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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부자 세습으로 54년 지배…시리아 아사드 가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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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시간) 시리아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에 진입함에 따라 54년 간 시리아를 지배해온 아사드 가문의 철권 통치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고 외신들이 평했다.

아사드 가문은 부자가 대통령직을 세습하며 독재 정권을 유지했다. 30년간 시리아를 독재 통치하다가 사망한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1930~2000)에 이어 차남인 바샤르 알 아사드(59)가 집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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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와 그의 부인 아스마(왼쪽)가 2010년 12월 9일 프랑스를 공식 방문한 모습. 한 때 이미지가 좋았던 아스마 여사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탄압한 남편을 두둔하면서 대외 이미지가 급격히 악화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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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페즈에 대해 AFP통신은 "비밀스럽고 편집증적인 성격이라 그에게 약간만 반대의견을 내도 감옥 가거나 그보다 더한 일을 당했다"고 전했다. 가난한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나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1963년 바트당의 쿠데타에 가담했고, 이후 공군사령관이 됐다.

국방장관까지 올랐던 하페즈는 정부가 제3차 중동전쟁에서 패배한 책임을 지워 숙청하려 하자 1970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이듬해 대통령직에 오른 그는 가혹한 철권 통치로 30년 간 시리아를 지배하면서 '아랍의 비스마르크'로 불렸다. 대외적으로는 반미·친러시아 성향을 보였고,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나는 등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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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2000년 10월 2일 카이로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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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샤르 대통령은 하페즈의 둘째 아들이다. 애초 안과의가 되길 희망했던 바샤르는 다마스쿠스대에서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영국 웨스턴 안과병원에서 수련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페즈의 장남 바셀이 1994년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시리아로 귀국해 군사학교에 진학해 권력 승계를 준비했다.

하페즈가 2000년 심장마비로 숨지자 바샤르는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을 얻어(유효표의 97.2%) 대통령에 취임했다. 2007년 다른 후보 없이 치른 대선에서도 득표율 97.6%로 7년 임기의 대통령에 재선됐다.



'아랍의 봄' 이후 13년간 내전 수렁



취임 초 시리아 국민은 바샤르에게 강압적 통치의 완화, 경제 자유화 등의 개혁 조치를 기대했다. AFP통신은 "취임 초엔 바샤르가 직접 운전하거나 아내와 함께 식당서 식사하는 모습이 목격되곤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는 시리아에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도입하는 등의 조치를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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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12일 시리아에서 당시 대통령 당선자였던 바샤르 알 아사드(오른쪽)가 알리 아슬란 시리아군 참모총장과 함께 군사 훈련 경기에 참석한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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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동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아랍의 봄'이 한창이던 2011년 3월 발생한 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하면서 내전으로 확대됐다. 군 총사령관을 겸임한 바샤르 대통령은 시위대 진압을 명령했고 출동한 군경은 실탄을 쏘며 강경 진압에 나섰다. 특히 2011년 4월 보안군에 끌려갔던 13살 소년 함자 알카티브가 고문 끝에 숨지자 국제 사회로부터 비난이 쇄도했다. 그럼에도 시리아에선 비밀경찰이 국민을 감시하고, 정치적 반대파는 숙청하는 인권 탄압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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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에서는 2011년 이래 내전이 장기화했다. 2018년 3월 19일 수도 다마스쿠스 동쪽 외곽에 있는 시리아 적신월사 버스에서 대피를 기다리는 아이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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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13년 정부군이 자국민을 화학 무기로 공격하자 서구에선 바샤르를 살인자로 불렀다. BBC는 7일 "평화적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해 내전으로 이어지게 한 인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평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과거 기사에서 “그는 현대적 지도자의 가면을 썼지만 실제로는 깡패(thug)처럼 행동했다”고 지적했다.

한때 반군에 몰려 정권을 잃을 뻔했던 그는 그러나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반격에 성공, 정권을 연장했다.

장기화한 내전으로 경제는 파탄났고 사상자와 난민이 다수 발생했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지난 13년간 누적 사망자는 62만명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정식으로 등록된 시리아 난민은 지난달 기준 481만700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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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왼쪽)이 2020년 1월 7일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열린 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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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샤르는 2012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임기를 7년 중임으로 바꾼 뒤 2014년, 2021년 대통령에 재차 당선됐다. 2021년 대선 당시 반군 점령 지역에 있는 약 600만 명에겐 아예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 서방에선 당시 대선이 그의 장기 집권을 위한 ‘쇼’에 지나지 않다고 비판했다.

바사르는 반(反)이스라엘 기치를 내걸고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노골적으로 지원했다. 이 때문에 서방 국가들은 시리아를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한 상태다.



FT "지옥의 영부인이 시리아 숨은 실세"



자국민을 학살한 독재자란 비판을 듣는 바사르와 함께 대통령 부인 아스마 알 아사드도 비판의 도마에 자주 오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스마 여사를 시리아의 '숨은 실세'로 지목하면서 그가 '지옥의 영부인'으로 지탄받아왔다고 전했다. 영어·불어·아랍어를 모두 구사하는 아스마는 한때 지적이고 우아한 이미지로 영국의 다이애나비와 비교됐다. 그러나 자국민 수십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남편을 공개적으로 두둔하면서 이미지가 급격히 악화했다.

FT에 따르면 아스마 여사는 대통령 직속 비공식 경제위원회를 꾸려 기업 등의 자산을 압류하고, 본인이 수장으로 있는 비정부기구(NGO)로 돈을 세탁해 아사드 가문의 금고를 불렸다는 의혹을 받았다. 조국이 내전의 수렁에 빠진 가운데 수억 원대의 사치품을 사들여 '시리아판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비판을 받았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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