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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62년 만에 정부 붕괴…'헌법 남용' 총리 불신임안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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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 요구를 받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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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하원이 의회를 패싱하고 예산안을 밀어붙였던 미셸 바르니에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4일(현지시간) 가결했다. 하원의 총리 불신임으로 정부가 붕괴한 건 1962년 조르주 퐁피두 정부 이후 62년 만이다. 야권에선 바르니에를 총리로 지명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하야 요구마저 나오고 있다.

프랑스 하원은 이날 재적 의원 총 574명(3명 공석) 중 331표 찬성으로 바르니에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불신임안 가결 정족수는 288표였다. 이로써 지난 9월 취임한 바르니에 총리는 석 달만에 물러나면서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1958년) 이후 최단명 총리로 기록됐다. 바르니에는 5일 엘리제궁을 찾아 마크롱 대통령에게 사퇴서를 제출했다.

불신임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르니에 총리가 헌법상 비상권한을 이용해 무리하게 예산안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데 있다. 바르니에는 재정 적자 감축을 명분으로 법인세 인상과 부유층 증세을 골자로 한 내년도 예산안을 내놨다가 좌파연합인 신민중전선(NFP)과 극우 성향 국민연합(RN) 양쪽의 협공을 받는 상황에 처했다. 그러자 긴급 상황에서 의회 투표를 거치지 않고 입법할 수 있는 헌법 조항(49조3항)을 발동해 이를 통과시켰다. 이에 분노한 좌파는 물론 극우 진영도 불신임안을 발의했다.

바르니에 정부의 붕괴로 내년도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공공 행정이 마비되는 ‘셧다운’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현지에선 예산안의 경우 긴급 처리가 가능한 법적 수단들이 있어 최악의 경우는 피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다만,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내각 붕괴가 프랑스의 신용 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디스는 지난 10월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a2로 유지하면서도 재정적자 등을 이유로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렸다.

유럽 언론들은 바르니에 정부가 붕괴한 근본 원인으로 의회를 무시하는 마크롱 대통령의 ‘불통 정치’를 조명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르네상스'가 주도하는 중도연합(앙상블)은 지난 7월 조기 총선에서 대패해 원내 2당으로 내려앉았다. 통상 원내 1당에서 총리를 임명하는 게 관례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좌파연합이 내세운 총리 후보를 물리치고 중도 우파계열인 공화당에서 바르니에 총리를 발탁했다.

때문에 1당을 차지하고도 총리를 배출하지 못한 NFP는 줄곧 마크롱을 비판해왔다. NFP는 총리 불신임에 이어 2027년 3월까지 임기가 남아있는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NFP를 주도하고 있는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마틸드 파노 원내대표는 이날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면서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인 마크롱 대통령이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내 3당인 RN도 하야론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RN의 실질적 지도자인 마린 르펜이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돌파하기 위해 조기 대선을 원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유럽의회 활동용으로 받은 유럽연합(EU) 예산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고, 프랑스 검찰은 지난달 징역 5년형과 피선거권 5년 박탈을 구형한 상태다. 내년 3월 31일 예정된 선고에서 유죄가 나오면 대선 출마에 제동이 걸린다.

영국 더타임스은 “정치 평론가들은 마크롱의 하야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며 “마크롱의 하야는 새로운 정치 지형을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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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대표.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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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대통령은 이미 레임덕 상황에 빠져들었다. 마크롱에 대한 지지율은 지난달 24일 발표된 여론조사기관 오독사의 여론조사에서 역대 최저치인 25%를 기록했다. 응답자의 75%는 마크롱의 국정운영에 불만을 드러냈다.

반면 마크롱는 지난 3일 “야당의 주장은 모두 정치적 허구”라며 “나는 사임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단 5일 밤 8시 대국민 연설을 한 뒤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등 주요 정상들과 함께 노트르담 대성당의 재개관 기념식에 참석해 대외 행보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또 차기 총리를 5일쯤 지명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프랑스 언론은 사회당의 베르나르 카즈뇌브 전 총리, 공화당 출신 그자비에 베르트랑 전 노동부 장관, 르네상스 소속의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국방장관을 총리 후보군으로 꼽았다.

그러나 파리정치대학의 정치학자 브루노 코스트레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어떠한 당도 다수당을 확보하지 못한 하원에서 (또 다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것”이라며 “바르니에가 그랬던 것처럼 새 내각 역시 빠르게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현준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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