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다시 만든 투쟁 언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지난 13일과 14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 참가자들이 다양한 손팻말을 들고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한수빈·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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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정국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젊은 여성들이 바꾼 집회 문화
선동적인 언어보다 일상어 활용
‘늙은’ 말과 글은 조용히 ‘퇴진’
게이머·야구팬 등 ‘보통사람들’
다양한 깃발로 뽐내는 존재감
모두가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
2024년 12월3일, 사전이나 먼 나라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만 있을 법한 단어 하나가 뜬금없이 우리의 일상으로 뛰어들어 왔다. 뜻도 발음도 어려운 계엄, 일정한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군이 맡아 다스리도록 대통령이 법률에 의거하여 선포하는 것이란다. 그러나 이 단어의 목적이 ‘군사적 필요나 사회의 안녕과 질서 유지’라는데 그 목적 중 어느 하나에도 동의할 수가 없다. 오히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홀연히 부활한 이 단어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파괴하니 들고일어날 수밖에 없다. 불법적인 계엄을 무력화시키고, 이 계엄을 선포한 이를 탄핵할 막중한 책임이 있는 국회가 자리한 땅을 비롯해 방방곡곡 저마다의 거리와 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들은 힘차게 외친다. 커다란 피켓에 선명한 구호를 써서 내걸고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나와 흔든다. 민중가요라고 분류되는 노래는 물론 과거의 국민가요와 요즘의 ‘뜨는 노래’까지 다양한 노래를 부른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촛불을 대신해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하기 위해 소중하게 간직해 오던 응원봉을 반짝이며 각자의 염원을 담아낸다. 이 또한 말과 글이다. 외침과 구호는 물론 깃발의 문구와 이들이 부르는 노랫말 모두가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말과 글이다. 이 시위현장에서의 말과 글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그 속에 담긴 세월의 흐름은 무엇이며 미래는 어떻게 예고되는가?
‘탄핵해’와 ‘탄핵하라’의 사이
불법적인 계엄이 두어 시간 만에 해제된 이후 모두의 바람은 그것을 선포한 우두머리와 집단들에 대한 ‘탄핵, 하야, 처벌’ 등의 단어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바람은 구호에 담겨 모두가 함께 외칠 수 있어야 힘을 발휘한다. 모두가 함께 외칠 구호는 선명하고 선동적이어야 한다. 과거에는 그랬다. 목청이 좋은 이가 뱃속에서부터 끌어 올린 우렁찬 소리로 처절하게 선창하면 같이하던 이들이 힘차게 따라 했다. 지금도 그렇다. 집회 전체의 사회를 보는 이, 작은 집단의 집회를 이끄는 이가 선창을 하면 마지막 한 마디를 반복하며 따라 한다. 그런데 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옛 시위현장에서의 ‘아지(agitation)’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뭔가 맥없이 들리기도 한다.
‘탄핵해! 탄핵해!’라니. 이거는 뭐 짝짓기 게임에서 걸린 남녀에게 ‘뽀뽀해, 뽀뽀해’라고 외치는 것처럼 들린다. 이래서는 안 된다. ‘해’가 아닌 ‘하라’가 되어야 한다. ‘탄핵해’라는 세 음절이어선 안 되고 ‘탄-핵-해-라, 탄핵하라, 탄핵하라’와 같이 각 음절을 끊어서 한 뒤 네 음절로 해야 한다. 단순한 음절 수의 문제만은 아니다. ‘해’도 명령이고 ‘하라’도 명령이지만 ‘하라’가 훨씬 더 강렬하게 들리니 그렇다. 그러나 아니다. 그저 과거의 것에 익숙해진 귀에 낯설게 들리는 것일 뿐이다. 이 구호의 핵심은 ‘탄핵’에 있지 ‘해’나 ‘하라’에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구호의 어미나 음절 수가 아니라 그 구호에 담긴 핵심적인 주장과 그 주장의 절실함에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왜 ‘하라’가 아닌 ‘해’인지 납득이 된다. 시대가 달라졌다. 화염병과 ‘짱돌’을 들고 최루탄에 맞서던 시대의 시위가 아니다. 붉은 머리띠를 두른 채 거리에 드러눕거나 스크럼을 짜고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시위가 아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전문 시위꾼’이 아니다. 집에서 살림이나 잘하라고 핀잔을 받던 ‘아줌마’들이나 술 마시며 썰렁한 말이나 늘어놓는 ‘아재’들도 눈에 띄지만 예쁜 응원봉을 들고나온 ‘젊은 여자 사람’이 눈에 많이 띈다. 그런 단체가 있을까 싶은, 혹은 얼토당토않아 보이는 단체의 깃발을 휘날리는 ‘보통사람’도 보인다.
‘탄핵해’라는 구호가 이들의 말을 닮았다. 크고, 높고, 선동적이어서 거부감이 들기도 했던 과거의 구호와 달리 일상의 말투가 그대로 담긴 구호이다. 집회의 사회를 맡은, 현장에서 눈에 많이 띄는 젊은 여성들의 부드럽고 친근한 말투이기도 하다. 물론 자유발언에 참여했던 앳돼 보이는 여학생의 말처럼 과거의 시위현장에서 처절하게 싸우던 이들이 이루어 놓은 터전 위에서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들의 노력 덕에 ‘보통사람들’의 민주 의식이 높아졌고 때가 되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함께 나와 외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등장한 다양한 깃발들. 장난스러워 보이는 이들 깃발은 결국 ‘모두’가 시위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채용민 P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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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들의 깃발
게이머, 오타쿠, 빠순이, 야구팬 등등 별의별 사람이 다 시위현장에 나왔다. 사람들을 붙들고 일일이 물어보지 못했으나 사회를 맡은 이가 호명하는 것을 들으니 그렇다. 강아지 발냄새를 연구하는 이, 집에 누워만 있던 이, 화분을 안 죽이는 시민, 수족냉증 환자, 돈 없고 병든 예술인, 고양이 집사도 시위에 동참했다. 겉모습만 봐서는 직업이나 취미를 알 길이 없지만 들고 있는 깃발이 그들의 정체를 밝혀 준다. 장난하나? 무릇 시위현장의 사회자라면 ‘동지들’이나 ‘애국시민 여러분’이라고 호명해야 한다. 시위에 참여하는 단체라면 ‘협(協), 맹(盟), 단(團), 연(聯), 총(總)’ 등으로 끝나는 이름을 크고 굵은 글씨로 새긴 깃발을 들고나와야 한다.
시위를 ‘투쟁’으로 여겨 오던 이들의 눈에는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시위꾼’으로 원치 않는 낙인이 찍혀 왔던 이들은 장난스러워 보이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거북할 수도 있겠다. 이들을 폄훼해서 부르기에 딱 좋은 말은 ‘개나 소나’일 것이다. 그러나 소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자면 이들은 ‘보통사람들’일 것이고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자면 이들 중 상당수는 시위에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장난스러워 보이는 이들 깃발은 결국 ‘모두’가 시위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시위가 특정 정치집단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각계각층의 남녀노소 모두의 뜻을 담은 시위인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오늘 하야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어딘가 살짝 잘못된 듯해 보이지만 계엄 사태 이후에 등장한 최고의 문구로 보인다. ‘해야’와 ‘하야’의 말장난이지만 이 문구대로 따른다면 국회에서의 탄핵 의결과 헌법재판소의 길고 긴 심의를 가슴 졸이며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내란수괴 처벌하라’라는 강력한 문구도 좋지만 ‘늙고 지친 직장인을 위해 빠른 탄핵, 빠른 구속’이란 재치 있는 문구도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니 더 좋다. 이 또한 장난이 아니다. 강하고 선명한 주장이 직설적인 문구에 담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진지해 보이지 않고 우스갯소리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고 그 주장을 더 강하게 각인시켜 준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효과적이다.
캐릭터 ‘하츄핑’을 패러디한 ‘탄핵핑’ 그림이 담긴 깃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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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와 ‘다만세’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 탄핵!’ 이런 케케묵은 사랑타령 노래가 탄핵 시위현장에서 쓰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시위현장에서 불릴 노래라면 ‘농민가’, ‘반전반핵가’, ‘전대협 진군가’는 아니더라도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아침이슬’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런데 술자리 게임에서 유래한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가 나오더니 덩달아 40여년 전에 윤수일이 불렀던 같은 제목의 노래까지 소환된다. 이 노래로 어떻게 자신들의 주장을 담을까 의아했지만 노래의 마디마디마다 적절한 구호를 끼워 넣는다. 이러한 방식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염원과 응원을 담아 외치던 것이었는데 이것이 ‘탄핵’이라는 무시무시한 주장을 담는 데까지 쓰인다.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방탄소년단의 ‘불타오르네’, 박미경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 또한 전혀 예상치 못한 노래들이다. 그러나 지드래곤과 별로 친하지 않았던 세대들도 이 노래에서 저항의 정신을 배운다. 방탄소년단의 노래에서 불타오르는 마음을 느끼면서 계엄 사태의 주범을 해고(fire)하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내기도 한다. 박미경의 노래를 부르면서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대는 이들을 야유하며 손담비의 노래처럼 토요일 밤에 탄핵 의결이 되기를 염원한다. 이전의 민중가요 혹은 시위용 노래가 직접적인 주장을 담은 것이었다면 이런 노래들은 노랫말로 이야기를 구성해 내면서 의지와 소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의와 가능성을 보여준다.
시위현장의 여러 노래 중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준 것은 역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이다. 네 박자의 행진곡풍에 익숙한 이들은 절대로 따라 부를 수 없는 길고 복잡한 가사의 노래이지만 응원봉을 들고나온 젊은이들은 물론 그 윗세대도 열심히 배워 따라 부른다. 그렇게 다시 만난 세대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준엄한 선언의 ‘헌법 제1조’를 같이 부른다. 서로가 갈등하는 것만 부각되던 세대끼리 다시 만나 다시 만날 세계를 꿈꾸면서 부르는 새로운 노래들 또한 새로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말과 글의 조용한 퇴진과 질서 있는 교체
2024년 12월3일의 계엄 사태에 같이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조용한’과 ‘질서 있는’을 외쳤지만 허무한 수사에 불과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이 사태와 관련된 시위현장에서의 말과 글은 묘하게도 ‘조용한 퇴진’과 ‘질서 있는 교체’를 보여준다. 이 시위에서 가장 눈길을 끈 부류는 ‘젊은 여성’이다. ‘심심한’과 ‘사흘’을 모른다고 문해력 또는 어휘력을 의심받았던 세대이다. 차별과 비하를 견뎌 오다가 극심한 남녀 갈등 상황에서 불거진 여대의 시위 때문에 손가락질을 받던 이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거리와 광장에서 들려주고 보여준 구호, 문구, 깃발, 노래는 말과 글의 조용하고도 질서 있는 변화를 나타내 준다.
‘심심한 사흘’을 모르는 이들이라면 ‘계엄, 탄핵, 하야’ 등의 어려운 말도 당연히 몰랐어야 하고 오로지 ‘저쪽 성별’만을 아는 이들이라면 거리와 광장으로 나오지 않았어야 한다. 그런데 나이를 거꾸로 먹은 무도한 자들이 이런 단어들을 이들에게 알리고 거리와 광장으로 불러냈다. 이들은 갖가지 깃발을 들고 ‘하라’가 아닌 ‘해’로 구호를 외친다.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들뜰 법도 하지만 ‘오늘 하야할 것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거나 ‘펠리스 나비다드(Feliz Navidad)’ 대신 ‘탄핵이 답이다’란 노래를 부른다. 화염병을 대체한 촛불 대신 응원봉을 들고 춤추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시위현장의 말과 글이 이들에 의해서 조용히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가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차피 미래는 이들의 것이고 말 또한 이들의 말로 바뀌어 나간다. 지금은 ‘젊은 여자 사람’에게 주목하고 있지만 바라보는 이들 또한 한때는 ‘젊은’이란 수식어가 붙었었고 늘 ‘사람’으로 살아왔다. 지금의 이들도 머잖아 ‘늙은 사람’으로 살아가며 새로운 젊은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언어의 변화를 주도하는 부류로 ‘젊은 여성’을 꼽는 이들이 많다. 사회적으로는 큰 힘이 없어 보이는 부류이지만 언어의 변화는 이들로부터 시작되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 변화를 ‘모든 사람’이 공유하게 된다. 그렇게 ‘젊은’은 ‘늙은’으로 바뀌면서 조용하게 퇴진하게 되고 말과 글은 질서 있게 교체된다.
※ <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 연재를 26회로 종료합니다. 그동안 <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을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필자 한성우
한국어의 방언과 말소리를 연구하는 국어학자이다. 삶 속의 말과 글을 쉽게 이해하고 깊게 생각하도록 돕는다. 첼로를 사랑하는 목수로서 또 하나의 삶을 살고 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 박사까지 마쳤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어규범정비위원회 위원이며, 한국방언학회 수석부회장이다. 문화방송(MBC) 우리말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방언정담> <우리 음식의 언어> <노래의 언어> <문화어 수업>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꿈을 찍는 공방> <방언, 이 땅의 모든 말> 등의 책을 썼다.
한국어의 방언과 말소리를 연구하는 국어학자이다. 삶 속의 말과 글을 쉽게 이해하고 깊게 생각하도록 돕는다. 첼로를 사랑하는 목수로서 또 하나의 삶을 살고 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 박사까지 마쳤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어규범정비위원회 위원이며, 한국방언학회 수석부회장이다. 문화방송(MBC) 우리말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방언정담> <우리 음식의 언어> <노래의 언어> <문화어 수업>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꿈을 찍는 공방> <방언, 이 땅의 모든 말> 등의 책을 썼다.
한성우 국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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