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의 양면
■ 경제+
아이돌 뉴진스의 멤버 하니가 하이브 직원인 매니저로부터 대놓고 “무시당했다”며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왜? 일명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불리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인 근로자에 하니와 같은 연예인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니 사례 이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다.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것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되나요?’라며 고민을 털어놓는 직장인들이 여전히 많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양면을 다시 살펴봤다.
지난해엔 연간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처음으로 1만 건을 돌파하며 논란도 커지고 있다. 법이 모호해 어디까지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워 피해자도 회사도 모두 곤란해졌다. 시행 6년 차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 제76조의2), 이대로 괜찮을까?
2019년 7월 16일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매년 신고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 5823건이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2021년 7774건, 2022년 8961건으로 늘다가 지난해 1만28건으로 증가했다. 하루 평균 27건꼴이다. 폭언이 32.8%로 가장 많았고, 부당인사 13.8%, 따돌림·험담 10.8% 순이었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비해 신고 건수가 적다”면서도 “MZ 세대는 부당함에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아 최근 들어 적극적으로 신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
‘직장 내 괴롭힘’의 3대 요건을 보자.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①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②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③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위 ①~③의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예컨대 서로 우위 관계가 없는 입사 동기간 괴롭힘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로 수사를 거쳐 실제 기소까지 이뤄진 경우는 얼마나 될까. 지난해 신고된 1만28건 중 9672건이 처리가 끝났는데 이중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57건으로, 처리가 끝난 사건 중 0.59%에 불과했다. 나머지 중 6445건은 조사 결과 ‘법 위반 없음’으로 끝났거나 조사 대상이 아니었거나 동일 민원이 중복 신고여서 취하됐다. 2197건은 신고인이 취하했다. 괴롭힘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경진 기자 |
다음은 피해자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지만, 허위 신고로 분류된 사례다.
#한의원에서 일하는 물리치료사 A씨는 함께 근무하는 팀장이 팀원의 단체 SNS 대화방에 ‘A씨가 근무 중에 손톱을 잘라서 환자가 불만 신고를 했는데 내가 잘 처리했다’는 글을 올렸다. A씨가 물리치료실에서 손톱을 깎았을 때는 환자가 없는 점심시간이었고 실제 불만을 제기한 환자도 없었다. A씨는 팀장이 팀 내에서 따돌림을 하기 위해 허위 사실을 단체 대화방에 올렸다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지만, 사실 여부 입증이 쉽지 않았다. 팀장은 팀원의 근무태도를 지적한 것이라고 맞섰고 결국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
모호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기준은 오·남용 부작용도 크다. 가장 큰 틈새는 허위 신고에 대한 규정이나 처벌이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단 신고나 해보자’는 사례가 많다. 고용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례를 살펴봤다.
#B씨는 7개월 전 출근해 2시간 근무 후 ‘일을 못 하겠다’며 그만뒀다. 당장 일손이 부족해 급히 채용에 나섰던 해당 기업 사장은 당일 오전에 4시간만 일할 수 없겠냐고 붙잡았지만, B씨는 집으로 돌아갔다. B씨는 사장에게 하루 치 임금을 요구했고 화가 난 사장은 일한 시간만큼만 지급하겠다고 대응했다. 하루 치 임금 지급을 두고 7개월간 다투던 B씨는 당시 사장이 ‘갑질’하며 막말을 했다고 고용부에 신고했다.
직장 내 괴롭힘 제도의 허점을 노린 경우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제척기간이 없다. 괴롭힘 발생 이후 신고까지 기간에 대한 제약이 없다는 의미다. 개인 사유로 퇴사하면서 실업급여를 타기 위한 목적으로 1~2년 전 사례를 빌미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할 수 있는 배경이다.
#C씨는 회사의 같은 팀 선배가 본인의 말을 무시한다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조사 결과 근무 시간에 연예인 얘기를 하는 C씨에게 선배가 ‘일에 집중하자’고 한 말에 모욕감을 느꼈다는 이유였다. 신고한 이유를 물으니 C씨는 “선배랑 친해지고 싶어서 연예인 얘기 같은 흥미 있는 얘기를 했는데 안 받아줬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의 일회성 다툼이나 언쟁, 회사의 정당한 징계권 등 인사권 행사에 대해서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가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고용부 진정을 내는 경우들이 있다”며 “이를 처리하기 위해 회사와 개인이 써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찮다”고 말했다.
#D씨는 팀장의 폭언에 불쾌감과 모욕감을 느꼈다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고 2주간 유급휴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 기간 D씨는 SNS에 남자친구와 여행 다니는 사진을 올리고 동료들에게 ‘일도 안하고 출근도 안하고 너무 좋다. 너도 신고해라’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D씨의 업무까지 처리하느라 매일 야근을 하던 같은 팀원이 이를 알았고 인사팀에 신고했지만, 직장 내 괴롭힘 조사가 진행 중이라 휴가 취소 같은 조치를 취하지는 못했다.
유사한 법을 두고 있는 선진국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미국·프랑스·네덜란드·덴마크·노르웨이·호주·브라질 등 23개 국가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법령이나 매뉴얼을 마련했다. 미국에선 직장 내 괴롭힘을 시민권법 제7편에 의한 적대적 근로환경 법리나 장애인보호법을 통해 보호한다. 호주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담당하는 정부 기관(Safe Work Australia)이 별도로 있다. 일본은 아직 법령이 마련되지 않았지만, 후생노동성이 회사에 통달이나 지침을 전달해 권고하는 식으로 직장 내 괴롭힘 방지 노력을 하고 있다.
이들 국가와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판단 기준이다. 이들 국가에선 지속·반복성으로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판단한다. 일회성 다툼이나 언쟁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호주는 재직 중에만 신고할 수 있고 아일랜드는 마지막 괴롭힘 행위 발생 후 6개월 이내에 신고해야 한다. 노무법인 혜안 강선일 대표노무사는 “한번 허위 신고를 경험한 회사는 이후 발생하는 신고에 대해서도 허위 신고라는 편견을 가질 수 있다”며 “다만 규정이 너무 까다로우면 자칫 신고 문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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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윤성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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