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반주주 이익 보호 강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방향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정부가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내놓은 가운데,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로는 “무너진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다”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3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논평을 내고 “상장회사 합병과 물적분할 후 재상장 제도만 개선하는 기술적인 덧붙이기만으로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무너진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다”며 “상법상 전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원칙을 규정하는 것이 신뢰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2일 금융위원회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을 대신한 자본시장법 개정 방향을 내놨다. 상장회사가 분할·합병 같은 자본적 거래를 할 때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등의 내용이다. 당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민생토론회에서 주주 보호를 위해 상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재계의 극심한 반발이 잇따르자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거버넌스포럼은 논평에서 “상장사 합병제도나 물적분할 후 상장 등은 개선돼야 할 사항이 맞다”면서도 “이것으로 상법 개정을 대신하려는 것은 상법 개정 논의가 나온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일반주주가 투자한 재산이 지배주주 이익을 위해 활용되는 유형은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규정하려는) 자본거래뿐 아니라 자사주 제3자 처분, 증자나 저가 증권발행 등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를 금지하면 다른 유형이 나타나는 풍선효과가 반복됐다”며 “전체 주주를 위한 대원칙 없이는 어떠한 법령상 절차도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온 것이 상법상 주주 충실의무 명시 논의”라고 설명했다.
거버넌스포럼은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주주 충실의무라는) 대원칙을 명시하지 말자는 주장은 의아하다”며 “이미 발생한 일반주주 이익침해 해결보다 앞으로 발생할 수도 있는 다른 유형의 일반주주 이익침해에 대한 불확실성 해소가 더 중요하다. 앞으로 어떤 유형의 일반주주 이익침해 사례가 나오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기본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도 이날 성명을 내어 “정부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이것만으로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을 대체하기 어려우므로 상법 개정과 동시에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는 “정부가 제시한 절차만으로는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없다. 이사회와 외부평가기관 모두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절차를 형식적으로 준수한 것만으로 거래조건의 공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로까지 확장되면 이러한 문제들이 없다. 충실의무 위반에 따른 법적책임을 피하기 위해 거래조건의 공정성 확보에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상법 개정 없이 추진되는 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로는 주주보호의 취지를 충분히 실현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도 이날 성명을 내어 “정부가 발표한 자본시장법 개정 방향은 해가 갈수록 고도화되는 총수일가와 지배주주 간 자본거래, 증자·감자, 편법적인 성과보상체계 등의 행위에 대해서는 무대책으로 일관하는 방안”이라며 “정부가 제안한 자본시장법 개정에 그치지 말고 야당이 제안한 이사의 모든 주주의 공평한 이익에 대한 충실의무,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을 포함한 상법 개정안을 함께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자본시장법은 자본시장의 공정성에 관한 법률이지 기업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아니어서, 난데없이 자본시장법에 이사의 ‘노력’ 의무를 규정하는 것은 실효성도 없고 법체계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미국이나 일본 등 주요국들이 판례로 인정하고 있는 이사의 모든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확히 입법화해 일반적인 규제를 하는 것이 근본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세상의 모든 책방, 한겨레에서 만나자 [세모책]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