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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토)

[전문] 노벨상 시상식 엘렌 맛손의 한강 소개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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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엘렌 맛손 작가가 한강 작가 소개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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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글에는 두 가지 색이 만납니다. 흰색과 붉은색. 흰색은 그녀의 많은 작품에 등장하는 눈으로, 화자와 세상 사이에 보호막을 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흰색은 또한 슬픔과 죽음의 색이기도 합니다. 빨간색은 생명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고통, 피, 그리고 칼의 깊은 상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작가는 매혹적인 나지막한 목소리로 묘사할 수 없는 잔인함,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대해 말합니다. 피는 학살 이후 쌓인 시체에서 흘러내리며 짙어지고 호소하며 질문합니다. 텍스트가 답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그 질문은 ‘우리는 죽은 이들, 납치된 이들, 사라진 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빚졌는가’ 같은 것들입니다. 흰색과 붉은색은 작가의 소설들 속에서 되풀이되는 역사적인 경험을 상징합니다.

2021년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눈이 만들어낸 공간 속에서 죽은 자와 산 자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며, 그 중간에서 아직 어느 세계에 속할지 결정하지 않은 존재들이 부유하고 있습니다. 소설 전체는 눈보라 속에서 전개되는데, 소설 속 화자는 기억의 조각들을 꿰뚫으며 시간의 층위를 미끄러져 나가 죽은 자의 그림자와 상호작용하고 그들의 지식으로부터 배웁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지식과 진실의 추구가 고통스러울지라도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아름답게 서술된 한 장면에서 소설에 등장하는 친구는 육체가 멀리 떨어져 병원 침대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도 선반에서 파일 박스를 꺼내서 박스 안에서 발견한 문서를 통해 역사적인 모자이크의 조각을 찾는데요. 꿈이 현실로 흘러 넘쳐오고 과거가 현재로 넘쳐오는 장면이었습니다. 한강의 소설에서는 경계가 사라지는 이런 변화가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방해받지 않고 움직이며, 촉각을 사방으로 펼쳐 신호를 수집하고 해석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아마도 그들은 그들이 보는 것과 목격하는 것으로 인해 무너질 수도 있고, 그러면 반드시 마음의 평화를 잃게 되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필요한 힘을 끌어내서 계속 나아갑니다. 잊는 것이 절대로 목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를 죽였는가?’ 살아 있을 때의 얼굴이 문드러지고 윤곽선이 녹아 내린 것을 보며 소년의 영혼이 묻습니다. ‘산 자’는 다른 질문을 합니다. ‘고통 속에서 허덕이던 이 몸으로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고문으로 핏덩어리가 된 내 몸을 어떻게 다시 되찾을까?’ 그러나 몸이 포기할 때에도 영혼은 계속 말합니다. 영혼이 지칠 때에도 몸은 계속 걸어갑니다. 깊은 내면에는 완강한 저항이 있고, 말보다 강한 조용한 주장이 있으며, 기억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필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다시 말하지만 잊는 것은 목표가 아니며 잊을 수도 없습니다.

한강의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상처받고 부서지기 쉬우며 연약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걸음 더 내딛고 질문을 하나 더 할 수 있는 힘, 한 건의 문서를 요청하고, 또 한 명의 생존자 증인을 인터뷰할 딱 그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이 희미해지면서 죽은 자들의 그림자는 벽 위에 남아 움직입니다. 아무것도 완전히 지나가지 않으며 아무것도 완전히 끝나지 않습니다.

친애하는 한강, 스웨덴 한림원을 대표해 따뜻한 축하를 전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국왕 폐하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나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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