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도박 단행했지만 손에 든 카드 많지 않아"
"경제·문화 성장에도 한국 정치 냉전적 사고 여전"
"겸손과 관용 부족, 타협 모르는 스타일이 패착"
(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문을 열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 밤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2024.12.3/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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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상황에 늘 비상한 관심을 나타내는 중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시도에 대해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초래할 대규모 정치적 도박"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무리한 시도의 이유에 대해서는 윤석열 대통령 내외를 향한 사법 리스크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전통적 의미의 선을 넘어서는 선택지만이 남아있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5일 현지 정치분석가들을 인용해 "내년 예산을 둘러싼 여야 간 갈등이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며 "최근 김건희 여사에 대해 야당이 추진한 일련의 조치들도 윤 대통령의 움직임을 촉발하는 계기였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카드가 실패로 돌아간 이유에 대해서는 "정치적 도박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손에 들고 있는 카드가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집권당 내에서 지지를 얻지 못한 점과 △미국의 지원을 얻지 못한 점을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이는 국제정세라면 뭐든 미국과 연결짓는 중국식 논리에 충실한 해석이다. 그러나 뒤따르는 "윤 대통령의 '소통 없는 정치' 거버넌스 스타일이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아 왔으며, 여야 대립이 첨예해지자 윤 대통령이 아무런 대내외 지지 없이 단행한 계엄이 실패한 것은 충분히 이해되는 전개"라는 지적은 뼈아프다.
신화통신과 인터뷰한 한 정치전문가는 "윤 대통령의 도박이 실패하면서, 그의 정치경력엔 조만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의 탄핵소추안 처리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도입해 중국엔 만고의 적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례를 들어 "윤 대통령이 1심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박근혜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가장 주목하는 배경은 김건희 여사 사법 리스크다. 상하이대외경제대 한반도연구센터 잔더빈 소장은 "윤 정부가 직면한 문제 중 김건희 여사 관련 스캔들은 가장 복잡하고 심각하며, 직접적으로 다뤄지기까지 오래 걸렸다"며 "윤 대통령 내외를 향해 칼날이 다가오면서, 윤 대통령은 방해 세력 제거를 위해 상식을 넘어서는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결정타는 지난달 29일 단행된 야당 단독 예산안 통과라고 봤다. 정부 당초 계획보다 4조1000억원의 예산이 삭감되며 계엄의 직접적 방아쇠가 됐다. 중국 언론은 또 공천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명태균씨 사건, 현재진행형인 김 여사 주변의 스캔들도 상세하게 소개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윤 정부가 직면한 물가급등, 이태원 할로윈 참사, 의료계 갈등 등도 지속적으로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고 지적했다.
잔더빈 소장은 "지금까지 한국의 전직 대통령 11명이 해외로 망명했거나 암살당했거나 쿠데타로 쫓겨났거나 일가족 비리로 인해 다양한 어려움에 빠지거나 탄핵당했다"며 "사실상 누구도 대통령직을 마치고 무사 탈출하지 못한 가운데, 윤 대통령은 군사정권 이후 정치분쟁 해결을 위해 계엄령을 사용한 첫 한국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에 게시된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사진들./사진=바이두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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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문가들은 한국의 정치 혼란이 정책보단 이념으로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려 하는 정치적 양극화 때문이라고도 지적했다. "야당은 종북"이라는 계엄 선언에서도 읽히듯 정치인들이 종종 정치투쟁을 외부 위협 서술로 합리화하려 한다는 거다.
베이징대 아시아학부 저우샤오레이 교수는 "분단체제하에서 한국 경제가 성장하고 한류 문화도 국제적 영향력을 갖게 됐지만, 한국 정치는 여전히 경직된 냉전적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계엄령 희극'이 한국인들로 하여금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이어진 정치 체제를 개혁해, 고질적 문제를 완전 해결해야 한다는 의식을 깨우칠 것"이라고 말했다.
잔더빈 소장도 개헌 시도 가능성을 높이 점쳤다. 그는 "87년 체제 이후 40여년에 걸쳐 10배 이상의 경제규모가 성장한 상황이지만 여전히 의회의 권한은 생각보다 크지 않으며 대통령의 거부권은 강력하다"고 지적했다. 언제든 국정이 공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특히 5년 단임제인 한국 대통령들은 집권 마지막 2년은 관행적으로 레임덕에 빠진다.
자칫 권력공백이 길어진다면 또 다른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봤다. 저우 교수는 또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북한이 남북관계를 날로 긴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라며 "현재 한국이 직면한 안보 도전은 전례없이 가혹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거부권을 이용해 자신에게 불리한 수사를 막으려는 윤 대통령의 행태도 국민을 실망시키고 지치게 만들었지만, 한국 여론의 가장 큰 불만은 윤 정부의 '무능'을 향해 있다"며 "정치지도자가 가져야 할 겸손과 관용이 부족하고 타협을 모르는 검사 스타일을 대통령 자리에 가져온 것도 패착"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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