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반군 대원이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부친 하페즈의 두상에 발을 올려놓고 있다. 시리아 반군은 이날 아사드 독재정권을 붕괴시켰다고 선언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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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이슬람 수니파 무장 조직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주도하는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장악하고 54년째 대물림해온 아사드 독재정권이 붕괴됐다고 선언했다. 부친 하페즈 알 아사드(1930~2000)를 이어 24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도피 도중 사망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2011년 ‘아랍의 봄’을 계기로 시리아에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시작된 지 13년 만이다.
외신들은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해온 이란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러시아가 각각 이스라엘과의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원 여력이 부족해진 것을 반군의 승리 원인으로 꼽으며 “두 개의 먼 전쟁이 시리아의 운명을 바꿨다”(CNN)고 전했다.
8년 전 최대 격전지 알레포에서 정부군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반군이 이번에는 열흘 남짓 만에 수도까지 함락하는 속도전을 보였다. 반군의 파죽지세 진격이 가능했던 것은 오랜 독재 체제에서 저임금과 부정부패에 시달리며 오합지졸로 전락한 정부군이 제대로 된 반격에 나서지 못한 탓이 크다고 외신은 분석했다. 여기에 정부군과 달리 그간 HTS를 필두로 규합한 반군의 준비된 전투력과 전술, 선전전 등이 먹혀들어간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외신에 따르면 시리아 반군은 8일(현지시간) 다마스쿠스에 진입한 뒤 국영 TV를 통해 “바샤르 알 아사드의 24년 독재 통치를 종식시켰다”고 밝혔다. 아사드 정권의 모하메드 알잘리 총리는 “시리아 국민이 선택한 어떤 지도자와도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발표했다. HTS 지도자 아부 무함마드 알졸라니는 텔레그램 성명에서 “다마스쿠스 시내 공공기관들은 공식적으로 이양이 이뤄질 때까지 전 총리의 감독 아래 놓일 것”이라고 밝혔다. 외신들은 다마스쿠스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반정부 구호와 “자유”를 외치며 환호했다고 전했다.
다마스쿠스 우마야드 광장에서 아사드 정권 붕괴를 환호하는 시민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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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아사드 대통령이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명령한 뒤, 대통령직에서 퇴임하고 시리아를 떠났다”며 “러시아 국방부는 아사드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밝히지 않았으며, 러시아는 아사드의 출국을 둘러싼 협상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통신은 복수의 시리아군 관계자를 인용해 대통령을 태운 비행기가 이날 다마스쿠스를 떠났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실시간 항공기 추적 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를 인용해 바샤르가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기가 다마스쿠스 공항에서 이륙한 뒤 레이더에서 사려졌다고 전했다. 해당 비행기는 시리아 해안 지역으로 향하다 갑자기 방향을 틀어 몇 분 간 반대 방향으로 날더니 레이더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두 명의 시리아 소식통은 “비행기가 갑자기 유턴해 레이더에서 사라진 이유가 미스터리이기 때문에 바샤르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시리아는 54년간 아사드 집안이 통치했다. 국방장관이던 하페즈 알 아사드가 197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는 2000년부터 시리아를 통치해왔다. 그러나 시리아군이 2011년 민중 봉기를 잔인하게 진압한 후 내전이 발발했다. 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내전 발발 이후 지난 13년간 누적 사망자는 62만명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정식으로 등록된 시리아 난민은 지난달 기준 481만7000명이다.
숀 사벳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이날 “조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실무진이 시리아에서의 놀라운 일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고 지역 파트너들과 계속해서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소셜미디어에 “우리 싸움이 아니다”라며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은 그간 아사드 정권에 비판적이었고, 반군의 주력인 HTS는 테러조직 명단에 올렸다. HTS가 설립 당시 이슬람 테러조직 알카에다와 연계됐다는 점에서다. HTS 지도자 알졸라니는 지난 6일 공개된 CNN 인터뷰에서 자신이 알카에다에 동조한 것은 과거의 일이라며 연관성을 부인했다. 로이터통신은 “서방 국가들은 국제적으로 테러리스트로 지정된 HTS가 내세울 행정부를 어떻게 대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시리아 내전은 그간 미국·러시아·이란·튀르키예 등의 각축장이었다. 러시아와 이란은 각각 중동에서의 영향력 확대와 지역 맹주로서의 기득권 수호를 목표로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며 내전에 깊이 개입해왔다. 러시아는 2015년 아사드 정권의 요청으로 전투기와 폭격기를 동원해 반군 진지를 공습했고 이란은 헤즈볼라를 통해 반군과 교전을 벌였다.
그러나 반군은 지난달 하순 시리아의 주요 거점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리아의 친정부 무장세력 배후에 있던 이란혁명수비대 지휘부가 숨지고 이란의 시리아에 대한 무기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 이후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집중하는 것도 시리아 반군에 호재였다.
백일현·임선영·서유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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