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정치 상황에 대해 할 말은 없다"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후 재계에서 공통적으로 내놓은 말이다. 누구보다 불안정한 정국에 영향을 받지만 정작 자기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운 위치라는 속뜻이 담겼다.
비상계엄 선포부터 탄핵 가결까지, 정치적 불확실성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면서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한 성장동력 지원 법안은 뒷전이 된 분위기다. 반도체 투자세액공제율을 기존 15%에서 20%로 5%포인트 올리기로 한 K칩스법이 탄핵 정국 속 야당의 태도 변화에 무산됐다. 주 52시간 근로 규제 완화 내용을 담은 반도체 특별법은 국회 문턱을 밟지도 못하고 자취를 감췄다. AI(인공지능)기본법과 국가 에너지시스템관련 특별법도 당초 연내 통과를 기대했지만 요원해졌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한달여 후로 다가오면서 기업들은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상황에 놓이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칩스법에 따른 국내 기업 보조금,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 투자를 진행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근심은 깊다. 현대차에 더해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국내 기업들도 전기차 캐즘이 장기화할까봐 골머리를 앓는다. 미중 갈등까지 더욱 심화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연말연시는 기업들이 한 해를 되돌아보고 다음 사업 전략을 짜는 중요한 시기다. 삼성전자가 오는 17~18일 글로벌 전략회의를 연다. LG그룹은 지난 12일 구광모 대표 주재로 사장단 협의회를 열었다. 그런데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환경이 이어진다.
탄핵안이 가결됐다고 불안정성이 곧바로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선고까지 최장 180일이 걸리는 헌법재판소 심리, 그 후 대선까지 60일. 짧아도 4개월, 길게는 8개월간 어수선한 정국이 이어질 수 있다. 기업들의 속은 탈 수 밖에 없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기면서 바깥과 안 다 어렵다"며 "기업 경쟁력 확보에 시간을 쏟아야 할 판에 정치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경제는 타이밍"이라고 했다. 세계 각국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기업들이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는 정치의 안정이 한시바삐 찾아오길 간절히 기원한다.
한지연 기자 vivid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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