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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50년의 기적, 다시 써야할 반도체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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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사견(思見)]

머니투데이

(서울=뉴스1) = 18일 경기 용인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New Research & Development - K'(NRD-K) 설비 반입식에서 주요 협력사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NRD-K는 삼성전자가 미래 반도체 기술 선점을 위해 건설 중인 약 3만 3000평 규모의 최첨단 복합 연구개발 단지다. 2030년까지 총 20조 원이 투자된다. (삼성전자 제공) 2024.11.18/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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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50주년을 맞은 오늘(6일), 삼성전자는 축하 대신 이례적으로 조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45년 만에 벌어진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발의 등 정치적 혼란 때문이 아니다.

삼성전자 DS부문의 한 임원은 이날 "여느 금요일과 다르지 않다"며 "그동안 삼성 반도체에 대한 다양한 지적과 요구가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열심히 할테니 지켜봐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그는 회사 내부에서 반도체진출 50주년에 대한 별다른 행사 없이 조용히 하루를 보냈다고 덧붙였다.

삼성 반도체의 시작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모토롤라 출신의 반도체 엔지니어 강기동 박사가 한국 최초의 3인치 반도체 전공정(패브리케이션) 공장을 세우기 위해 '한국반도체주식회사'를 설립했고, 이듬해 10월 4일 경기도 부천에 첫 공장을 준공하면서 한국 반도체 제조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해 12월 6일, 한국반도체의 주거래은행인 상업은행 광화문본점이 대출 만기 연장을 거부하면서 삼성으로의 매각이 이루어졌다. 이날이 삼성 반도체 역사의 첫날이다. 이건희 선대 삼성 회장이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했고, 2년 후 미국 합작사 ICII로부터 나머지 지분 50%를 모두 인수하며 삼성 반도체로 탈바꿈했다.

부천 공장에서 시작한 삼성 반도체의 지난 50년은 고난 속에서도 영광으로 가득했다. 1975년, 한국 최초의 C-MOS(상보성 전계효과반도체) LSI(대형집적회로) 칩을 전자시계에 탑재하면서 반도체 제조를 시작했다. 반도체 사업을 반대하는 수많은 목소리 속에서도 미래를 내다보며 과감히 투자한 이병철 창업 회장과 이건희 선대 회장의 도전정신은 오늘날 삼성 반도체의 뿌리가 되었다.

반도체는 본질적으로 높은 위험과 높은 보상을 특징으로 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던' 사업이다. 1~2년의 단기 승부가 아닌, 실리콘사이클(약 4년 주기)을 고려한 장기적 비전을 요구한다. 초기 임원들의 반대를 뚫고 반도체 사업에 첫발을 내디딘 1974년과 1983년 D램 사업 진출 선언이 없었다면 지금의 삼성은 없었다. 이러한 도전정신과 밤낮 없이 헌신한 임직원들의 노력으로 삼성은 1992년 D램 세계 1위, 1993년 메모리 반도체 전체 세계 1위의 자리를 차지해 30년 동안 그 지위를 이어왔다.

하지만 삼성 반도체도 많은 1등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S자' 성장곡선의 정점에 도달했고, 새로운 변화가 없으면 퀀텀점프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세계 반도체 1위 기업이었던 인텔처럼 삼성도 반도체 성장곡선인 '무어의 법칙'이 그 수명을 다하면서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그동안 반도체 기술은 하나의 웨이퍼에 얼마나 많은 양품의 칩을 생산하느냐가 경쟁력이었다. 더 작게 정확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수익이 높아졌고, 이를 위해서는 조단위에서 수십조원의 시설투자를 누구 더 효율적으로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이 분야에 삼성과 인텔은 발군의 실력자였다.

1등 기업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은 현재 잘하는 것을 계속 유지하려는 '타성의 법칙'이 지배한다는 데 있다.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살 수 있는데 변하려 하지 않는 관성이 위기를 초래한다. 반면 추격자들은 앞서 가는 선두를 따라잡기 위해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는 유연성을 가진다.

2022년 갑자기 나타난 챗GPT라는 인공지능(AI) 붐은 변화의 시발점이었다. 이 변화를 감지못한 것이 패착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변화를 보고도 자만해 변화를 애써 외면한 것이다. 삼성이 HBM 전쟁 1라운드에서는 패한 이유다. 지난 50년간 삼성 반도체에 위기가 한두번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럴 때마다 '인재경영, 디자인경영' 등 미래 화두로 뭉쳤던 힘이 있었다. 애플의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도 삼성은 초기 마이크로소프트윈도CE 기반의 옴니아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구글 안드로이드와 손잡고 스마트폰의 강자에 올라선 경험이 있다. 또 노키아나 소니 등 세계 전자산업 강자들을 차례로 누르며 세계 1위에 오른 저력이 있다.

이런 저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을 한데 모으는 구심점이 필요하고, 이들과의 신뢰회복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번 해보자는 결기도 필요하다. 그럴려면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권한은 무한이고, 책임은 없는 시스템은 없어야 한다.

또 정당한 보상시스템도 선행해야 한다. '시황이 성과'일 수는 없다. 실력이 아니라 시황이 좋으면 성과급을 지급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주주들로부터 환영받을 수 없다. 거함이 움직이려면 거함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삼성그룹 100주년이 되는 2038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고희(古稀, 70세)를 맞는 그때, 삼성은 또 한 번 퀀텀점프를 이룬 기업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의 위기를 과감히 돌파하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삼성 반도체의 새로운 50년을 기대한다.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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