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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토)

"계엄군이었던 엄마 울었다"…탄핵집회 커피 1000잔 보낸 딸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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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큐레이터 그리다 씨./사진=엑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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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됐던 계엄군의 딸이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위해 커피 1000잔을 선결제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 있는 카페 '남대문커피 여의도점'은 지난 12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프랑스에 계신 교포분께서 12월14일 토요일 촛불 시위에 참석하는 시민을 위해 1000잔의 커피를 선결제했다"고 전했다.

이어 "유선을 통해 후원하시는 이유를 듣게 됐다"며 "그 마음이 너무 귀하시고 가슴에 울림이 가득했다. 수많은 젊은이의 당당한 외침과 손길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해당 카페에 음료를 선결제한 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정보병의 딸이자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는 큐레이터 그리다(활동명·39세)씨다.

같은 날 그는 엑스(X·옛 트위터)에 '아침 이슬로 다시 만난 세계 : 어느 계엄군 딸의 고백문 그리고 천 잔의 커피'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관련 글을 통해 "엄마는 꿈도 많고, 재주도 많고, 공부까지 잘했지만 외할아버지가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며 엄마의 길을 막았다"며 "그녀가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은 먹여주고 재워주고 능력을 인정해 주는 군대뿐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차별과 억압, 꿈과 자유가 이상하게 뒤엉킨 혼란스러웠던 그때의 어느 날, 엄마는 광주로 가 그곳에 모인 '빨갱이'를 척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하지만 엄마가 그 도시에서 본 건 지극히도 평범한 사람들뿐이었다"고 했다.

이어 "어머니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반드시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어머니는 선을 봐 결혼한 뒤 급히 제대했고, 세 딸을 낳았다고 한다. 프랑스 남자를 만나 외국으로 시집갔다고 밝힌 큰딸 그리다 씨는 올여름 두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있는 어머니 집을 찾았고 이때 어머니가 5.18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전했다.

그는 "그날 엄마가 들려준 광주의 이야기는 아직도 엄마의 주름진 손마디를 얼어붙게 했다"며 "어릴 적 엄마는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부를 때 노래 끝자락에 이르면 언제나 목이 메고 눈물을 흘렸다"고 밝혔다.

이어 선결제 이유를 밝히며 "혁명의 땅 프랑스에서 그 기운을 담아 1000잔의 커피를 보낸다. 따뜻한 커피에 여의도에 있지 못하는 아쉬움과 그래서 더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낸다"고 덧붙였다.

이 사연이 SNS에서 화제를 모으자, 그는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한 일인데 수많은 댓글로 제가 오히려 큰 선물을 받는다. 원치 않게 역사의 반대편에 계셨던 어머니의 광주에 대한 업보는 제가 평생을 두고 사죄드리고 갚겠다"고 밝혔다.

조성준 기자 develop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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