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대로 일대에서 시민들 및 정당, 시민단체가 윤 대통령 탄핵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 탄핵안은 오후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300명 중 3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가결됐다./사진=임한별(머니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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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지난 14일 오후 5시쯤 우원식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세 번 연달아 내리쳤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약 11일 만에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이다. 불과 1주 전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거부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전원 표결에 참여했다.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를 끌어낸 일등 공신은 바로 시민들이었다. 같은 시각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은 시민들의 환호와 함성으로 가득 찼다. 무대에서는 아이돌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흘러나왔다. 이번 시위는 △폭력 △머리띠 △쓰레기가 없는 '3無 집회'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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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몸으로 계엄군 막아선 시민들…열흘 간 매일 집회 열었지만 사건·사고는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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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한 지난 4일 시민들이 국회를 바라보고 있다./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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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 3일 시민들은 곧장 국회 앞으로 달려왔다. 계엄령이 내려지고 약 1시간 동안 4000여명의 시민이 모였다. 일부 계엄군은 국회 담장을 넘어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시민들은 맨몸으로 군용차량을 막아서거나 국회 청사로 진입하려는 계엄군을 붙잡기도 했다. 국회에서 계엄 해제요구안이 가결되고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해제를 선포하기까지 시민들은 국회 앞에서 새벽을 맞았다.
이튿날부터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와 내란 관여자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가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매일 진행됐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표결하는 국회 본회의가 열렸던 지난 7일과 14일은 집회 측 추산 약 100만명과 200만명이 여의도에 운집했다.
지난 4일부터 14일까지 경찰에 신고된 집회 관련 사건·사고는 '0건'으로 파악됐다. 경찰이나 반대 진영의 시위 참여자와 물리적 대치 없이 집회는 평화롭게 진행됐다. 일부 시위에서 종종 등장하는 경찰 기동 버스로 세운 차 벽도 해당 시위 기간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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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 감춘 붉은 머리띠와 강성 구호…'시민'이 주축된 축제 같은 '탄핵 촉구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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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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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촉구 집회는 노조나 정치인이 아닌 '시민'이 주축이었다. 시위에서 흔히 보이는 붉은색 머리띠나 강성 구호는 자취를 감췄다.
손에는 촛불 대신 가지각색의 응원봉을 들었다. K-POP(케이-팝) 가수들의 콘서트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과 같았다. 집회 공간에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가수 로제의 'APT(아파트)'와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아이돌그룹 에스파의 '슈퍼노바' 등 젊은 세대를 위한 노래와 함께 중·장년층을 위한 가수 남진의 '둥지', 김연자의 '아모르파티', 싸이의 '챔피언' 등도 재생됐다. 이들은 가사 일부를 "윤석열 탄핵" "투표해" "탄핵해" 등으로 개사해 함께 불렀다.
이번 집회는 소외된 사람 없이 남녀노소 하나 된 집회였다. 어린이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집회 참여자의 연령대도 다양했다.
지난 11일 집회 현장에서 만난 구모씨는 1세대 아이돌그룹 god(지오디)의 응원봉을 들고 국회의사당 앞을 찾았다. 그는 "처음에는 응원봉을 가져오는 게 망설여지기도 했는데 어제 60대 어르신이 가수 조용필의 응원봉을 가져온 것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며 같은 팬을 보면 소속감도 느껴진다"고 밝혔다.
지난 14일에는 '키즈 버스'가 등장하기도 했다. 영유아를 집회에 데리고 나온 부모를 위해 기저귀를 갈거나 모유·분유를 수유할 수 있도록 한 시민이 대절했다.
키즈 버스 운영자는 포스터를 통해 "우리 아이 500일 기념 여행비를 털어 버스를 빌렸다"며 "이 시국에 무슨 여행인가. 같은 처지인 분들 바람도 피하고 기저귀라도 편히 갈아보자"고 말했다.
지난 14일 오후 2시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앞에 선 '키즈버스'. /사진=김선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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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현장도 자발적으로 청소…200만명 모여도 '깨끗한 거리'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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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표모씨(25)는 자전거에 트레일러를 달아서 80ℓ(리터)짜리 비닐통부 50장, 집게 등 청소도구를 챙겨 국회 앞으로 왔다. /사진=김선아 기자 |
집회가 끝난 뒤에는 시민들이 직접 현장을 정리했다. 자전거에 트레일러를 달아 80ℓ(리터)짜리 비닐봉지 50장을 챙겨온 시민도 있었다. 지난 7일 집회 현장에서 만난 표모씨(25)는 오후 3시부터 오후 7시까지 봉투 20장을 쓰레기로 채웠다. 그는 "성숙한 시민문화를 만들고 싶어서 챙겨 왔다"며 "제가 하고 있으면 다른 시민들도 도와준다"고 했다.
지난 14일에도 오후 6시쯤 한 20대 여성이 일반쓰레기 봉투를 들고 맨손으로 인도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웠다. 그가 "그냥 하는 것"이라며 쓰레기를 치우자 지나가던 시민들도 동참했다. 또 다른 시민도 챙겨온 비닐장갑을 낀 채 길에 떨어진 피켓을 수거하고 있었다.
국회는 같은 날 오후 4시 본회의를 열고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진행해 찬성 204표로 가결했다. 총 300명이 참여했고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를 기록했다. 탄핵안 가결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인 최소 200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있었던 2016년 촛불 혁명보다 시위 문화가 한층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한다"며 "특히 민주화운동을 경험해 본 적이 없고 정치적 무관심층이라고 불리던 10·20세대가 주축이 돼 '12·3 세대'가 탄생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일부 여당 의원들이 찬성에 표를 던지게 한 것도 시민들의 결집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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