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는 제목처럼 자유의 가치를 강조한다. 프리드먼은 정부의 간섭을 배제한 자유로운 시장이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신념을 가진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였다. 평등과 자유가 맞설 때는 자유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수준의 생활이나 소득을 누려야 한다는 이른바 ‘결과의 평등’은 자유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과의 평등을 꾀하면 정부가 거대해져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선택할 자유>가 출판된 1980년은 미국과 영국의 경제가 침체했던 시기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프리드먼의 조언을 받아들여 경제를 회생시켰다. 규제 철폐와 세금 인하, 재정지출 축소, 국영기업 민영화 등이 핵심 정책이었다. 이 책은 한국에서 1986년 처음 번역돼 출판됐다. 윤석열은 그에 앞서 대학 입학 무렵 접했다고 하니, 믿기 어렵지만 영어 원서로 읽은 모양이다.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신자유주의는 양극화를 심화시켜 소외계층을 확대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2000년대 이후 주춤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책 <경제학 레시피>에서 “프리드먼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자유는 좁디좁은 경제적 자유의 개념 중에서도 자산소유자(지주와 자본가)가 가장 큰 이윤을 내는 방법으로 자신의 자산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라고 지적했다. 자산가의 자유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노동자 파업이나 실직자에 대한 정부 지원 등은 당연히 무시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신자유주의는 사실상 침몰했다. 대대적인 경기부양과 감염병 대응을 위해서는 큰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신자유주의는 동면에서 깨어난 곰처럼 부활했다. 2022년 5월 취임사에서 윤석열이 16분 분량의 연설문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자유’(35차례)였다. 지난달 국회입법조사처장에 임명된 이관후 전 건국대 교수는 지난 5월 칼럼에서 “지금 이 나라는 윤 대통령이 ‘인생의 책’으로 27년이나 끼고 다녔다는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에 따라 통치되고 있다. 부자들의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최소화하며, 카르텔을 척결할 것, 모두 신자유주의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프리드먼의 요구 사항들”이라고 썼다.
지난 2년 반 동안 한국 경제는 어두운 터널에 갇혔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글로벌 고물가, 반도체 불황 등 대외 변수가 악화한 영향이 크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부동산값 상승, 고용 및 내수 부진, 가계부채 확대 등 내부 상황은 더 나빠졌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감세는 오히려 침체를 가속화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 주식시장만 유독 덜 오르는 저평가 상황도 심해졌다. 40여년 전 나온 철지난 경제이론을 신봉했던 윤석열은 역시 1980년대 이후 전무했던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제 발등을 찍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우리가 ‘최악에 의한 통치’에 맞서 싸운다면 결국 더 나은 세상으로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취임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보유국’이었던 한국은 탄핵으로 최악의 통치를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의 출구를 찾은 셈이다.
한국 경제의 커다란 리스크 하나가 사라졌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지금 사면초가에 처했다.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430원대 고공행진 중이다. 곧 취임할 트럼프 당선인은 관세 폭탄을 예고했다. 소매판매액지수는 1995년 이후 최장인 10분기 연속 감소하는 깊은 부진에 빠졌다. 과거 두 차례 탄핵 사례를 보면 환율과 증시는 곧 안정을 찾았지만, 소비심리는 상당 기간 위축됐다.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내수를 살릴 방안을 찾아야 한다. 신자유주의 기조로 심화하는 경제적 양극화도 바로잡아야 한다. 정치적 불안정성이 더 이상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게 해서는 안 된다. ‘윤석열 이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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