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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 (화)

[FINANCIAL TIMES 제휴사 칼럼] 선진국 성장률 둔화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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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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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득 국가가 고속 경제 성장을 하던 시대는 막을 내린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2007년 금융위기(버블 경제 붕괴)의 여파 또한 전환점을 맞이한 것일까? 아니면 세계는 인공지능으로 인한 급성장의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나? 경제 둔화가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2차 대전 끝나고 호황 누린 강대국

과거를 돌아보며 세계가 다시 오지 않을 기회에 한때 얼마나 의존했는지, 또 그로 인해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여러 국가가 잃어버린 활기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금, 필자는 특히 영국을 살펴보고자 한다. 영국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다소 위축됐지만, 미국 민간 경제 조사기관 '콘퍼런스보드'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23년까지 영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77%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은 299%, 프랑스는 375%, 독일과 일본은 각각 501%와 1220%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들 국가의 전반적 생활 수준 역시 크게 향상됐다.

전후 호황은 일시적 성장 그쳐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불행하고, 이들의 불행은 성장률 둔화에서 일부 기인한다. 1950년부터 1973년까지는 전후 경제 회복이 이뤄지며 성장률이 가장 가파르게 상승한 시기였다. 하지만 이후 1973년부터 2007년, 그리고 다시 2023년에 이르기까지 성장은 점차 둔화했다. 2007~2023년 사이는 미국의 1인당 GDP와 시간당 노동생산성 성장률이 프랑스와 독일, 일본, 그리고 영국을 최초로 압도한 시기로 기록된다. 그러나 이 시기 미국의 1인당 노동생산성 절대치는 과거 대비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특히 1945년 전후 유럽과 일본의 '기적적인' 성장은 그 본질이 단기적이다. 이 시기 성장은 전후 국가 재건과 미국 주도의 소비 중심 경제, 경제 통합, 무역 자유화, 거시경제 정책, 그리고 기업 심리에 따른 고(高)투자와 고용 증가가 결합된 결과였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 직후 1920년대 폐허가 된 유럽에서 뒤로 물러나 있던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냉전을 계기로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늘날 고소득 국가에 전후 고속 성장은 전무후무한 성공으로 평가된다. 성장 속도가 다소 더디었던 영국조차 예외가 아니다. 세계 경제 성장률은 1970년대 초반부터 감소했지만, 미국과 영국은 전후 경제 기회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비교적 선방한 국가로 꼽힌다. 1980년대 이후에는 대한민국과 일본이 누리던 성장의 기회가 아시아 신흥국들로 옮겨갔다. 그중에서도 중국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디지털 혁신 기술 등 신기술 개발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로버트 J 고든 노스웨스턴대 교수의 저서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등 일각에서는 기술 발전 속도와 규모의 질적 개선이 제2차 세계대전 대비 현저히 부진하다는 주장을 통해 지지를 얻고 있다. 여성의 노동 참여 확대와 고등교육 보편화 등 일련의 요인이 20~21세기에 걸쳐 일시적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성장률 둔화

그러나 영국은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누릴 수 있는 이득을 허무하게 포기했다.

영국 공공 재정을 일시적으로 개선한 요인은 다름 아닌 인플레이션이었다. 전쟁 중 축적된 재정적자의 부담이 물가 상승으로 잠시 완화됐다. 영국 국고는 북해 석유 수입과 민영화에 따른 이득을 누렸지만, 이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금융위기와 코로나19는 비록 1945년 수준만큼은 아니지만 재정적자를 다시 끌어올린 요인이었다.

영국 금융의 폭발적 성장은 일시적으로 촉진됐다. 버블 경제는 금융 부문의 지속가능성을 넘어 보조적 활동의 한계까지 과도하게 확대했다. 이러한 상황은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

앞으로의 향방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2007년 이후의 경기 침체가 미국을 제외한 기존 고소득 국가들에 그저 당연한 현실이 되어버린 걸까? 분명 새로운 기회도 존재하지 않겠는가.

영국·유럽, 경제개혁으로 위기 넘어야

전후 경제 호황을 누렸던 1950~1960년대 미국을 모방하는 것이 기회의 한 축일 테다. 영국은 '소외 지역(left behind)'의 소득 불균형을 해소하면서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또 다른 기회는 EU와의 관세 동맹과 단일 시장으로의 복귀일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 도널드 트럼프의 우방국 지위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EU의 기회는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작성한 EU 경쟁력 보고서, 일명 '드라기 보고서'의 권고를 충실히 따르는 데 있다.

늘어날 공공지출 대비 투자 촉진을

영국 등 대부분의 경제는 앞으로 국방비와 고령인구 복지 등에 따른 공공지출 증가를 부담해야 한다. 이에 따라 각 정부는 경쟁과 혁신, 투자 촉진을 위한 경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영국은 특히 저축을 장려하는 동시에 숙련 이민자가 유입되도록 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또한 인공지능이 정보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생산성만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성장은 생태학적 측면에서나, 정치적 측면에서 지속가능해야 한다. 성장률 둔화는 현시대를 설명하는 요소다. 따라서 정책의 핵심에 두어야 한다.

※이 글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린 마틴 울프 칼럼 'Reckoning with an era of slow growth'를 매일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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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울프 FT 수석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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