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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 (화)

[혁신없는 은행]② “저금리 때 반짝, 금리 높아지면 뒷전” 비이자이익 혁신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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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서울 시내에 설치된 시중은행 ATM 기기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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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자이익은 은행 혁신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은행의 비이자이익은 예대금리차(예금과 대출 금리 차이)로 손쉽게 벌 수 있는 이자이익에 비해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주요 시중은행의 비이자이익 비중은 지난 10년간 10%대를 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은행이 중장기 로드맵 없이 눈에 보이는 이자이익에만 집중하다 보니 비이자이익이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비이자이익 ‘반짝’ 증가했지만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 5곳(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올해 3분기 누적 합산 비이자이익은 3조258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조7748억원보다 17.4% 늘었다. 같은 기간 이자이익은 1.6% 증가했다. 특히 우리은행의 경우 비이자이익이 지난해 3분기 누적 5580억원에서 올해는 9790억원으로 늘어나며 1년 새 75% 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이자이익이 늘어난 것은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보다 금리 상승 기조가 꺾이면서 채권수익률 증가 등의 영향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통상 시장 금리가 하락하면 채권 가격은 상승하는 추이를 보이는데, 채권 가격이 안정을 찾으면서 채권 평가이익 등이 비이자이익으로 반영돼 증가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각종 신탁 및 자산관리 서비스 등을 확대하면서 비이자이익 확대에 나서고 있긴 하지만 채권 평가이익 증가 등으로 인한 이익은 혁신이나 새로운 사업을 통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그동안 비이자이익 확대를 위해 송금·외환·방카슈랑스·신탁 등 수수료 구조 등을 변경하고, 채권·파생상품 등으로 수익을 내려는 혁신을 꾸준히 해왔다. 하지만 금리가 다시 높아지거나 시간이 지나면 비이자이익 확대는 다시 뒷전이 돼 버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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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금융 일러스트.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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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장기 로드맵으로 진행해야”

한때 인기를 끌며 은행들의 비이자이익 확대를 이끌었던 상품은 방카슈랑스다. 방카슈랑스는 은행이 보험상품을 판매하고 수수료를 받는 비이자이익 상품이다. 인기 등락을 거듭하던 방카슈랑스는 올해 상반기 4대 시중은행에서 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7.9% 반짝 증가했는데, 이는 은행이 열심히 홍보에 나섰다기보다 올해 시중은행들이 주가연계증권(ELS) 판매를 중단하면서 이를 대체할 상품으로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은행으로서는 수익성이 크지 않아 고금리 상황이 됐을 때도 판매를 독려하는 분위기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지적한다.

심윤보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비이자이익 확대를 위한 상품 판매 부문은 은행이 상품을 직접 만들어서 제공한다기보다 판매 대리에 치우쳐져 있는 경우가 많다”라며 “제조부터 판매까지 할 수 있는 여력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전문성을 갖추려는 의지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20년째 해외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은행들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20년 전에 비해서는 해외 자산이 10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최근 해외 실적은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해외 순이익은 3379억원으로 전년 대비 38%가량 줄었다. 해외 점포 수도 지난해 말 기준 202개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257개였던 것보다 오히려 감소했다.

디지털금융 확대도 대표적인 은행의 비이자이익 강화를 위한 혁신 항목 중 하나다. 은행들은 그동안 디지털과 모바일을 통한 거래를 늘리고 인공지능(AI) 도입, 핀테크 기업과의 협업 등에도 속도를 내 왔다. 이를 위해 그룹 내 IT 자회사를 두는 등 디지털금융 확대에 활발하지만 이 역시 수익 창출이 쉽지 않다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한다. 비금융 업체와 플랫폼 기업들의 디지털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시장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은행들이 눈에 보이는 이자이익을 좇는데 집중했다면, 금리 등 시장 상황과 상관없이 꾸준히 이익을 낼 수 있는 비이자이익 사업 확대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심 연구원은 “은행 입장에서 이자이익은 늘어나는게 보이고 상황에 따라 수익이 늘 수 있는 여지가 큰데 비이자이익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자원을 이자이익에 집중했던 것”이라며 “불완전판매 이슈, 규제적인 한계도 있어서 안전하게 영업하고자 하는 경향이 그동안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도 트렌디한 업종이 돼서 소비자들이 관심 있는 방향으로 더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며 “꾸준히 로드맵을 가지고 비이자수익을 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경영진 입장에서는 임기가 길지 않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은행들의 관심도 옮겨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은선 기자(ons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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