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 낙인 장병들 트라우마...심리 상담 기피
익명성 보장되는 민간상담 안내
12·3 불법 계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인 4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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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불법 계엄 당시 국회로 출동했던 현역 군인 수십 명이 '정신건강 위험 수준'으로 분류된 것으로 확인됐다. 군이 출동 인원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상태를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계엄군 낙인에 신분 노출 우려, 처벌 대상에 놓일 것 등을 걱정해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군 안팎에서는 이들에 대한 특별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7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방부는 최근 계엄 당시 출동했던 모든 간부, 병사를 대상으로 심리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이들 중 최소 수십 명은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위험 수준'으로 분류됐다. 심리 위험 수준인 관심군은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는 고위험군은 아니지만 심리상담 등 관리가 필요한 인원을 의미한다.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할 경우 정신건강이 악화될 우려도 크지만 이들은 국방부가 제공하는 상담 서비스를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설문조사 결과 관심을 갖고 관리해야 하는 인원이 수십 명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상담을 받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며 "본인들이 계엄군 참여했다는 사실이 공개되는 것을 싫어해서 혼자서 견디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국방부는 위험 수준으로 분류된 장병들과 분류되지 않았더라도 추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군을 거치지 않고도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민간 심리 상담 지원 프로그램'(EAP)를 이메일 등을 통해 안내하고 있다. 2020년 도입된 EAP는 군이 아닌 민간에서 상담을 진행하며 소속 부대와 같이 개인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요구하지 않아 익명성을 보장한다.
제1공수특전여단 이상현 여단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의 비상계엄령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고영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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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국방부는 지난 16일 계엄 당시 투입된 병력이 1,500명 수준이라고 밝혔다. 당시 대부분의 군인들은 국회 투입 전까지 작전 장소와 임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부 대원은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고 극심한 혼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더구나 특수부대 소속 인원들은 최강 정예부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터라 계엄 작전 참여로 인한 충격이 더 컸다. 특수부대원들 역시 계엄 작전을 겪으면서 사기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다.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서는 이상현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장(육군 준장)이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보였고,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육군 대령)도 전날 기자회견을 자처해 대원들의 고통을 전하며 눈물을 흘렸다.
국방부 관계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트라우마는 곧장 나타나지는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발현되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며 "군인들이 심리상담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신원이 노출되거나 처벌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을 처벌 등으로부터 안심시키는 조치도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다만 국방부는 기사가 나간 후 '위험군'이란 표현에 대해 '관심군'이라고 정정해왔다. 당초 취재과정에서의 입장과 달라진 것이다. 장병 정신건강 평가지 상 고위험군, 관심군, 정상군으로 구분하고 있고 국방부가 분류한 인원들은 2단계인 '관심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구현모 기자 nine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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