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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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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발목잡은 프랑스 야권, 정부 단독 입법에 “총리 불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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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면 6일 늦게 불신임안 투표할 듯

조선일보

미셸 바르니에 프랑스 총리(가운데)가 2일(현지 시각) 파리에서 열린 2025년 예산안에 대한 프랑스 국회 토론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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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예산안을 놓고 벌어진 프랑스 정부와 야권 간의 힘겨루기가 결국 ‘총리 불신임’으로 이어지게 됐다. 야당 요구를 정부가 상당부분 수용했음에도 극우 국민연합(RN)이 계속 고집을 피우자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하원 표결을 건너뛰는 헌법 49조 3항의 ‘정부 단독 입법’ 조항을 발동했고, 야당은 즉각 총리 불신임안을 상정키로 했다. 프랑스 하원은 현재 여소야대 상황이라 불신임안이 투표까지 갈 경우 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현 정부(내각)도 해체된다.

프랑스 하원은 3일 RN와 좌파연합이 전날 각각 제출한 바르니에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4일 오후 4시(한국시간 5일 자정)에 하원 본회의에서 논의한다고 밝혔다. 앞서 바르니에 총리는 하원에 출석해 “원내 여러 정치그룹들과 끝까지 대화했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며 “내년도 예산안과 이를 위한 사회 보장 재정 법안의 통과를 위해 헌법 조항을 발동해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헌법 제49조3항의 정부 단독 입법권을 발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RN와 좌파연합은 즉각 총리 불신임에 나섰다. RN의 실질적 지도자인 르펜 원내 대표는 “바르니에 총리는 의회 내 모든 정치 그룹의 입장을 고려해 예산을 편성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았다”며 “다른 당(좌파연합)의 불신임안에도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했다. 좌파연합측도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에 총리 불신임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헌법은 정부가 긴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했을 때 의회 표결 없이 법안이나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단, 총리가 이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야당이 총리를 불신임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만약 불신임안이 통과되면 해당 법은 자동 폐기된다. 지난해 3월 법적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상향하는 내용의 ‘연금 개혁법’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 야권의 거센 반대 속에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가 49조 3항을 발동했고, RN과 좌파연합이 총리 불신임안으로 맞섰다. 다만 표결에서 찬성표가 재적 의원의 과반을 넘지 못해 모두 부결됐다.

바르니에 총리는 지난 10월 10일 400억 유로(약 60조원)의 공공지출을 절감하고 대기업과 부유층을 대상으로 200억 유로(약 30조원) 규모의 증세를 하는 예산안을 내놨다. 프랑스의 심각한 재정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통해 2025년 재정 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로 낮추고, 2029년에는 유럽연합(EU)의 건전 재정 기준인 3% 이하로 감축하겠다는 청사진도 밝혔다.

그러나 현재 하원 내 다수를 차지한 극우 RN과 좌파연합은 소비자의 구매력(실질 소득) 감소, 사회적 불평등 심화, 기업 부담 증가 등을 이유로 이번 예산안을 반대했다. 특히 전력 소비세 인상안과 의약품 환급 축소 등 증세안 일부를 철회하고, 최저 연금을 인상하고 저소득 근로자에 대한 사회보험료 면제 혜택 등 기존 복지 정책도 유지할 것을 요구했다. 바르니에 총리는 이에 전력 소비세 인상안과 의약품 환급 축소 계획 등을 철회하며 한 발 양보했다. RN은 그러나 다른 요구 사항들도 모두 관철되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르피가로 등 프랑스 매체들은 “결국 바르니에 총리가 협상에 한계를 느끼고 헌법 조항을 발동한 것으로 관측된다”고 전했다.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지금까지 이 조항을 이용해 정부가 단독 입법에 나선 사례는 100여건에 이른다. 이중 총리 불신임안이 통과된 것은 1962년 10월 조르주 퐁피두 총리 때뿐이다. 대부분의 경우 여당이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거나, 야당이 다수인 경우에도 이탈표와 불출석 등이 발생해 실패했다. 불신임안 통과는 단순히 출석 의원의 과반수가 아닌, 재적 의원의 과반수가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법안 통과에 비해 까다롭다.

그러나 이번에는 총리 불신임안 통과 가능성이 여느 때보다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프랑스 하원의 재적 의원 577명 중 여권인 앙상블과 공화당, 민주당 등의 의석은 213석(37%)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면 RN와 좌파연합의 의석수는 350석에 육박해 절대 다수다. 바르니에 총리는 지난 7월 조기총선 후 2개월여만인 9월 5일 총리로 임명됐다. 만약 이번에 불신임될 경우 프랑스 제5공화국 사상 최단명(약 3개월) 총리가 된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벌써 바르니에 총리의 후임을 물색 중이라는 말이 나온다”며 “반면 마크롱이 (불신임된) 바르니에를 재지명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1962년 퐁피두 총리가 불신임돼 정부가 해산되자 당시 샤를 드골 대통령은 조기 총선을 실시해 새 의회가 구성했고, 다시 퐁피두를 총리로 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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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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