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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목)

한강 "'소년이 온다' 광주 이해하는 진입로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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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출판사에서 韓언론 대상 기자간담회

"'소년이 온다' 실제사건 다뤄 더 조심스러워"

"앞으로 글 쓰는게 어려워질 일 없다 생각해"

"'소년이 온다'가 광주를 이해하는 데 어떤 진입로 같은 것이 돼 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이 스웨덴 현지에서 열린 한국 언론 대상 기자간담회에서 2014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와 관련해 이같은 바람을 나타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강의 기자간담회는 11일(현지시간) 스톡홀름의 한 출판사에서 열렸다.

한강은 앞서 지난 7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기념 강연에서 '소년이 온다'와 관련해 2012년 봄까지만 해도 광주 5·18을 다룬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희랍어 시간'을 출간한 뒤인 2012년 봄에는 마침내 삶과 세계를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20쪽 정도까지 쓴 소설이 진척이 없자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었는데 어떻게 세계를 껴안을 수 있겠는가 깨달았다"며 12살 때 우연히 서가에서 5·18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던 기억을 말했다. 그러면서 광주에 대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900여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9시간씩 읽어 완독하고 국가폭력의 다른 사례들을 다룬 자료들을, 장소와 시간대를 넓혀 인간들이 전 세계에 걸쳐 긴 역사에 걸쳐 반복해 온 학살들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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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가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출판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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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간담회에서 한강은 "'소년이 온다'는 실제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만큼 더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한강은 독자들이 어떤 작품을 먼저 읽으면 좋을지 묻는 말에 "한국 독자에게는 처음이 '소년이 온다'이면 좋을 것 같고, 이 책과 연결된 '작별하지 않는다'를 이어서 읽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아울러 "너무 진한 책보다 조금 성근 책을 원한다면 '흰'이나 '희랍어 시간'을 읽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채식주의자'는 처음부터 읽기보다 다른 책을 읽은 뒤에 보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에 대해 "강연문을 쓰면서 제 과거를 많이 돌아보게 됐고, 내가 어디쯤 있고 어디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는지 나의 '좌표'를 파악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여태까지도 늘 써왔는데 앞으로 글을 쓰는 게 어려워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돼서 계속 쓰던 대로 쓰려고 한다"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제게 의미가 컸다"고 덧붙였다.

한강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3부작이 있는데, 그 마지막으로 쓰기 시작했던 글이 결도 달라지고 분량도 길어져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가 됐다"며 "그래서 3부작을 마무리하는 소설을 이번 겨울까지 쓰려했는데 (노벨상 수상으로) 준비할 일이 많아 늦춰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초 2015년 황순원문학상을 받은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과 2018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작별'에 이어 세 번째 작품을 써서 3부작을 마무리하려 했으나 집필 과정에서 방향이 달라져 '작별하지 않는다'로 출간했다.

한강은 또 "장편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된다고 했던 책도 다음에 써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 7일 강연에서 일찍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언니를 다룬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비상계엄 사태로 혼란스러운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하지만 한강은 "5일 한국에서 출국하기 전까지 뉴스로 상황을 접했는데 여기 도착한 뒤로 일이 너무 많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며 "어떤 말을 할 만큼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글을 쓰는 일이 희망과 연관돼 있다고도 말했다.

"말을 건네고 글을 쓰고 읽고, 귀를 기울여서 듣는 과정 자체가 결국은 우리가 가진 희망을 증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려면 최소한의 믿음은 항상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언어가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한 줄도 쓰지 못할 것 같다. 꼭 사회적인 일을 다루지 않는 글이라고 해도, 아주 개인적으로 보이는 글이라고 해도 아주 작은 최소한의 언어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쓰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강은 전날 6시간에 걸친 노벨상 시상식과 연회에 참석한 소회도 밝혔다.

그는 "이 행사를 위해 아주 오랫동안 준비한다고 들었다. 예를 들어 꽃은 이탈리아의 특정 도시에서 주문한다거나"라며 "많은 사람이 정성을 들여 준비한 행사라고 생각하며 지켜보는 마음으로 참석했다"고 떠올렸다.

한강은 스웨덴의 어린이 관광지로 꼽히는 '유니바켄'의 평생 무료 이용권을 받은 일화도 소개했다. 유니바켄은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동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과 관련된 작품과 캐릭터 등을 재현해 놓은 박물관 겸 어린이 테마파크다.

"기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작품 세계'를 통과하는 곳이 있다. 딱 세 시간 정도 자유 시간이 있었는데,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그곳을 추천받아 갔다. 그 얘기를 유니바켄 측에서 들으셨는지 평생 무료 이용권을 줬다.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인 선물이었다."

린드그렌은 '말괄량이 삐삐' 시리즈와 '엄지 소년 닐스' 등의 작품을 남긴 세계적인 동화 작가다. 한강은 앞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지난 8일에는 스톡홀름 달라가탄 지역에 있는 린드그렌의 아파트를 방문하기도 했다. 린드그렌의 아파트는 그가 1941년부터 200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년 넘게 살면서 작품을 썼던 곳이다.

한강은 "(린드그렌의) 증손자가 가이드를 직접 해주셨고, 개인적인 추억을 담아 설명해주신 게 기억에 남는다"며 "아주 소박한 삶을 사신 분인 것 같고, 집에 있는 모든 것이 단순하고 소박해 감동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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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가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에 위치한 린케뷔 도서관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기념책자 낭독회에서 현지 다문화 학교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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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자신의 작품을 번역해준 번역가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연회에서 수상 소감을 말할 때 애초 번역가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내용도 넣었으나 분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뺐다고 했다.

"만찬(연회) 수상소감을 다 쓰고서 읽어보니 10분 정도 되더라. 너무 민폐가 될 것 같아서"라며 "그쪽(노벨재단)에서 요구한 분량이 2분 정도였고 관례적으로는 4∼5분 정도라 (초안보다) 대폭 줄였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잘렸던 부분에는 번역가들에게 감사하다는 부분도 있었는데, 이 자리를 통해 말씀을 드린다

한강은 자신의 수상을 계기로 이른바 각종 '기념사업'이 추진되는 데 대한 소신도 밝혔다.

그는 "저는 책 속에 모든 게 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어떤 일(사업)을 하고 싶다면 책 속에서 뭔가를 찾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만약 어떤 의미를, 공간에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닿기를 원한다면 그건 굉장히 가시적인 방법"이라며 "정말 중요한 건 책 속에 열심히 써놨으니, 그걸 읽는 게 가장 본질적인 것 같다. 그 외에 바라는 점은 없다"고 말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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