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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내전 피해 한국 왔는데···일하다 다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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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7월 산재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은 예멘 출신 이주노동자 A씨. A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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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을 피해 한국으로 피난 온 이주노동자가 일하던 중 사고로 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고용노동부는 업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고용노동부 고양지청이 폐기물처리업체 인선이엔티와 업체 이모 대표, 김모 대표를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인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인선이엔티는 건설업체 아이에스동서의 계열사로 경기 고양시 등에서 건설업폐기물 처리 사업을 하고 있다.

예멘 출신인 A씨는 지난 7월11일 오후 10시20분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인선이엔티 사업장에서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용 컨베이어벨트 부근의 흙을 치우다가 작동 중이던 컨베이어벨트 측면부에 다리가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A씨는 급히 다리를 뺐지만 오른쪽 다리가 무릎 위까지 절단됐다. 당시 작업 현장에서 혼자 일하던 A씨는 방치돼 있다가 굴삭기 기사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A씨는 2017년 7월 학생 비자로 한국에 입국했다. 이후 난민 신청을 했으나 인정되지 않고 대신 인도적체류허가(G-1-6)를 받았다. A씨의 고국인 예멘은 2014년부터 내전으로 사망자가 다수 발생하고 경제가 파탄 난 상태다. A씨는 2019년 12월부터 인선이엔티에서 일하며 예멘의 가족에게 생활비를 송금해 왔다.

A씨는 “한국이 인도주의적 가치를 존중하고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나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신중하게 선택했다”며 “일하는 환경이 안전하지 않아 불안하기도 했지만, 급여를 빠르게 지급해주고 할랄 음식을 제공해 매우 감사했다”고 했다. A씨는 이어 “한국에서 모든 것이 잘 풀리는 것 같았지만, 회사의 안전 불감증으로 예상치 못하게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며 “제 삶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했다.

“회사, 안전관리 미흡”···사측 “충분히 조치”

A씨 측은 회사가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가 났다고 보고 있다. A씨가 작업 전 담당자에게 보내기 위해 찍었던 작업현장 영상을 보면 컨베이어벨트 측면에 안전덮개(방호덮개)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원동기나 벨트, 체인 등 작업자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경우 덮개 등을 설치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인선이엔티는 컨베이어벨트 정면에만 안전덮개를 설치해 뒀는데 그마저도 사고 당시 위로 젖혀져 있었다고 한다. A씨가 사고 전 촬영한 영상을 보면, 다리가 끼었을 때 스스로 조작해 작동을 정지할 수 있는 비상정지장치도 인근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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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작업 중 다리를 끼인 건설폐기물 운반용 컨베이어벨트. A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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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모국어로 된 안전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A씨는 “모든 정보는 한국어로 제공됐고, 우리는 안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중요한 사항들을 이해하기 매우 어려웠다”고 했다. 사고 당시 장비에 안전보건표지도 설치돼 있지 않았고, 사고 이후에야 표지가 붙었다고도 했다.

인선이엔티 관계자는 “방호덮개가 다 있었는데, 왜 개방이 돼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비상정지장치도 다 설치돼 있었고 이런 부분들을 경찰 조사에서 충분히 설명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해당 장비에는 사고 이후 안전보건표지를 설치했고, 사업장 다른 곳들에 다국어로 된 안전보건표지가 제대로 설치돼 있다”며 “(안전교육 관련해서는) A씨가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정부에서 제공된 자료로 모두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A씨를 대리하는 방소운 법률사무소 탄하 변호사는 “A씨는 한국어로 인사말 정도나 할 수 있을 뿐이고, 업무 지시를 받을 때도 거의 몸짓으로 알아들었다고 했다”며 “안전교육 자료 역시 ‘중장비를 피해야 한다는 뜻으로 보이는 정도의 영상만 시청했다’고 말했다”고 했다.

피해자 “인간으로서의 가치 인정받길”

A씨는 법인과 업체 대표들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두 대표에 대해선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도 고소했다. 산안법 위반은 노동청이 맡아 수사 중이다. 그러나 업무상과실치상 수사를 담당한 경찰은 대표들을 불송치하고 공장장을 송치했다. 경기 일산동부경찰서 관계자는 “공장장에게 안전관리 업무가 위임돼 있던 것으로 파악돼 대표들을 불송치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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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7일(현지시간) 예멘 사나에서 후티 지지자들이 레바논 및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시위에 참여하며 무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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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측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이 부적절했다고 본다. 김 대표의 경우 회사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이고 안전보건경영방침을 직접 수립해 서명했는데도, 수사기관이 안전보건조치 확보를 그의 ‘업무’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 변호사는 “수사가 시작되자 회사는 현장 작업 지시를 담당한 계약직 공장장에게 그 책임을 전가했다”며 “경찰이 실제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누구이고, 안전관리 관련 결재를 누가 담당했는지 등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성급히 결정을 내린 것 아닌지 의심돼 이의신청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인선이엔티 관계자는 “노동청 수사도 성실히 잘 받을 것”이라며 “(사고 경위에 대해) 충분히 설명드리려 하고 있다”고 했다.

A씨는 “회사는 제게 가족의 입국 등 많은 것을 약속했지만 사고 이후 어떤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며 “회사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저는 깊은 슬픔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안전 절차는 매우 부실했고 안전한 작업 환경이 제공되지 않아 제가 끔찍한 사고의 희생자가 됐다”면서 “회사는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A씨는 이어 “저는 단지 재정적인 보상만이 아니라 제 삶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정신적·도덕적 지원과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게 필요하다”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할 기본적인 권리”라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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