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사진 | (주)마인드마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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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이 영화를 ‘12.3 계엄령’과 맞대어 생각하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국회 진입한 군인이 총을 한 발이라도 쐈다면, 나라는 두 동강 났을 것이다. 실탄을 장전한 군인이 나라를 점령하고 내전 상태로 돌입했다고 상상하면 섬뜩하다.
영화 ‘시빌워: 분열의 시대’는 두 개로 쪼개진 미국을 묘사한다. 내전이 가져온 참혹한 실상과 전쟁의 공포, 비릿한 피비린내를 스크린에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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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이 빗발치는 소리가 귓가에 실감 나게 박힌다. 워싱턴에서 벌어진 시가전에서부터 백악관까지 장악해 들어가는 총격전은 실제 현장에 있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영화는 내전을 기록하는 사진기자 시선에서 펼쳐진다. 전장에 무참하게 쌓인 시신 더미 앞에서 무력하다. 살기 어린 군인 앞에 “우리도 미국인”이라고 호의적 태도에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온다.
“어느 쪽 미국인?”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한다. ‘플로리다’ ‘미시시피’ 각 출신지가 나오자 야릇한 웃음이 나온다. 우리 편에 대한 묘한 반가움이다. “그래, 이게 미국이지.”
반대로 동양계 기자는 벌벌떤다. ‘홍콩’이라는 말에 곧장 총구가 불을 뿜는다. 타국인에 대한 배척이다. 상대국가가 분개할 것이라는 예측도 하지 않는다. 종군기자는 공격하지 않는 불문율이 깨지는 순간 두려움이 더없이 커진다. ‘시빌 워’는 마블류 영화가 아니다. 악당을 무찌르고 권선징악을 구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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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도 분명하다. 서사의 부족이다. ‘왜’ 내전이 벌어졌는지 설명하는 과정이 없다. 백인 우월주의가 잠식한 현 미국의 태도가 은연 중에 드러날 뿐이다. 총격전이 벌어질 때 삽입된 힙합 음악은 몰입감을 깬다. 대중적 쾌감을 느낄 만한 요소나 반전도 없다. 그 때문에 중반부까지 영화를 보면 결말을 어떻게 끌고 가려고 이러나 싶은 의문점마저 든다. 총격신으로 가기 전까지 지루한 영화다.
영화는 ‘분열의 시대’를 추상적으로 묘사했다. 미국 내 공화-민주 논쟁을 영리하게 피해 갔지만, 그런 용기를 스스로 거둠으로써 이야기 농도는 급격하게 떨어진다. 기자를 통한 제3자적 시점 역시 좀처럼 이입이 어렵다.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영어권 작가’라는 제럴드 머네인을 제치고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건 역사적 트라우마 속 나약한 인간을 조명한 주제 의식 때문이었다. 인간의 비극성이 역사와 결합할 때 밀도가 높아진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아쉬운 대목이다.
다만 ‘국가란 무엇인가’란 화두가 된 오늘, 이 영화는 한국과 미국 모두에게 ‘분열’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건 분명하다. 계엄령이 선포돼 국회에 군인이 난입한 한국이나 의사당에 트럼프 극렬 지지자 수천 명이 난입해 5명이 사망한 미국 모두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만큼은 ‘실제상황’이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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