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5일로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1만3000여명이 지난 2월 20일 집단 사직한지 300일째가 됐다. 1년이 다돼 가지만 여전히 정부는 의료개혁 강행을, 의료계는 전면 철회를 요구하며 대립중이다. 특히 최근 터진 비상계엄 사태는 의료계 분노에 불을 지펴 대정부 투쟁을 위해 결속하는 결과를 낳았다.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에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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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화되는 의정갈등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환자들이다. 지난 11일 기준 전국 211개 전공의 출근율은 8.7%로, 전체 전공의 10명 중 9명 이상이 병원을 떠났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환자 중심 진료·수술 체계로 전환했고, 종합병원에 환자가 몰리면서 여전히 환자 불편이 극심하다.
대형병원은 환자 수 감소로 경영난에 빠졌다. 상반기 '빅5' 병원 중 4곳(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의 순손실은 2135억원에 달했다. 지방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난달 제천 명지병원은 경영난을 이유로 간호조무사 등 28명을 해고했다. 광주 빛고을전남대병원 역시 누적적자가 700억원에 이르며 존폐위기에 놓였다.
대형병원이 주 고객인 제약, 의료기기 업계도 비용절감으로 버텨왔지만 의정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피해가 실적에 반영되고 있다. 특히 상급종합병원 병실 가동률 하락으로 수액제 공급 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실제 시장 1위 JW중외제약의 3분기 누적 기초수액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8% 줄었다. 여기에 주사기나 붕대 등 일반 소모성 의료기기 판매는 물론 올해 대대적인 확산이 기대됐던 인공지능(AI) 의료기기 기업 역시 대부분 목표치에 미달했다.
의료AI 업체 관계자는 “상급종합병원은 자금력과 도입에 따른 파급력이 큰 만큼 올해 대대적인 영업, 마케팅을 계획했지만 의정갈등 여파로 사실상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당초 계획했던 공급 목표 역시 크게 낮췄는데, 내년도 목표도 유동적으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여야의정협의체가 야당과 전공의 단체 등의 자리를 비워둔 채 출범, 지난 11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1차 회의를 가졌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 총리,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진우 대한의학회장.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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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당장 의정이 대화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탄핵정국에 돌입하면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은 발이 묶였다. 여기에 갈등해소를 위해 발족한 여야의정협의체,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등 모든 협의체가 비상계엄 이후 운영이 중단됐다. 대한의사협회를 시작으로 대부분 의료단체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의료개혁 백지화를 외치고 있어 협상 테이블이 무의미한 상황이다.
의료계는 내년 봄 조기 대선이 시행되면 의정갈등 해소에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야당은 현 국정혼란의 상당 부분이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의료개혁에 있다고 지적한 만큼 정권 교체 시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당이 재집권하더라도 혼란 최소화를 위해 의료계와 타협을 추진할 수 있어 일정 부분 정책 후퇴가 예상된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조기 대선 흐름으로 가다 보면 혼란수습과 사회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의정갈등 역시 봉합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면서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의료계와 대화를 통해 정책을 수정할 가능성이 높아 내년 봄에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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