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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여행honey] 세계유산 품은 가야산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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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적으로 원형을 유지한 팔만대장경과 불가사의한 건축 장경판전

연합뉴스

단풍 든 해인사와 암자들[사진/백승렬 기자]



(합천=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만추의 단풍이 가야산(해발 1,433m)을 고즈넉하게 물들이던 날, 해인사 본전인 대적광전에서는 템플스테이(사찰체험) 복장을 한 외국인 10여 명이 참배를 마치고 고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판전을 향하고 있었다.

이튿날에도 프랑스, 스페인, 멕시코 등에서 온 방문객들이 사찰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해인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는 외국인은 한 해 연인원 3천여 명에 이른다. 교통 사정으로만 보면 오지에 가까운 해인사가 외국인들의 발길을 끄는 큰 힘은 세계적인 기적으로 꼽히는 팔만대장경, 이를 보관 중인 불가사의한 건물인 장경판전에서 나온다.

◇ 기적과 불가사의…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

1251년 완성된 팔만대장경은 80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까지 변형과 훼손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팔만대장경은 현재 세계에 남아 있는 목판 대장경 중 가장 오래됐다.

내용 또한 제일 완벽하고 방대한 것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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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을 보관중인 장경판전[사진/백승렬 기자]



몽고의 침략으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고려가 부처의 힘으로 국난을 이겨나가자는 뜻으로 온 힘을 다해 제작한 팔만대장경은 1236년부터 16년에 걸친 큰 불사의 결실이다.

대장경판은 모두 8만1천258매이다. 나무로 된 경판이 8만 개를 넘는다고 해서 흔히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대장경은 석가모니가 일생 가르친 말씀을 담은 경전, 불교도가 지켜야 하는 계율, 후대 학자들이 부처의 말씀을 해석한 논서·주석서·이론서를 한데 모은 불교 백과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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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인출본[사진/백승렬 기자]



고려 팔만대장경은 이미 없어진 거란장경의 일부와 중국 대장경에 없는 경전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세계 최고의 대장경으로 평가받는다.

중국 대장경인 만력판이나, 후세에 만들어진 어떤 대장경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내용이 정확하고 광범위하다.

근대 만들어진 일본 신수대장경이나 다른 나라의 현대 불교 대장경 제작에 팔만대장경은 본보기가 됐다.

이런 희귀성과 가치는 일본이 팔만대장경을 손에 넣으려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일본은 고려말부터 조선 전기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팔만대장경 인경본을 달라고 요청했다.

조선 초에는 일본 사신이 단식 농성을 벌이며 팔만대장경 자체를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왜 일본이 팔만대장경을 가져가려고 했나"는 외국인 템플스테이 방문객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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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들으며 이동하는 외국인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사진/백승렬 기자]



팔만대장경이 지금까지 기적적으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제작과 보존 과정에 들어간 우수한 과학 기술, 극진한 정성, 한 치의 어긋남도 허용하지 않는 엄정함 때문이다.

대장경판으로 쓰일 나무는 부패, 뒤틀림, 변형을 방지하기 위해 바닷물에 오래 담근 뒤 다시 소금물에 삶아 사용했다.

목판 대장경을 수백 년째 썩지 않게 보존하고 있는 장경판전도 세계적으로 불가사의한 건물로 유명하다. 1488년쯤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경판전은 습도와 통풍이 자연적으로 조절된다.

건물의 앞쪽은 아래 창이 위 창보다 세 배로 크고, 뒤쪽은 그 반대이다. 장경판전이 세워진 곳의 토질은 원래 물 빠짐이 좋다.

여기다 소금, 숯, 횟가루, 마사토를 넣어 해충을 막는 동시에 장마 시기에는 습기를 빨아들이고, 건조기에는 습기를 내뿜도록 설계됐다.

팔만대장경은 현존하는 대장경 중 세계 최대 규모성, 세계 최고의 역사성, 다른 나라 대장경 연구의 모본이 되는 학술성, 한결같은 서체의 예술성, 인쇄 문화의 선진성, 판각 기술의 신비성, 대장 목록 구성의 독창성, 경판 보존 상태의 우수성이라는 특별한 가치를 지녔다.

이는 팔만대장경, 장경판전이 모두 유네스코로부터 인류 문화유산으로 인정받는 결과로 이어졌다.

장경판전은 1995년 과학적인 설계를 평가받아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팔만대장경은 200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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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능선. 상왕봉과 칠불봉이 서로 가까이 있다.[사진/백승렬 기자]



◇ 하필(何必)과 불필(不必)

해 질 녘 고요가 늦가을의 정취를 더할 무렵 금강굴 마당을 혼자 거닐고 계신 불필스님을 만나 뵙는 행운을 누렸다.

현대 한국 불교계의 최고 선승 성철스님의 친딸이 불필 스님이다.

금강굴은 불필 스님이 제자들과 함께 수도하기 위해 지은 곳으로, 해인사 산내 암자 중 하나이다. 성철스님은 '가야산 호랑이'로 불릴 정도로 수행에 엄격했던 분이다.

1937년생인 불필스님은 단박에 성철스님의 매서운 눈빛을 떠올릴 만큼 청정하게 빛나는 눈매를 하고 계셨다.

참선의 도를 밝힌 한자책 '정법안장' 전집 등 고서가 가득한 방에 단아하게 앉으신 불필스님은 세상을 선한 마음으로 대하면 좋은 일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이치를 쉬운 법문으로 들려주셨다.

평생을 수행에 매진한 구도자의 고결함은 이웃 할머니에게서 느껴지는 따스함, 소박함과 다르지 않았다.

불필스님이 태어날 무렵 성철스님은 출가했다.

평생 한 번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러보지 못한 불필스님은 자신을 버린 성철스님을 미워한 적도 있지만 '아버지 큰 스님'으로부터 큰 감화를 받아 결국 자신도 19세에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출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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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이 수행하던 백련암[사진/백승렬 기자]



불필스님은 아버지 못지않게 진리와 깨달음을 향한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다.

성철스님 탄생 100주년이었던 2012년 출간된 불필스님 회고록 '영원에서 영원으로'에 나오는 대목이다.

사범학교 2학년 때 성철스님을 두 번째 만나 뵙던 자리에서 거두절미하고 물으셨다.

"그래 니는 무엇을 위해 사노?"

"행복을 위해 삽니다"

"그래? 행복에는 영원한 행복과 일시적인 행복이 있는기라. 그라믄 니는 어떤 행복을 위해 살려고 하노?"

스님께서 '행복에는 영원한 행복과 일시적 행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순간, 내 인생은 결정 나 버리고 말았다.

'불필'(不必)은 성철스님이 준 법명이다.

'하필 왜 불필입니까"라는 물음에 "하필을 알면 불필의 뜻을 안다"고 성철스님은 말씀하셨다.

'불필'은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는 뜻을 갖는다. 석가모니의 친자식이자 10대 제자 중 한 명인 라훌라의 이름 뜻은 '장애' '걱정거리'이다. 이에 견주어 '불필'을 '필요 없는 사람'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세상에 아주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도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라고 불필스님은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도팔계 중 하나는 '하심'(下心)이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을 이른다. 하심의 극치를 이루는 경지가 '불필'이 아닐까 싶다.

불필스님의 회고록은 출간 후 27쇄를 찍었다. 불교와 구도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쉬운 말로 쓰여 있는 것이 꾸준히 대중이 이 책을 찾는 이유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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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상왕봉 정상[사진/백승렬 기자]



◇ 가야산 상왕봉과 칠불봉

'가야산은 동남쪽이 가장 빼어나고 아름다워 높고 가파로운 절벽이 그림과 같다' 1491년 조위가 쓴 '해인사중수기'의 일부이다.

조선 후기 인문지리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경상도에는 석화성이 없다. 오직 합천의 가야산만이 뾰족한 돌이 잇달아 있어서 불꽃이 서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선인들의 묘사처럼 가야산은 정상에 우람한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경상남·북도의 경계를 이루는데 남쪽인 합천 해인사 방향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특히 아름답다. 북쪽은 경북 성주군이다.

날카로운 화강암 바위들이 많아 예부터 험준한 산으로 통했지만 요즘은 나무, 돌, 철로 만든 계단으로 탐방로가 잘 조성돼 있어 산행에 큰 어려움이 없다.

단풍이 끝물이었지만 떠나가는 가을 정취가 아쉬운 듯 평일인데도 제법 많은 산객이 가야산을 오르고 있었다.

합천 해인사 쪽에서 올라가는 코스가 개중 단거리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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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봉 정상석[사진/백승렬 기자]



성주군 수륜면에 있는 가야산국립공원 백운동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는 코스도 인기가 있다. 칠불능선 코스는 험하지만, 기기묘묘한 바위 군상들이 연출하는 풍광이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가야산은 정상이 상왕봉이고, 최고봉은 칠불봉이라는 우스갯말이 있다.

예부터 상왕봉(1,430m)이 가야산의 정상으로 여겨져 왔으나 현대 과학기술로 측량한 결과 칠불봉(1,433m)이 3m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왕봉이 제일 높은 봉우리인 줄 알고 지낸 옛정을 버리지 못해 상왕봉을 정상, 칠불봉을 최고봉이라 부르는 익살이 밉지 않다.

두 봉우리는 10여 분 걸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산정에서 내려다보니 해인사를 비롯해 산 아랫마을들이 무르익은 단풍들로 꽉 채워져 장관이었다.

가야산은 능선의 암봉들이 절경을 이루지만 해인사 옆을 흐르는 홍류동 계곡이 조선 8경에 꼽힐 만큼 산 아래쪽도 자연이 아름답다.

성철스님이 주석했던 백련암, 앉은 자리가 해인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절묘한 지점인 원당암, 기기묘묘한 지형과 빼어난 경치 때문에 금강산 보덕굴에 비유되는 희랑대의 가을은 선경이었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1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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