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으로 국회 봉쇄 못하도록 명문화를
지난 12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사퇴촉구 탄핵추진 범국민 촛불문화제’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 참석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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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은 난데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비상계엄은 필자가 대학에 입학할 즈음 경험했던 일이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면, 탱크가 광화문 앞에 주둔하고, 언론사에 군 인력이 파견돼 언론을 검열하고, 국회는 탱크와 군 병력이 에워싸 출입을 통제당하고, 내부에 있던 의원을 비롯한 국회 인력은 모조리 밖으로 내쫓긴다. 또한 의원들은 계엄 해제를 의결하지 못하게 가택에 연금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대학 캠퍼스에도 군이 주둔한다. 이것이 내 젊은 날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비상계엄’이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을 비롯한 의원들이 계엄 가능성을 말할 때, “지금 세상에 웬 계엄?”이라고 생각했다. 비상계엄 자체가 불가능한 세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가 IT 강국이기 때문이다. IT 강국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비상계엄이 선포되더라도 언론에 재갈을 물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난 12월 3일 선포된 비상계엄 포고령 2호에서 출판과 언론을 통제한다고 했지만, 이게 뜻대로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즉, IT 기반 SNS나 유튜브 같은 매체가 존재하는 한, 레거시 미디어를 통제한다 해도 정권의 언론 통제는 쉽지 않다. 물론 계엄사령부가 인터넷을 끊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 경제는 올스톱된다. 결국 1970년대나 1980년대에는 계엄을 실시하면 전 사회를 통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니,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가 됐다. 하지만 그 충격은 오래 지속될 것 같다.
12·3 비상계엄은 여러 측면에서 미스터리하다.
일단,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후 진행된 프로세스가 너무 엉성했다. 계엄을 선포했으면 탱크와 같은 전술 차량으로 국회를 완전히 포위·봉쇄하고, 언론사에 군을 파견해야 하는데, 22시 반경에 계엄을 선포하고 나서도 군이 진입한 언론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또한 국회 담장을 넘어 본회의장에 들어간 의원도 있지만, 계엄 선포 직후 어느 정도 시간까지는 정문을 경비하는 경찰에게 의원임을 밝히면 국회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엉성함’은, 국민 입장에서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쉽게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다. 의원들을 모이지 못하게 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을 보면 정권이 왜 비상계엄을 선포했는지, 그 취지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 준비가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군과 경찰이 뜻대로 안 움직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즉, 군과 경찰은 상부에서 출동하라고 해서 마지못해 출동은 했지만,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제지할 마음이 없었다는 가정이 가능하다.
또 한 가지 미스터리한 측면은, 대통령은 이런 계엄이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는지, 그리고 실패할 경우에 본인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했는지다. 이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탄핵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윤 대통령 비상계엄령 선포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가 분명해져야 한다. 하나는 현재 상황이 비상계엄 선포 요건에 부합하는지고, 다른 하나는 비상계엄 선포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통성’이다.
현재 상황이 비상계엄 선포 요건에 부합하는지를 살펴보면 이렇다. 헌법 제77조 1항과 계엄법 제2조 2항을 보면,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상황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 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다. 지난 12월 3일 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당시 계엄 이유로 들었던 것은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였다. 윤 대통령 주장이 아무리 ‘해석의 여지’가 있다 해도, 지금이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할 수는 없다. 행정 기능이 일정 부분 장애를 겪는 상황이라 평가할 수는 있지만, ‘장애’와 ‘마비’는 다르다. 12월 4일 새벽 대한변협이 “과연 지금의 상황이 헌법이 말하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인지 반박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고 언급한 것만 봐도, 비상계엄 선포가 적법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계엄 선포 과정의 정당성을 보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첫째, 대한민국 헌법 77조 4항을 보면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지체 없이 통고하든지, 아니면 ‘국회가 폐회 중일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집회(集會)를 요구하여야 한다’는 규정처럼 모든 방식을 동원해 국회에 통고했어야 했다. 그런데 과연 그랬는지가 불확실하다. 우원식 의장 혹은 국회가 정식으로 어떤 통고도 받지 못했다면, 이는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적 정당성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둘째, 비상계엄 선포를 위해서는 국무회의를 열어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국무회의를 개최하기는 한 것 같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구체적으로 어떤 장관들이 참가했으며, 의결 정족수를 충족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국무회의를 개최했다면, 그 내용이 어떻든 절차적으로는 모양새는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비상계엄 선포 당시의 ‘상황적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고, ‘국회 통고 여부’로 인해 ‘절차적 정당성’ 문제 역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민주당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상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사실’이 확인만 되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의는 그리 복잡할 것 같지는 않을 수 있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보면서, 전 국민이 2024년에 이런 계엄이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특히 60대와 70대 국민은 과거 트라우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트라우마를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비상계엄을 쉽게 해제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계엄법 11조 1항에는 ‘국회가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고 이를 공고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돼 있는데, 2항에는 ‘대통령이 제1항에 따라 계엄을 해제하려는 경우에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라고 돼 있다. 한마디로 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해도, 대통령이 이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제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국무회의를 다시 개최한 이후에 계엄 해제를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간적 지연’ 발생 요인을 없애야 한다. 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순간부터 곧바로 해제 효력이 발생하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비상계엄이 선포돼도 제도적으로 국회를 봉쇄하지 못하도록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비상계엄을 통해 행정부와 사법부를 통제할 수는 있지만, 입법부를 통제할 권한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에 동원된 군부대의 사령관에 대한 조사와 처벌도 병행돼야 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8호 (2024.12.11~2024.12.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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