일은 그 자체로 행복하고 보람된 일이다.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즐거워하고 맛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날 하루의 모든 긴장과 고단함은 스르르 녹는다. 잠자리에 들면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그러나 새벽이면 알람시계보다 먼저 눈을 뜨고 어제처럼 서둘러 출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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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급식노동자가 감자를 세척하고 있다. 필자 제공


어느 작가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 같은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거다. 뭘 해 먹고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사람들 눈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몸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 좋은 음식 냄새가 날까? 사람들이 나를 보면 그냥 밥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나를 보면 밥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 묵은지 같은 음식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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