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세 딸을 보육원에 맡긴 후 연락을 끊었던 아버지가 딸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채널A '탐정들의 영업비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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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세자매를 보육원에 맡긴 후 연락이 끊긴 아버지는 막내딸이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일용직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던 아버지는 나라에서 주는 유족구조금을 포기해달라는 큰딸의 부탁을 들어줬을까.
이들의 사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머니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세자매를 두고 집을 나갔다. 이후 아버지는 딸들을 보육원에 보냈다.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어머니는 열심히 노력한 끝에 세 딸과 함께 머물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네 사람은 같이 살게 됐다.
2022년 사망한 막내딸 사건을 다룬 기사 제목. /TV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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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2022년 5월 막내딸이 20살의 나이에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법원에 따르면, 남자친구는 헤어지자는 말을 듣자 인터넷에서 ‘사람 죽이는 방법’ 등을 검색한 뒤 온라인 쇼핑몰에서 흉기를 구입했다. 그리고는 인천 남동구 한 빌라에서 수십 차례 흉기를 휘둘렀다. 막내딸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치료받던 중 끝내 숨졌다.
남자친구는 징역 27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였던 인천지법 형사12부는 “피해자는 20살의 나이로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채 고귀한 생명을 마감했다”면서 “피고인은 구체적인 범행 상황에 대해 계속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며 유족들로부터 용서받거나 피해 회복을 위한 시도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큰딸은 20년 동안 찾아오지 않은 아버지에게 유족 구조금을 줄 수 없다며 아버지를 찾아달라고 의뢰했다. /채널A '탐정들의 영업비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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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년이 흘러 유족은 채널A ‘탐정들의 영업비밀’을 통해 20년간 연락이 끊긴 아버지를 찾아나섰다. 국가에서 지급한 유족 구조금을 포기하겠다는 위임장을 받기 위해서였다. 유족 구조금은 범죄 피해로 사망, 상해, 중대한 장애를 입었음에도 가해자에게 피해를 배상받지 못한 경우 국가에서 지원하는 돈이다. 피해자 사망 당시 월수입의 24~48개월치 정도를 지급한다.
어머니는 “법적으로 딸 유족구조금의 절반이 아버지 몫이라고 하더라. 너무 억울해서 밤에 잠을 못 자겠다”며 “양육 책임도 다하지 않은 사람이 돈 받는 걸 막고 싶다”고 했다.
탐정단은 수소문 끝에 아버지 A씨의 집을 찾았다. 뇌경색으로 몸이 좋지 않았던 A씨는 일용직을 하며 홀로 살고 있었다. 탐정단은 막내딸의 사망 소식을 전한 후 “유족구조금을 포기해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A씨는 “얘기하지 마세요”라며 갑자기 강경하게 태도가 바뀌었다.
이에 탐정단은 “딸들이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딸 이야기를 들은 A씨는 감정이 수그러들었고, 탐정단이 건네준 사진만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다음 날 첫째 딸과 만나겠다고 했다.
20년 만에 큰딸을 만난 아버지 A씨가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있다. /채널A '탐정들의 영업비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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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만난 부녀는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트렸다. A씨는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딸은 아버지의 사과를 듣고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버지는 “너희를 찾아가는 게 말도 안 되는 일 같았다”며 그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했다. 딸은 “왜 말이 안 되냐”며 “나는 아빠가 보고 싶어서 계속 찾으려고 했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나도 마음속에는 너희들밖에 없었다”며 “고생 많았다”고 했다. 큰딸은 자신의 고생을 알아주는 아버지의 말에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눈물의 재회 후 탐정단은 조심스럽게 아버지에게 “유족구조금을 남은 딸들에게 양도해 줄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잠시 긴장감이 흘렀다. 이내 아버지는 “저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져갈 몫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아이들에게 다 양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모아놓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다”고 했다. 큰딸은 “감사하다”고 했고, 아버지는 “감사할 일 아니다”며 “네 얼굴 봤으니 이제 잠이라도 잘 수 있겠다”고 했다.
대화 후 큰딸은 자신을 보육원에 보낸 아버지를 이해했다. 그는 “아버지가 우리를 방치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빠 말씀 들어보니까 우리를 책임져야 하니까 일하느라 그랬던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는 자신 몫의 유족 구조금을 딸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의 위임장을 작성했다. /채널A '탐정들의 영업비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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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을 만난 다음 날 아버지는 약속을 지켰다. 아버지는 “이거라도 해주는 게 부모로서 도리”라며 “딸들에게 미안할 뿐, 다른 건 없다. 내가 이 돈을 받으면 진짜 벌 받는다”고 했다.
아버지가 작성한 위임장을 건네받은 어머니는 “어려운 결정 해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앞서 남편에게 맞았던 때를 떠올리며 분노하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어머니는 “막내딸이 아빠를 많이 보고 싶어 했다”며 “마지막 가는 길에 아빠와의 끈을 연결해 준 것 같다”고 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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