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 5·18연구소장이자 법학자인 민병로 교수는 4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은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고 국정을 장악해 독재 체제로 가려는 의도가 명백하다”며 “1980년 5월의 상황과 매우 유사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1980년 5월 27일 도청을 점거한 광주 시민들을 끌어내고 있는 계엄군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군 당국의 움직임은 1980년 5월과 유사했다.
계엄사령부 지휘에 따라 의회를 해산시켰던 80년 5월처럼 윤 대통령은 군 병력을 동원해 국회를 장악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계엄포고령을 통해 정치 활동과 집회·시위를 금지하고 언론·출판을 통제한 것도 44년 전과 판박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권력자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자정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민들이 계엄해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국회 앞으로 모인 시민 4000여명과 국회의원 보좌진 등이 필사적으로 계엄군의 진입을 가로막은 사이 국회는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또 “5·18을 겪으면서 대단히 성숙해진 시민과 우리 사회의 힘이 짧은 시간안에 비상계엄을 해제하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비상계엄 상황에서는 계엄군을 가로막는 민간인을 상대로 강경 진압 작전이 펼쳐지지는 않았다.
광주를 철저히 고립시키고 폭도로 몰아갔던 5·18 때와 달리 급박한 현장의 상황이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도되면서 강경 대응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당직자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 관련 담화를 TV 통해 지켜보고 있다.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어 “유혈 사태 없이 계엄령을 해제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사례”라며 “그 기저에는 5·18의 피 값이 있었고, 그것을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계엄군이 2시간여만에 순순히 철수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5·18 단체 관계자는 “성공한 쿠데타라도 추후 재평가를 통해 처벌한 5·18의 역사가 있다”며 “더욱이 끊임없는 진상규명 노력으로 책임자를 끝까지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려 했던 5·18의 지난한 투쟁이 군의 대응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번 사태를 계기로 비상계엄을 규정한 법규정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 팀장은 “현행 계엄법령은 국민이 대통령에게 준 권한을 사적으로 사용하고 그것이 오히려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통령이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시민들의 저항이 정당하다는 것을 헌법에 넣자는 게 5·18 헌법 전문 수록의 기본 의의"라고 강조했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